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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8 [새벽묵상] 기도와 말씀의 거울 | Mirror of Prayer and Word (잠/Prv 30:1~14)



30: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1 The sayings of Agur son of Jakeh—an inspired utterance.

This man’s utterance to Ithiel:

“I am weary, God,

    but I can prevail.


30: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0: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2 Surely I am only a brute, not a man;

    I do not have human understanding.

3 I have not learned wisdom,

    nor have I attained to the knowledge of the Holy One.

4 Who has gone up to heaven and come down?

    Whose hands have gathered up the wind?

Who has wrapped up the waters in a cloak?

    Who has established all the ends of the earth?

What is his name, and what is the name of his son?

    Surely you know!


30: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30:6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5 “Every word of God is flawless;

    he is a shield to those who take refuge in him.

6 Do not add to his words,

    or he will rebuke you and prove you a liar.


30: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7 “Two things I ask of you, Lord;

    do not refuse me before I die:

8 Keep falsehood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but give me only my daily bread.

9 Otherwise, I may have too much and disown you

    and say, ‘Who is the Lord?’

Or I may become poor and steal,

    and so dishonor the name of my God.


30:10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10 “Do not slander a servant to their master,

    or they will curse you, and you will pay for it.


30:11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30:12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30:13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30:14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11 “There are those who curse their fathers

    and do not bless their mothers;

12 those who are pure in their own eyes

    and yet are not cleansed of their filth;

13 those whose eyes are ever so haughty,

    whose glances are so disdainful;

14 those whose teeth are swords

    and whose jaws are set with knives

to devour the poor from the earth

    and the needy from among mankind.


 


오늘 본문은 아굴의 잠언 입니다. 2~9절은 1인칭의 고백으로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굴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이곳에서만 나옵니다. 아굴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적인 이름이 아닙니다. 

 

2~3절을 보면 아굴은 자신이 인간이 되기에는 부족하며 짐승과 같은 존재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되기에 지혜가 부족하다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의 짐승은 자기중심의 본능으로 행동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존재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 앞에 놓인 인간의 고백은 철저하게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욥의 고백과 회개가 다른 사람에 비해 그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아굴의 고백도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의 지혜가 부족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선 모든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고백인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 겸손할 때 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굴은 지혜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줄 아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혜와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을 동일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성경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거기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자신을 낮추는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4~6절 입니다. 4절은 6개의 의문문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 질문의 화자가 아굴인지 하나님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첫번째 질문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냐” 입니다. 신명기 30:12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과 땅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서로 넘나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늘과 땅의 간격을 확인시켜 주는 질문입니다. 

두번째 질문에 ‘장중’은 손바닥 안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실재를 느낄 수 있어도 볼 수 없고 만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질문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냐” 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옷은 구름입니다. 즉 하나님만이 비를 구름에 싸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네번째는 하나님은 이 땅의 경계를 정하실 뿐만 아니라 땅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말합니다. 

 

다섯째와 여섯번째 질문은 여호와의 정체성에 대한 것을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출 3:14의 모세가 던졌던 질문과 유사합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격을 확인 시키면서 인간의 지혜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굴은 인간의 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과 유용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더하지도 말라’ 라고 말합니다. 아굴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성과 유용성을 철저하게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더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지치고 힘들고 주저 앉아 있을때, 그 속에서 방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위로와 안식,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으로 인해 죄로 오염된 우리의 삶이 다시금 순수성과 거룩성과 순결함을 회복하여 힘있고 능력있는 삶을 살아내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7~9절은 아굴이 드리는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언에서 나오는 유일한 기도로서 그 시대의 기도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7절에서 아굴은 하나님께 두 가지를 구하면서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라고 간절한 의미를 담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이후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 필요한것을 간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8절에 헛된것 거짓말을 멀리하게 해달라는 것과 필요한 것을 채워달라는 두가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앞은 영적인 필요이고 뒤는 육체적인 필요입니다. 9절에는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영광을 가리게 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굴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의 기도 모습과 내용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욕심이 앞선 나머지 무엇을 기도할 것이며 왜 그런 간구를 드려야 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 먼저 원하는 것을 무조건 이야기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 보면 부르짖고 나서 나중에 자신이 무엇을 기도했는지 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일어설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도 후에 정말 그 기도가 응답 되었는지 아니면 왜 응답 되지않았는지 분명하지 않아서 자꾸 같은 기도를 되풀이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기도에 대한 흥미와 확신을 잃어버리고 멀어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를 드리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구할지를 분명히 하십시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기도가 끝나기 전에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10절은 2인칭으로 시작하는 권면으로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라고 말합니다. ‘비방하다’ 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라솬’ 인데 은밀한 말로 비방하고 중상모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만 아뢸 수 있으며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약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기 때문에 약자를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약한 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채워주며 도움의 손길, 사랑의 손길을 끊지 아니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신실하심을 분명히 아는 자로 세워질 줄 믿습니다.

 

11~14절은 ‘무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인 ‘도르’로 시작합니다. 첫번째 무리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자 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모든 시대와 문화를 넘어 동일합니다. 또 본문에서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라 말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통념을 완전히 무시한 자들을 말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러한 자들에게는 사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잊지말고 부모님을 전심을 다해 사랑하며, 가슴에 상처와 아픔이 남지 않도록 또한 평생의 후회가 없도록 늘 살피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저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2절은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지만 자기의 더러움을 씻지 아니하는 자’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더러움’은 히브리어 ‘미쪼아’로 배설물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의 더러움을 씻지 않고 자신은 청결하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 있지만 자신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남에게 자꾸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자 입니다. 우리의 모습 안에 타인을 가르치려고 하는 모습, 나의 더러움을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13절은 교만한 자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눈이 높다는 말은 외적인 거만함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가장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해 남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즉 영적으로 의롭다고 뽐내는 것 뿐만아니라 교만의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마저 상관하지 않는 자 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많이 가졌다고 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고 해서 교만한 눈을 들고 뽐내며 자랑하는 자는 발끝으로 걷는 자 처럼 결코 오래가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저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4절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괴롭히고 착취하는 자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니와 어금니 순서로 난폭함의 강도가 심해지는 것을 설명합니다. 즉 칼과 같은 것이어서 칼을 지닌 강도와 같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간난하고 궁핍한 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 입니다.

 

다시말해 포학한 자들의 압제와 학대가 계속될 것이나 그때에도 그들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지 말고 오히려 섬기고 돌보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반대로 가난하고 약한 위치에서 이러한 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면 끝까지 소망을 잃지 말고 온유한 모습으로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왕이 오셔서 이들을 몰아내고 온유한 자가 땅을 얻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아굴의 기도 속에서 우리의 기도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굴의 신앙 고백과 정직하고도 진실한 기도, 소박하고도 은혜로운 기도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 욕심과 권력을 탐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것을 따를 때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욕심은 신의를 저버리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듭니다. 또한 자신의 본문을 저버리고 그 선을 넘어서는 행동이나 언행을 한다면 조직은 지탱해 나갈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자는 공동체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파멸을 불러옵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의 거울을 늘 우리 자신에게 비추며 내 안에 숨어있는 욕심과 교만을 벗어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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