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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새벽묵상] 매일 조금씩… | A Little Every Day... (막/Mk 8:14~26)



8: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The Yeast of the Pharisees and Herod

14 The disciples had forgotten to bring bread, except for one loaf they had with them in the boat. 15 “Be careful,” Jesus warned them. “Watch out for the yeast of the Pharisees and that of Herod.”


8: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8: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16 They discussed this with one another and said, “It is because we have no bread.”


17 Aware of their discussion, Jesus asked them: “Why are you talking about having no bread? Do you still not see or understand? Are your hearts hardened? 18 Do you have eyes but fail to see, and ears but fail to hear? And don’t you remember? 19 When I broke the five loaves for the five thousand, how many basketfuls of pieces did you pick up?”


“Twelve,” they replied.


8: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0 “And when I broke the seven loaves for the four thousand, how many basketfuls of pieces did you pick up?”


They answered, “Seven.”


8: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21 He said to them, “Do you still not understand?”


8: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8: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Jesus Heals a Blind Man at Bethsaida

22 They came to Bethsaida, and some people brought a blind man and begged Jesus to touch him. 23 He took the blind man by the hand and led him outside the village. When he had spit on the man’s eyes and put his hands on him, Jesus asked, “Do you see anything?”


8: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4 He looked up and said, “I see people; they look like trees walking around.”


8: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8: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25 Once more Jesus put his hands on the man’s eyes. Then his eyes were opened, his sight was restored, and he saw everything clearly. 26 Jesus sent him home, saying, “Don’t even go into the village.”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 (14~21절)


예수님은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 다시 갈릴리 호수 서쪽 지방인 달마누다로 가셨습니다(10).

그런데 그곳에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곳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분주한 나머지 빵을 챙기는 것을 잊었습니다. 수중에 빵이 한 개밖에 없습니다(14).

그 때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15).

마태는 동일한 사건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기록합니다(마 16:6).

종합해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헤롯당 모두를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한편 누룩은 빵을 발효시키는 효소(이스트)로서 긍정적인 비유와 부정적 비유에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누룩은 가장 일반적으로 죄에 대한 은유로, 급속하게 번져 나가는 죄의 전염성을 가리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누룩은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삶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빵으로 시작하여 지극히 영적인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귀한 가르침 가운데에도 여전히 먹을 빵만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금 주님께 야단 맞은 거지? 그러길래 네가 잘 챙겨야지! 막내 너 뭐했냐?(16)


Disciples Still Unaware (Verses 14-21)

After the miraculous feeding of the four thousand, Jesus headed to Dalmanutha, west of the Sea of Galilee (10). There, Pharisees seeking signs awaited Him. Jesus, along with His disciples, departed, taking a boat to the other side. In their busyness, the disciples forgot to bring enough bread, and there was only one loaf (14). At that moment, Jesus cautioned them about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Herod (15). Matthew records a similar event, warning about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Sadducees (Matthew 16:6). In summary, it implies caution toward the Pharisees, Sadducees, and Herod's party. Leaven, in this context, is used negatively, commonly representing sin and symbolizing the rapid spread and infectious nature of sin. In today's passage, leaven signifies their false teachings and way of life.

Beginning with the metaphor of bread, Jesus delivered a profoundly spiritual teaching. However, the disciples were still preoccupied with the concern of having no bread. It's as if they were scolded, "You should take care of it! What were you doing?" (16)



이에 예수님은 답답하시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17a).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17b).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18).

오병이어에서 남은 바구니는? 열 둘입니다(19). 칠병이어에서 남은 광주리는? 일곱 개입니다(20).

그런데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21)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떡이 한 개면 이 상황에서 어떤 기대를 해야 합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다 먹고나서 몇 바구니가 남을까? 이런 믿음의 기대감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여전히 먹고사는 의식주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계속 하늘 이야기, 영적인 이야기를 하시는데, 제자들은 계속 의식주 문제만 걱정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습은 아닌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라고 질문하십니다.

먹고 입고 자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미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당시의 제자들은 다음 둘 중에 하나가 결여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아니면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In response, Jesus, feeling frustrated, asked, "Why are you discussing the fact that you have no bread? Do you not yet perceive or understand? Is your heart still hardened? Having eyes do you not see, and having ears do you not hear? And do you not remember?" (17-18). He then reminded them of the leftover baskets and loaves from the feeding of the four thousand (19-20). Yet, they still did not understand (21).

What expectations can one have with only one loaf in such a situation? It's normal to have faith and anticipate the provision of leftovers after a meal. However, the disciples were still worried about their daily needs. Jesus continued to speak of heavenly matters and spiritual insights, but the disciples remained fixated on earthly concerns. Jesus questioned, "Do you not yet understand?" Are we not often like this? Jesus emphasizes that issues of eating, clothing, and sleeping are not unimportant; God, our Father, knows we need these things. Therefore, the disciples mentioned in today's passage lacked one of two things: faith in who Jesus is or faith in their relationship with God.



맹인 치유 사건 (22~26절)


성경 복음서에는 유독 맹인들의 치유 사건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당시에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있었을까요?

먼저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도 유전자에 의한 선천적인 문제이거나, 또는 태중에서 산모가 잘 먹지 못해서 영양 부족에 의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 이유는 후천적인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석회암 지대로 많은 석회석 먼지가 날립니다. 그리고 기후의 급격한 변화는 시력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지역에는 후천적인 시각장애인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이처럼 많은 시각장애인들을 고쳐 주시는 것은 그가 세상의 참 빛임을 밝히 드러내는 이적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요 9: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벳새다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한 맹인을 데리고 나와 예수님이 손 대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맹인의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23a)


Healing of the Blind Man (Verses 22-26)

In the Bible, there are numerous accounts of the healing of blind individuals, indicating a prevalence of visual impairments during that time. Why were there so many blind people? First, some might have been born with congenital visual impairments, possibly due to genetic issues or malnutrition during pregnancy. Another reason is acquired blindness, often attributed to environmental factors. The region of Israel, with its abundant limestone, produced a lot of limestone dust, and the drastic climate changes significantly affected eyesight. Therefore, it was inevitable that there were many cases of acquired visual impairments in that area.

Jesus healing many blind individuals is a sign revealing His true light to the world. He declare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John 9:5) during His time on Earth. When Jesus arrived in Bethsaida, people brought a blind man to Him, requesting that He touch the man. In response, Jesus took the blind man outside the village (23a).



왜, 예수님은 마을 밖으로 나간 것일까요? 앞선 기적의 현장들에 보여주었던 이유와 비슷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이적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되기를 원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한 인격체가 사람들의 호기심천국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몸이 아픈 자들과 조용한 곳에서 개별적으로 만나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신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환상적인 쇼가 아닌 불쌍한 한 사람의 영혼에 집중하셨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셨습니다(23b)

눈에 침을 퇘~ 하고 뱉으셨다는 것이 상상이 안 갑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공동번역)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왜 더럽게 침을 바르셨을까요? 군대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참의 침은 로얄젤리다!

그렇다면 주님의 침은 A++급 로얄젤리여서 효능이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지난번 에바다 사건 때와 같이 당시 일반적인 치유의 형태였기 때문일 것이고, 동시에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Why did Jesus go outside the village? It is similar to the reasons shown in the previous miracles; Jesus did not want His miracles to become a spectacle for people's curiosity. He did not desire to be a sensation; rather, Jesus focused on individual encounters with those in need, emphasizing personal relationships.

Next, Jesus spat on the blind man's eyes and asked him what he saw (23b). The act of spitting on someone's eyes is hard to imagine. The Common Translation of the Bible interprets it as Jesus applying saliva to the man's eyes, then asking, "Can you see anything now?" (Common Translation). Why did Jesus use spit? In the military, there's a saying: a sergeant's spit is royal jelly! So, was Jesus' spit a grade A++ royal jelly with miraculous properties? No. The reason for this action is likely that it was a common form of healing during that time, reflecting Jesus' genuine and compassionate approach.



이번 사건은 좀 더 당황스러운 점은 예수님이 안수하시고 한 번에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재차 안수하여 맹인이 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서 폄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없으면 두 번, 세 번 한다고 치유되지 않습니다. 횟수는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만으로도 치유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 왜, 이렇게 점진적으로 치유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렌스키교육학적 과정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100% 동의합니다.

예수님은 교육의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교육입니까?

맹인은 다름 아닌 당시 제자들의 영적인 모습이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영적인 모습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눈이 있었지만 아예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맹인이 그랬던 것처럼 희미하게나마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이제 바로 이어지는 다음 사건에서 비로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을 신앙의 점진성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한 번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차근차근 점진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느리지만, 가지 않는 것 같지만 천천히 가서 결국에는 결승선에 가는 것이 신앙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가면 됩니다. 끝까지 가면 됩니다.  

 

A perplexing aspect of this incident is that Jesus did not heal the blind man immediately after the first touch. Instead, He touched him again, and then the blind man could see. Some may criticize Jesus' ability based on this. However, healing does not depend on the number of times; the crucial point is not the frequency but why Jesus chose to heal progressively. Lenski suggested that it was an educational process, and I wholeheartedly agree. Jesus had an educational purpose in mind. What kind of education is this?

 

The blind man represents the spiritual condition of the disciples at that time and, by extension, the spiritual condition of believers today. Just as the blind man gradually, though dimly, recognized who Jesus was over time, the disciples came to understand and confess who Jesus truly is in the subsequent events. This is called the progression of faith. Faith does not happen instantly; it develops gradually. It may seem slow, and you might feel like you're not making progress, but moving steadily toward the finish line is the process of faith. Therefore, there's no need to be too hasty. Every day, take a step, no matter how small. Keep persevering until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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