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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5 [새벽묵상] 가짜 나단, 가짜 정의 | Fake Nathan, Fake Justice (삼하/2Sam 14:12~24)



14:12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의 여종을 용납하여 한 말씀을 내 주 왕께 여쭙게 하옵소서 하니 그가 이르되 말하라 하니라

12 Then the woman said, “Let your servant speak a word to my lord the king.”

“Speak,” he replied.

14:13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3 The woman said, “Why then have you devised a thing like this against the people of God? When the king says this, does he not convict himself, for the king has not brought back his banished son?

14: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14 Like water spilled on the ground, which cannot be recovered, so we must die. But that is not what God desires; rather, he devises ways so that a banished person does not remain banished from him.

14:15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 말씀을 여쭙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당신의 여종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왕께 여쭈오면 혹시 종이 청하는 것을 왕께서 시행하실 것이라

15 “And now I have come to say this to my lord the king because the people have made me afraid. Your servant thought, ‘I will speak to the king; perhaps he will grant his servant’s request.

14:16 왕께서 들으시고 나와 내 아들을 함께 하나님의 기업에서 끊을 자의 손으로부터 주의 종을 구원하시리라 함이니이다

16 Perhaps the king will agree to deliver his servant from the hand of the man who is trying to cut off both me and my son from God’s inheritance.’

14:17 당신의 여종이 또 수수로 말하기를 내 주 왕의 말씀이 나의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심이니이다 원하건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

17 “And now your servant says, ‘May the word of my lord the king secure my inheritance, for my lord the king is like an angel of God in discerning good and evil. May the Lord your God be with you.’”

14:18 왕이 그 여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바라노니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내게 숨기지 말라 여인이 이르되 내 주 왕은 말씀하옵소서

18 Then the king said to the woman, “Don’t keep from me the answer to what I am going to ask you.”

“Let my lord the king speak,” the woman said.

14:19 왕이 이르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령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사오니

19 The king asked, “Isn’t the hand of Joab with you in all this?”

The woman answered, “As surely as you live, my lord the king, no one can turn to the right or to the left from anything my lord the king says. Yes, it was your servant Joab who instructed me to do this and who put all these words into the mouth of your servant.

14:20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바꾸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20 Your servant Joab did this to change the present situation. My lord has wisdom like that of an angel of God—he knows everything that happens in the land.”

14: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21 The king said to Joab, “Very well, I will do it. Go, bring back the young man Absalom.”

14:22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22 Joab fell with his face to the ground to pay him honor, and he blessed the king. Joab said, “Today your servant knows that he has found favor in your eyes, my lord the king, because the king has granted his servant’s request.”

14:23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3 Then Joab went to Geshur and brought Absalom back to Jerusalem.

14:24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24 But the king said, “He must go to his own house; he must not see my face.” So Absalom went to his own house and did not see the face of the king.


 

이야기에는 독특한 힘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 그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야기에는 추상적인 개념이 전혀(혹은 거의) 없다. 이야기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줄거리가 있고, 관계적이며, 개인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과 접촉이 끊어지고, 영혼과의 접촉(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삶)이 끊어졌을 때, 이야기는 그 접촉을 계속할 수 있도록 되돌리는 가장 좋은 언어적 수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대부분 이야기 형태로 주어지는 이유다.


그래서 예수님도 많은 말씀을 이야기로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가운데 빠져들고, 결국 그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드고아 여인의 이야기를 듣던 다윗이 그랬습니다.



가짜 나단 (12~17절)

드고아 여인 사건은 요압의 과잉충성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으로 부터 10mile(16km) 떨어진 베들레헴 보다 조금 더 남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200년 후에 이곳에서 목자 아모스 선지자가 태어납니다.

드고아 여인은 요압의 명을 받아 수년 전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우리아와 밧세바의 사건에 관해서 사용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방법으로 다윗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다윗의 처지를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학자들은 이것을 법률적 비유judicial parable라 부르기도 합니다.

드고아 여인의 이야기를 듣던 다윗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살인자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집으로 데려오라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습니다(8~11).

또한 다윗은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1b)고 여호와께 맹세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압살롬은 머리카락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러자 드고아 여인은 나단 선지자가 이야기 후에 다윗의 답변을 듣고서는 당신이 그 사람이라(12:7)고 외쳤던 것처럼 다음과 같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 하심이니이다(13)


그녀는 이어서 어차피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해진 일이고, 암논은 이미 죽었으니 살아 있는 압살롬이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을 구합니다.

이어지는 15~17절은 많은 학자들에 의하면 7절 뒤에 오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에게 진실을 밝혔다가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위치에 있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드고아 여인은 이야기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다윗을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나단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나단은 하나님이 보내서 왔지만, 드고아 여인은 요압이 보내서 왔습니다. 요압과 드고아 여인이 제시한 해법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증거는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드고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여인의 아들은 두 명이었고, 그 중에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를 죽여서 남은 아들이 하나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압살롬 말고도 수많은 왕자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다윗을 이어 왕이 된 아들은 압살롬이 아닌 솔로몬입니다.

그러니 매우 유사하지만, 드고아 여인은 결코 하나님의 명을 받은 나단이 아닙니다. 가짜입니다.



가짜 정의 (18~24절)

여하튼 드고아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윗은 왕으로서의 정의보다는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실은 다윗이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도록 정교하게 꾸며진 이야기입니다.

이제서야 앞뒤가 꿰지는 다윗은 드고아 여인에게 모든 것의 배후가 요압인 것을 묻습니다(19a).

그러자 드고아 여인은 당황하지 않고 사실대로 고백합니다.

다윗은 사실 은근히 요압에게 고마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리고 오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압살롬을 그의 집으로 가게 하고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고 지시합니다(24).

즉 왕궁으로 들이지 말라는 것이고, 왕자로서 지위를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대체 지금 어떤 마음일까요? 다윗의 이러한 결정은 깨끗하게 용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벌을 하는 것도 아닌 아주 어정쩡한 결정이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데리고 왔다면, 적어도 그를 만나 어떤 형태로든 처벌을 했어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지만, 정상참작情狀參酌을 한다면 1~2년 정도 투옥 했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랑도 아닌 공의도 아닌 가짜 정의입니다.



다윗이 칼을 뽑아야 할 때 칼을 뽑지 않자, 훗날 압살롬이 다윗을 향하여 칼을 뽑게 됩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만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압살롬의 실망과 분노도 커져만 갑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벌을 내리지도 않으면서 그냥 방치하는 것은 오히려 압살롬 안에 잘못된 감정만 자라나게 하는 꼴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는 해법은 진정한 해법이 아닙니다.

잘못한 일에 대한 정확한 교육 없는 방치는 가짜 공의입니다.

인간적인 꾀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함을 받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으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무엇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에 입각한 훈계 없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는 절대로 옳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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