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20240502 [새벽묵상] 높아짐과 낮아짐의 사이 | Between Rising and Falling (왕상/1Kings 12:12~20)



12: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2: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2: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2: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12 Three days later Jeroboam and all the people returned to Rehoboam, as the king had said, “Come back to me in three days.” 13 The king answered the people harshly. Rejecting the advice given him by the elders, 14 he followed the advice of the young men and said, “My father made your yoke heavy; I will make it even heavier. My father scourged you with whips; I will scourge you with scorpions.” 15 So the king did not listen to the people, for this turn of events was from the Lord, to fulfill the word the Lord had spoken to Jeroboam son of Nebat through Ahijah the Shilonite.


12: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2: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6 When all Israel saw that the king refused to listen to them, they answered the king:


“What share do we have in David,

    what part in Jesse’s son?

To your tents, Israel!

    Look after your own house, David!”


So the Israelites went home. 17 But as for the Israelites who were living in the towns of Judah, Rehoboam still ruled over them.


12:18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2: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18 King Rehoboam sent out Adoniram,[b] who was in charge of forced labor, but all Israel stoned him to death. King Rehoboam, however, managed to get into his chariot and escape to Jerusalem. 19 So Israel has been in rebellion against the house of David to this day.


12: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20 When all the Israelites heard that Jeroboam had returned, they sent and called him to the assembly and made him king over all Israel. Only the tribe of Judah remained loyal to the house of David.


 

저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면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조직과 공동체가 존재합니다. 그 조직과 공동체 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지도자와 그 지도를 받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리더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들과 자질들을 조사하고, 어떠한 리더가 바람직한 지도자 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리더의 자리에 서길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리더십 관련 프로그램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좋은 리더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대한 리더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떠한 리더가 되기를 원하시나요? 아니 최소한 어떠한 리더의 모습은 닮고 싶지 않으시는가요? 이 질문에 답을 오늘 말씀 속에서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구하지도 않고 원로들의 지혜로운 조언도 듣지 않은 르호보암은 3일 만에 자신 앞에 나타난 백성들에게 젊은 신하들이 제안한 대로 대답합니다. 14절에 보면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라고 말합니다.

 

르호보암은 어리석음을 넘어 포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며, 백성들의 분노와 반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이 제안한 그 강압적 통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더 거칠고 무서운 말투를 사용하면 자신의 권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백성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그에 관심은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하면 더 강하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이러한 르호보암의 모습을 보며 리더가 최소한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과격한 말투, 난폭한 언어,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자세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분노와 불만을 일으키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모습을 통해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보다 더 강력하게 통치하겠다면서 전갈 채찍을 사용하면서 백성들을 위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하면 백성들이 자기 자신에게 복종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말한 전갈 채찍을 들기도 전에 하나님의 인생 채찍에 의해 징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 저와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말하고 있는 언어, 억양, 어투 또 저희의 얼굴표정, 손짓, 몸짓 하나하나 들리고 보이시나요? 생각이 나시나요? 이러한 모든 것 중에 혹시 귀에 거슬리는 것이나, 보이는 것 중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 표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거슬리고 찌푸리게 만드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찌르게 되며, 분노케 하고 상처받게 만듭니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이 말씀에 거울 앞에서 혹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아파하지는 않았는지, 또는 나로 인해 복음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아버지 솔로몬에 의해서 왕이 된 르호보암은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과 능력에 맞게 겸손하게 백성을 섬겨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백성 위에 군림하고, 통치하려고 하다가 결국 최악의 무리수를 두고 만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출세하려고 하고 더 성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올라간 자리에서 권력을 즐기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일생일대 가장 치명적이며 치욕적인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지금 높아지기 위해 올라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마가복음 10:45절에서 저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가장 많이 강조되고 있는 낮아지는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의 개념입니다. 예수님의 역설적인 진리인 높아지려면 낮아지라는 하나님 말씀을 세상 사람들이 이제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무려 200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럼 저와 여러분은 이 진리의 말씀을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주고 계신가요? 오늘도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섬기며 낮아져라” 이 말씀에 저의 모두가 아멘으로 화답하는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섬기는 왕이 아닌 군림하려는 왕이 되고자 했던 르호보암의 강압적인 통치 상황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노하며 반발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다윗 왕조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르호보암을 떠나게 됩니다. 1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라고 구호를 외치며 르호보암에게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이 구호는 이제 다윗 왕조로부터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다윗 가문과 관계할 필요가 없으며, 다윗 왕조를 섬길 필요가 없다는 반역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해 줄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못하는 왕조를 설사 그 왕조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다윗 왕조라 할지라도 필요 없다라는 세속적 물질주의와 이해타산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어디서 본 것 같지는 않으시는가요?

 


정말 안타까운 것은 본문에 등장하는 배경 속 모습은 3천 년 전의 이스라엘 지파들의 모습인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저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들의 영혼이 죽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물질적, 육신적 유익만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물질과 명예를 소비했느냐로 인생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까, 어떠한 유익을 줄 수 있을까를 먼저 계산하며 만납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이러한 세상적인 모습과 구별된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우리는 영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5절에 기록된 이러한 모든 일들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이스라엘을 분열로 치닫게 된 것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간섭하지 않으시고 그냥 내버려두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지만,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행함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솔로몬에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파국 속에 있었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그들의 죄악 속에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인생 속에 과연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먼저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여러분에게 귀찮게 여겨지시나요? 저와 여러분의 삶에 걸림돌이라 여겨 지시나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 속에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축복이 함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터치하심, 인도하심을 사모 하십시요. 또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인생을 간섭하실 때 저와 여러분은 제대로 된 멋진 인생,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러한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만지심이 넘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