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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2 [새벽묵상] 전인격적인 예배와 전도 | A holistic Worship & Evangelism (고전/1Cor 14:13-25)



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3 For this reason the one who speaks in a tongue should pray that they may interpret what they say.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4 For if I pray in a tongue, my spirit prays, but my mind is unfruitful.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5 So what shall I do? I will pray with my spirit, but I will also pray with my understanding; I will sing with my spirit, but I will also sing with my understanding.

14: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6 Otherwise when you are praising God in the Spirit, how can someone else, who is now put in the position of an inquirer, say “Amen” to your thanksgiving, since they do not know what you are saying?

14: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7 You are giving thanks well enough, but no one else is edified.

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8 I thank God that I speak in tongues more than all of you.

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9 But in the church I would rather speak five intelligible words to instruct others than ten thousand words in a tongue.

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0 Brothers and sisters, stop thinking like children. In regard to evil be infants, but in your thinking be adults.

14: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1 In the Law it is written:

“With other tongues

and through the lips of foreigners

I will speak to this people,

but even then they will not listen to me,

says the Lord.”

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2 Tongues, then, are a sign, not for believers but for unbelievers; prophecy, however, is not for unbelievers but for believers.

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3 So if the whole church comes together and everyone speaks in tongues, and inquirers or unbelievers come in, will they not say that you are out of your mind?

14: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4 But if an unbeliever or an inquirer comes in while everyone is prophesying, they are convicted of sin and are brought under judgment by all,

14:25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25 as the secrets of their hearts are laid bare. So they will fall down and worship God, exclaiming, “God is really among you!”


 

방언기도를 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방언기도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단어가 아닌 단순한 말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방언으로 기도할 때 무엇을 기도하는지 아세요?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이런 내용으로 기도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들리는 단어는 랄랄라 와 같은 단어가 반복될 뿐인데 그게 그런 다양한 의미인지 반문합니다.

그러면 저는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는 아기가 다양한 말로 표현을 못하고 어~, 응~, 에~ 와 같은 단어로 의사 표현을 하지만 그 아이가 원하는 것과 내적 욕구가 다양한 것처럼 방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 답변합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한정적인 단어로 반복을 하는 방언기도를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그냥 우리말로 기도할 때처럼 합니다. 그래서 방언기도를 하더라도 지금 내가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표현한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라 (15)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과 마음으로 하는 전인격적인 예배 (13~19절)

그런 점에서 바울은 방언기도를 하는 자들에게 통역의 은사를 구할 것을 명령합니다(13).

사실 통역의 은사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영어를 통역하듯 어떤 사람의 방언을 알아듣는 것인지, 사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방언기도의 단어가 너무 한정적입니다. 문장을 전혀 구성하지 못할 단어들입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통역 은사란 저처럼 자신이 하는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 정도이거나, 아니면 마치 엄마들이 아이의 부족한 단어로 이루어진 의성어를 알아듣듯 그 기도의 내용을 캐치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성경에 정확하게 나와있는 부분이 아니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도하는 본인이 무슨 내용의 기도인지도 모르고 기도하는데, 통역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이 당신은 지금 이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통역이 맞는지 틀렸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여하튼 자신이 하는 기도의 내용을 모르고 단어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영으로 기도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마음은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14).

그러므로 바울은 영과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고(15), 축복하고(16), 감사할 것(17)을 주문합니다.

여기서 은 헬라어 프뉴마 πνεῦμά로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마음은 헬라어 누스 νοῦς로 인간의 내적인 성향, 정신, 이성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바울은 공식적인 교회의 모임인 예배는 영 뿐 아니라 이성과 지적인 부분을 잃지 말고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전인격적인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저 영적인 황홀경에 빠져 영적이고, 신비적인 것만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의 예배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고린도 교인들은 미성숙했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상한 소리만내면 그것이 영적으로 성숙한 것처럼 자랑을 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신사도운동이라든가 빈야드 운동이 가지고 있는 맹점입니다. 그저 신비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니 이상한 짐승소리나 웃음소리까지 방언이라고 말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이미 오늘날 나타날 불건전한 영적인 이단들의 행태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시 성경입니다!

이성과 지성의 끈을 놓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축복하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그 축복과 기도를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공적인 예배에서 기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되어 아멘 하고, 함께 감사할 때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예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기도자 뿐 아니라, 청중도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17).

바울은 모든 사람들보다 방언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그는 방언 보다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몇 마디 가르치는 것을 훨씬 귀하게 생각합니다(18~19).



불신자들과 방언과 예언 (20~25절)

바울은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20) 고 명령합니다.

그는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서로 분쟁하고 교만하여 방언을 자랑하는 악에는 어른, 지혜에는 어린아이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의 율법을 인용하여 방언의 무익함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사 28:11~12)


다만 방언은 불신자들에게 표적이 됩니다(22a). 하지만 방언의 역할은 거기까지입니다.

만일 불신자들이나 믿음의 초보자들이 교회에 왔는데,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이 방언으로만 말하면 그들은 우리를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23).



반면에 예언은 믿는 자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이나 초신자들이 교회에 왔을 때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말씀이 선포되면, 말씀으로 말미암아 책망과 판단을 받게 되고 양심에 찔림을 받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24~25).

모든 선교의 출발은 언어입니다.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했던 작업도 성경을 번역하는 일입니다.

현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어야 그 말씀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이적과 같은 표적은 예언, 곧 말씀이 선포되기 전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우리의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선행으로 사람들의 마음문을 열고, 그 마음 속에 역사하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전인격적인 삶의 예배요,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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