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9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16: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16: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16: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16: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Ahab Becomes King of Israel
29 In the thirty-eighth year of Asa king of Judah, Ahab son of Omri became king of Israel, and he reigned in Samaria over Israel twenty-two years. 30 Ahab son of Omri did more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than any of those before him. 31 He not only considered it trivial to commit the sins of Jeroboam son of Nebat, but he also married Jezebel daughter of Ethbaal king of the Sidonians, and began to serve Baal and worship him. 32 He set up an altar for Baal in the temple of Baal that he built in Samaria. 33 Ahab also made an Asherah pole and did more to arouse the anger of the Lord, the God of Israel, than did all the kings of Israel before him.
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34 In Ahab’s time, Hiel of Bethel rebuilt Jericho. He laid its foundations at the cost of his firstborn son Abiram, and he set up its gates at the cost of his youngest son Segub, in accordance with the word of the Lord spoken by Joshua son of Nun.
이 세상에는 참으로 악한 자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악한 정도를 수치로 그려본다면 무한대에 이를 정도로 우리 인간의 악함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악한 자 중에 가장 악한 자라고 칭할 수 있는 자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아합왕입니다. 그는 소극적인 악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모독하고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기 위해 왕위에 오른 자처럼 극악무도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매우 적극적인 악한자 였습니다. 그 때문에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호와를 향한 신앙까지도 멸절될 위기에 처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던 것입니다.
사실 아합은 열왕기서에서 대단히 주목하는 왕입니다. 그래서 아합에 대해 16~22장에 걸쳐 많은 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통치 기간에 극단적인 두 입장의 의견이 치열하게 이루어진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즉 그동안 암묵적으로 갈등을 빚어온 우상 숭배자들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 간의 다툼이 공공 연화된 시기가 바로 아합의 시대입니다. 아합은 이러한 대립 구도에서 한쪽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양편의 대립이 절정에 달한 시점에 등장한 ‘가장 악한 왕’이었다고 본문 30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아합의 어떠한 모습들이 가장 악한 왕의 모습과 행동들이었을까요?
1.다른 사람들의 죄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우리 인간은 앞서간 사람들이 걸어간 곳을 따라가서 길을 만들기도 하고, 또는 길이 났으니 그냥 따라가기도 합니다. 길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잖아 라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좋은 점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쁜 점도 그대로 따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합은 31절 상반 절에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여로보암은 우상 숭배를 모든 사람이 함께 하도록 만들었던 죄인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여로보암의 죄를 아합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는 소리입니다.
아합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러 갔습니다. 아합은 여로보암을 모범으로 삼아 그를 능가하는 죄를 짓는 데 서슴지 않았던 완악한 심령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갔다가 마음이 흔들릴 것을 걱정하여, 벧엘과 단에 예배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그것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큰 죄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아예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며 예배한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는 32절에 말한 것처럼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까지 세웠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바알 숭배의 중심지로 삼고, 바알을 공식 국교로 도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바알의 아내라고 불리는 아세라 목상까지 만들어 그곳에 세운 것입니다.
이런 아합의 행동과 말을 보면서,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과 죄의식 없이 무작정 따라가다가, 결국 죄가 생활이 되어 버리는 심각한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 악인을 모범으로 삼는 자는 가장 악한 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악한 자를 모범으로 내세워 비교하여 자신의 죄를 무마시키거나 위안을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아합과 같이 악인을 자신의 표준으로 여기는 가장 악한 자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악한 자의 모형인 가인과 발람 그리고 고라를 모범으로 삼는 자에게 엄히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서 1:11절에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탐욕의 본으로,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을 부도덕의 본으로, 타작과 방종의 본으로는 노아와 롯의 시대를 들어 악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실로 악한 자를 모범으로 삼거나 생각 없이 따라서는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떠한 길을 따르며 걸어가고 계십니까? 진정 예수님이 가신 그 길, 영원한 생명의 길만을 따라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다른 사람과 함께 악을 더욱 행하는 자였습니다.
본문 31절을 보면 아합은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은 바알을 섬기는 시돈 왕 옛바알의 딸이며, 음행과 술수가 많고 선지자를 죽였으며, 음모를 써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등 생각과 성품이 극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세벨 때문에 이스라엘은 더욱더 깊은 죄악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합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합이 그녀에게 악의 터전을 제공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합의 행위를 다른 사람과 함께 악을 행하고 있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합의 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십니까?
33절에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아합이 더욱 죄를 지은 것은 하나님을 심히 진노하시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받을 벌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죄들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한 죄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죄도 있지만 이런것 쯤이야 하는 가볍게 생각한 것들이 죄와 연결되며 그러한 죄를 쌓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합이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게 된 것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것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것을 아합이 무겁고 심각하게 보았더라면, 하나님께 돌아갈 길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는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죄나 죄의 찌꺼기를 쌓아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 예배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깍아내고 죄의 찌꺼기들을 날마다 청소하며, 더욱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유혹하는 자였습니다.
죄를 짓고 부끄러워하면 돌이킬 기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떳떳하다고 억지를 쓴다면, 돌아갈 기회조차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문제는 성경이 죄라고 규정하는 것을 더 이상 죄로 여기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이 너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를 죄로 여기고, 이러한 죄에 대해 진정으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면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간음한 여인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려고,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요한복음 8:11절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지만, 그 여인이 한 일을 죄라고 말씀하시고,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가볍게 여기는 자는 죄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더욱더 많은 죄를 짓게 됩니다. 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그것이, 또는 잘못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실수를 실수로 인정해야 하며, 어떠한 작은 죄라도 그 죄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를 우리는 분명한 죄라고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죄는 미워하고 심판받아야 하지만, 인간은 주님의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하며 이러한 일들 가운데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어떠한 죄든 결코 그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가장 악한 자 아합의 최후는 너무나 비극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피를 개들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악한 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악인을 우리의 삶의 모델이나 규범으로 삼아서도 안 되며, 악인으로 하여금 협력케 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협력은 여러분을 꾀어 범죄케 할 뿐이기 때문이며, 또 악인의 활동을 권장하거나 간접적으로 도와줘도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소리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방법들이 어느 순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여러 선택을 하기 전에 그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의 원하시는 올바른 선택을 해 나아가시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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