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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7 [새벽묵상] 양육과 하나님과의 관계 | Parenting and Relationship with God (잠/Prv 29:15-27)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5 A rod and a reprimand impart wisdom,

    but a child left undisciplined disgraces its mother.

29: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16 When the wicked thrive, so does sin,

    but the righteous will see their downfall.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17 Discipline your children, and they will give you peace;

    they will bring you the delights you desire.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치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18 Where there is no revelation, people cast off restraint;

    but blessed is the one who heeds wisdom’s instruction.

29: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19 Servants cannot be corrected by mere words;

    though they understand, they will not respond.

29:20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20 Do you see someone who speaks in haste?

    There is more hope for a fool than for them.

29:21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 하리라

21 A servant pampered from youth

    will turn out to be insolent.

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22 An angry person stirs up conflict,

    and a hot-tempered person commits many sins.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23 Pride brings a person low,

    but the lowly in spirit gain honor.

29:24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24 The accomplices of thieves are their own enemies;

    they are put under oath and dare not testify.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5 Fear of man will prove to be a snare,

    but whoever trusts in the Lord is kept safe.

29: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26 Many seek an audience with a ruler,

    but it is from the Lord that one gets justice.

29:27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27 The righteous detest the dishonest;

    the wicked detest the upright.


 


15절과 17절은 자녀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체벌의 유용함을 누차 강조합니다(13:19, 19:18, 22:15). 자녀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녀를 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자녀를 내버려 두면 어머니를 욕되게 한다고 말합니다. 어제 본 3절에서는 아버지를 언급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영광이 되기도 하고 수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체벌이 필요할 때는 거기에 합당하게 나의 감정을 투영시키지 말고 사랑의 마음을 담아 행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마음과 모습처럼 인내하며 반복적으로 성경 말씀을 자녀 교육의 등불로 삼아 이야기하며 기다려주고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16절은 어제 본문 2절의 주제를 확대시킨 것입니다. 여기서는 악인의 확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악인이 많아지면 죄가 많아지고 그 사회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의인은 악인의 멸망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의인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살아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악해 질수록 낙심하기 보다는 오히려 머리를 들고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로 믿음을 지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할때 우리는 세상에서 참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낼 줄 믿습니다.


18절에 ‘묵시’는 ‘이상’ 혹은 ‘환상’으로 하나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없거나, 말씀에 대한 기강이 헤이해지면 백성은 생각과 행동의 기준점을 잃어버리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또한 ‘방자히 행한다’라는 말은 히브리어인 ‘파라’를 번역한 것으로 원뜻은 ‘굴레를 벗겨내고 느슨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8절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사람들은 굴레를 벗은 망아지처럼 마구 날뜀으로 혼란과 파멸이 오지만, 율법을 지켜 행하면 질서와 번영이 온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말라 행동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여호와께 물어봤지만 사무엘상 28:6은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신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사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말라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며 사울은 방자히 행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물질 문명의 발달과 함께 다원주의를 주장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을 넘어 날이 갈수록 도덕이나 윤리 등의 규범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과 규범이 무너지고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이 때에 더욱 견고한 모습으로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흔들리는 세상을 바로잡고 진리를 선포하며 파멸을 막나내는 든든한 기둥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9~22절은 종의 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안되어 있거나 심성이 악한 혹은 미련한 종은 말만으로는 주인을 따르지 않고, 알고서도 주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마찬가지로 징계와 체벌로 종을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20절에 말이 조급한 사람에 대해 경고합니다. 여기서 ‘말이 조급한 사람’은 말을 빨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보다 행동이 앞선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급하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말을 앞세우는 인물은 과정의 정당성을 무시한채 성취와 결과에만 관심을 둡니다. 이런 사람의 위험성은 ‘미련한 자’ 보다 더 위험합니다. 즉 미련한 자에게 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주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21절에 어릴 때부터 종을 자녀처럼 곱게 양육한다면 성인이 된 후에도 종은 자신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종으로 부릴 수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인에게도 손해가 되고 종 자신에게도 손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신분과 지위의 한계를 명확히 하도록 가르치고 양육해야 함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서로에게 혼란이 없고 책임 소재가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 자신에게 무조건 적인 칭찬을 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내 자신이 높아 지려는 마음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고 싹을 트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겸손에 힘써야 합니다. 축복과 칭찬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겸손함을 위해 더 많이 애쓰고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3절은 교만과 겸손을 대조하며 역설적인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고 겸손하면 영예를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교만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 입니다. 또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것은 몰락이며 패망입니다. 반대로 겸손한 자는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사람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지켜나가는 자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영광과 명예입니다.



24절은 도둑질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도둑이란 단순히 절도죄 등을 범한 자가 아니라, 악행을 일삼는 죄인들을 통틀어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혼을 미워한다’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는 의미 입니다. 다시말해 도적과 짝 하는 자는, 거짓 증언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공범을 감싸주거나 죄를 누설하게 되면 자신의 범죄도 드러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거나, 보복이 두려워서 일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새 죄의식이 마비되어 아예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만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육신의 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죄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에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작은 죄를 저지르게 되지만, 이것이 습관이 되면 사단의 함정에 빠져 영적감각이 마비된 상태가 되어 치명적인 범죄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단의 함정과 계략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의 죄악을 뉘우치고 버리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의 거울 앞에 우리 자신을 낱낱이 비추고 매순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25~27절은 대조의 구조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5절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비교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반석같은 주님이 주시는 안정감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때문에 마음이 안정되고, 그의 삶 역시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6절은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와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는 자를 비교합니다. 여기서 주권자는 왕이나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즉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는 25절의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우리 인간에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을 이루게 하시고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믿고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7절은 불의한 자와 정직한 자는 서로 대적 되며 의인과 악인도 대적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의인은 불의를 미워하고 악인은 정직한 사람을 미워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또한 의인은 정직한 자를 사랑하고 악인은 불의한 자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즉 유유상종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았다는 것은 영적 싸움의 군사로서 부름 받은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싸움은 휴전이나 타협이 없으며 주님의 심판날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말씀이 넘쳐나며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버튼 하나로 골라서 들을 수 있고, 설교집도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전과는 다르게 자녀 교육에 대해 무엇부터 가르쳐야 하는지, 무엇을 진정으로 가르쳐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여호의 말씀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물질을 더 두려워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내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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