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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특새묵상]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 The Authority of Forgiveness in Jesus (막/Mk 2:1~12)



2: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2:4 무리를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1 A few days later, when Jesus again entered Capernaum, the people heard that he had come home. 2 They gathered in such large numbers that there was no room left, not even outside the door, and he preached the word to them. 3 Some men came, bringing to him a paralyzed man, carried by four of them. 4 Since they could not get him to Jesus because of the crowd, they made an opening in the roof above Jesus by digging through it and then lowered the mat the man was lying on. 5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zed man, “Son, your sins are forgiven.”


2: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6 Now some teachers of the law were sitting there, thinking to themselves, 7 “Why does this fellow talk like that? He’s blaspheming! Who can forgive sins but God alone?”


2: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8 Immediately Jesus knew in his spirit that this was what they were thinking in their hearts, and he said to them, “Why are you thinking these things? 9 Which is easier: to say to this paralyzed man,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Get up, take your mat and walk’? 10 But I want you to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So he said to the man, 11 “I tell you, get up, take your mat and go home.” 12 He got up, took his mat and walked out in full view of them all. This amazed everyone and they praised God, saying, “We have never seen anything like this!”


 

 

예수님이 가버나움 마을 밖에서 거주하시다가 잠시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내 집은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예수께로 나옵니다.

수많은 사람으로 인하여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내지는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환자를 달아 내립니다. 이스라엘 가옥은 진흙과 짚으로 만들었고, 지붕은 평평하며, 옆에 계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시고는 그의 죄사함을 선포하시고, 그에게 일어나 침상을 들고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내리는 자들의 믿음을 보셨다(5)고 전합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보신 그들의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께 가기만 하면 이 근원적인 문제(구원, 치유)인 중풍병이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믿음이란 구원이 예수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께 나와야 합니다.

주님께 나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Jesus returned home after residing outside the town of Capernaum.News of Jesus being at home spread, and a large crowd gathered, filling the house to capacity. Four friends carrying a paralyzed man came to see Jesus.

There were so many people that they couldn’t go see Jesus. Undeterred, they climbed onto the roof, made an opening, and lowered the paralyzed man to Jesus.

The Israelite houses at the time were made of mud and thatch, with flat roofs and stairs on the side.

Recognizing their faith, Jesus commended them, proclaimed forgiveness, and instructed the paralyzed man to rise and carry his mat. And all of a sudden the paralyzed man gets up and walks. Witnessing this miraculous healing, the people marveled and glorified God.

Mark reports that Jesus saw the faith of those who lowered the paralyzed man through the roof (Mark 2:5).

What exactly is the nature of the faith that Jesus saw in them?

It is the conviction that if they come to Jesus, the root problem (salvation, healing) of paralysis will be resolved.

Faith is knowing that salvation is found in Jesus, and there is no one else who can solve all the problems we have. Therefore, we must come to Jesus with our problems.

We believe that if we come to the Lord, all our problems will be resolved. This is faith.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께 나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방해가 시작됩니다.

새벽기도를 결심하는 순간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저녁약속, 부부싸움, 감기 등…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그 문제에 굴복하지 않고, 우회하여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지붕을 뚫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지붕이라는 물리적인 장애물, 사람들이라는 관계와 같은 사회적 장애물이 있습니다.

또한 보상청구를 당할 수도 있는 물질적 장애, 예수님께 치유는 커녕 야단 맞을 것이 걱정되는 심리적 장애물 등등, 하지만 예수께 나가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그들의 믿음이 이 모든 장애물보다 강력했습니다.

뺑엘이라는 학자는 예수님을 만나려면 모든 장애물을 뚫고 나갈 용기가 있어야 한다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예수께 나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과 더불어 예수께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까지도 너끈히 뚫고 나가는 강력한 열정의 자세까지 포함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의미는 바로 이 두가지 믿음을 보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남의 집 지붕이라도 뚫는 것이 믿음인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However, there was a problem. When deciding to go to Jesus, there was such a big crowd that they could not go to Jesus.

Various types of obstacles emerge from the moment of commitment.

What happens when you decide to go to early morning prayer service? Evening appointments, fights with your husband/wife, being sick, and more—these are common experiences.

Yet, the paralyzed man and his friends did not yield to these problems. Instead, they bypassed the obstacles, broke through the roof, and came to Jesus.

How many conflicts and obstacles did they face before breaking through the roof?

There were physical barriers like the roof, social hindrances like the crowd, and potential material or psychological concerns such as fear of reprisal or doubt about healing. However, their faith in coming to Jesus to resolve their problems was stronger than all these obstacles. The scholar Johann Albrecht Bengel stated that to meet Jesus, one must have the courage to overcome all obstacles. Indeed, faith includes a firm conviction that all problems will be solved by coming to Jesus, along with a powerful passion to overcome hindrances.

When Jesus saw their faith, it means he recognized these two aspects of faith.

Does this mean that breaking into someone else's house for a good cause is an act of faith?



일반적,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최대한 공공장소에서는 질서와 예의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자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나중에 예수님의 집 지붕을 수리해 주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괜찮다고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어쩔 수 없는 특별한 경우에는 예수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 주겠지만, 매일 남의 지붕을 뚫는 것은 남의 머리의 뚜껑이 열리게 하는 어리석고, 은혜롭지 못한 행동입니다.

반면에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과 같이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다른 사람의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판단하는 것 역시 성숙하지 못한 신앙태도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수군거리고, 비판하고,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믿음의 눈은 믿음의 행동을 알아봅니다. 서로서로 배려와 사랑과 믿음의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특별한 상황이 아닐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Generally, it is not. Christians are called to avoid causing harm to others. Maintaining order and courtesy, especially in public places, is the true Christian attitude. Perhaps, in this unique situation, Jesus may have understood and even approved. They might have later repaired Jesus' roof, or Jesus might have reassured them that it was acceptable. However, breaking into someone's house daily is foolish and ungracious behavior, disregarding the well-being of others.

On the other hand, being overly critical, like the scribes mentioned in the text, and passing judgment on another person's active faith without understanding the situation is an immature attitude that God despises. Criticizing, grumbling, and making judgments without knowing the circumstances is one of the things God most detests.

The eyes of faith recognize the actions of faith. We should be able to see each other with hearts of care, love, and faith. Also, when there are no special circumstances, we should do our best not to cause harm to others.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은 누구인가?

본문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보시고,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5b)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치유가 아닌 죄사함을 선포하신 것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시기 위함이 아닌,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고, 전인적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죄와 질병이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에 깃든 질병이 인생의 죄와 근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야고보는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6)말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죄사함과 치유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근원적인 죄와 나타난 현상인 중풍을 모두 고쳐 주시기 위해 네 죄사함을 받았다 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다 말씀하여 주시기를…  


Who is this Jesus who has the power to forgive?

In the passage, Jesus sees the paralytic and says, "Son, your sins are forgiven" (Mark 2:5b). Jesus proclaiming forgiveness rather than healing shows that His coming to this world is not solely to heal physical diseases but to address our spiritual problems and accomplish holistic salvation. It also indicates that sin and disease are not unrelated; they share a fundamental connection in human life.

James emphasizes the intertwining of sin and healing, urging believers to confess their sins to one another and pray for one another, as the prayer of a righteous person has great power as it is working (James 5:16). Fundamentally, forgiveness of sins and healing are not separate. Therefore, when Jesus declares, "Son, your sins are forgiven," it signifies His intention to restore both the root sin and its manifestation, paralysis. Today, we also yearn for Jesus to speak the words, "son, your sins are forgiven."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은혜를 받는 현장에서 본인만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인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은혜를 율법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죄사함을 선포하는 예수님을 보며, 마음 속으로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7b)며 신성모독이라 생각하고 가짜 선지자라고 판단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시고 인자에게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10)을 그들에게 알게 하시기 위해 중풍병자에게 세가지 명령형 동사인 일어나라, 들어라, 그리고 가라 말씀하십니다.

죄를 사하신다는 말만 했을 때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 죄사함의 증거로 그의 병을 치유하심으로 주님의 죄사함의 선포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허무한 말 뿐인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을 보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마음속으로 질문했던,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7b)의 답변으로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죄 사하심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서기관들의 논리대로라면,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However, there are individuals at the scene who, despite everyone else receiving grace, find themselves unable to partake in that grace—these are the scribes. They attempt to interpret grace through legalism. When they see Jesus proclaiming forgiveness, they inwardly question, "Who can forgive sins but God alone?" (Mark 2:7b), deeming it blasphemy and judging Jesus as a false prophet.

To make known the authority of forgiveness to them, Jesus penetrates their hearts and, to the paralytic, issues three imperative verbs: "Rise, pick up your bed, and go home" (Mark 2:11). By healing the disease as evidence of His authority to forgive sins, Jesus demonstrates that His proclamation of forgiveness is not just empty words, unlike the futile teachings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Hence, in response to their inward query about who can forgive sins, Jesus, by curing the paralytic, provides the answer—they witness that Jesus is the one who forgives sins.

If we follow the logic of the scribes, Jesus would be God alone. Hallelujah!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죄 사함의 은혜가 선포됩니다.

그리고 죄사함의 은혜가 넘치는 곳에는 육체적 질병의 치유의 역사도 넘쳐납니다.

우리 관계의 중풍병이, 과거 상처의 중풍병이 모두 치유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권세입니다.

오늘 새벽 기도할 때, 죄 사함의 역사와 치유의 역사가 동시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예수 앞에 나가 구원 받고 치유함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he Gospel brings the proclamation of the grace of forgiveness.

 And where the abundance of grace for forgiveness prevails, there also overflows the history of physical healing.

We desire a history where the paralysis in our relationships and the paralysis caused by past wounds are both healed. This is the authority that the children of God, who confess Jesus as their Savior, can enjoy. As we pray in the name of the Lord, we believe that forgiveness and restoration will occur simultaneously during our morning pr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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