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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 [새벽묵상] 여호와와 가까워 지는 지혜 | The wisdom of drawing nearer to God (잠/Prov 6:1~19)



6: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1 My son, if you have put up security for your neighbor,

if you have shaken hands in pledge for a stranger,

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2 you have been trapped by what you said,

ensnared by the words of your mouth.

6: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3 So do this, my son, to free yourself,

since you have fallen into your neighbor’s hands:

Go—to the point of exhaustion—

and give your neighbor no rest!

6:4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4 Allow no sleep to your eyes,

no slumber to your eyelids.

6:5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5 Free yourself, like a gazelle from the hand of the hunter,

like a bird from the snare of the fowler.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6 Go to the ant, you sluggard;

consider its ways and be wise!

6: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7 It has no commander,

no overseer or ruler,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8 yet it stores its provisions in summer

and gathers its food at harvest.

6: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9 How long will you lie there, you sluggard?

When will you get up from your sleep?

6: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10 A little sleep, a little slumber,

a little folding of the hands to rest—

6: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11 and poverty will come on you like a thief

and scarcity like an armed man.

6:12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12 A troublemaker and a villain,

who goes about with a corrupt mouth,

6: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13 who winks maliciously with his eye,

signals with his feet

and motions with his fingers,

6:14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4 who plots evil with deceit in his heart—

he always stirs up conflict.

6:15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15 Therefore disaster will overtake him in an instant;

he will suddenly be destroyed—without remedy.

6: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6 There are six things the Lord hates,

seven that are detestable to him:

6: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7 haughty eyes,

a lying tongue,

hands that shed innocent blood,

6: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8 a heart that devises wicked schemes,

feet that are quick to rush into evil,

6: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19 a false witness who pours out lies

and a person who stirs up conflict in the community.


 

우리가 지금 묵상하는 잠언과 지혜서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이슈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책들입니다. 신앙적 원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신앙의 원리가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실제적 적용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6장은 삶의 여러가지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중에 보증, 게으름, 불량함, 악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6장 1~9절은 다양한 주제들이 섞여 있는 본문으로, 지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유일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말이 ‘내 아들아’로 시작하지만 다른 본문들과 달리 바로 현실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The proverbs that we are meditating on discusses the issues of our lives. Not only does it cover issues about our faith, but it also covers ways to apply that faith to our lives of this world.


Chapter 6 discusses a lot of the issues of this life; it focuses on security, laziness, wickedness, and evil.

In verses 1-9, it talks about various issues, and it doesn’t really incorporate anything about wisdom. The chapter starts with ‘my son’ but it covers very practical issues.



1~5절 담보와 보증에서 벗어나는 법

본문의 정확한 의도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 본문은 교회에서 절대 다루기 힘든 본문 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성도가 교통하는 것을 늘 고백하는 성도들이 서로 담보하고 보증할 수 없다면 교회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보증에 대한 경고는 본문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잠언의 다른 부분에도 여러번 나옵니다. 그러나 단지 보증의 위험에 대해 경고할 뿐 오늘의 본문처럼 보증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은 없습니다.

1절에 담보와 보증으로 사용되는 히브리어는 각각 아라브타카아카프입니다. 이 두 단어는 함께 쓰이기보다는 각각 독입적으로 많이 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두 단어를 함께 쓴 이유는 보증의 정황이 당사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3자를 위한 것임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에서는 왜 보증을 금지하는 것일까요? 각 구절에 나타난 표면상의 이유를 보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손해가 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단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는 경제적인 내용일까요?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보증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Verses 1~5 How to be freed from security and pledge

If you don’t understand the true intent of this passage, this passage is something that will be very difficult to understand in the church. We are always confessing our faith through the Apostle’s Creed and if we can’t have any security or pledge within the church, then how can we live as Christians confessing our faith?


The warning about pledge doesn’t only come out in today’s scriptures but it also appears in other verses in Proverbs. However, those verses only warn about pledges, but today’s verses teach us the way to be freed from pledge.


In verse 1, for the words security and pledge, in Hebrew it is arab and takap. These two words are normally used separately instead of together. That's why the two words are used together here, to indicate that the context of guarantee is not for the benefit of the parties involved but for the benefit of a third party.


So why is Proverbs prohibiting us from pledges? The main reason is because there is a chance for us to be harmed through pledges. So then are today’s scriptures teaching us that we should only do things that will benefit us? What is absolute is that the Bible doesn’t negative about pledges.



욥17:3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절실한 탄원의 하나가 자신들을 위해 보증이 되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시119:122에 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담보한 것은 아무런 손해 없이 오히려 온 가족의 구원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증이라는 것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바로 대상이 문제입니다.


보증 자체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음녀나 악인처럼 대상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고후6:14에는 “너희는 믿지 않는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지 않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는 자와는 무조건 교제를 하지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상과 관계된 일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속옷을 달라하면 우리는 겉옷까지 줄 수 있고, 구하는 자에게 아낌없이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고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줄 수 없는 것이 있고, 거절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나에 경제적 파멸, 신앙적 또는 영적 파멸등의 요구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들어 줄 수 없습니다.


Job 17:3 shows one of Job's desperate pleas to God, requesting that someone pledge for him. Similarly, in Psalm 119:122, Judah pledged for Benjamin, and it turned out to be a means of salvation for their entire family. So, what is the issue with pledges in today’s context? The issue lies with the recipient.


It's not addressing the problem of pledges themselves but rather warning about the risks associated with pledging individuals who pose a danger. In 2 Corinthians 6:14, it says, "Do not be unequally yoked with unbelievers." What's the key here? It's about the nature of the recipient. Of course, this doesn't mean we should never associate with unbelievers; it's about discerning the nature of the relationship and the circumstances.


When someone in need asks for our outer garment, we can give it willingly. We can generously provide for those who seek help or support those who wish to improve themselves. However, there are things we cannot give and must refuse to provide. That includes complying with evil intentions that could lead to financial, spiritual, or moral ruin.



겉옷은 줄 수 있어도 그리스도를 배신 하는 일은 결코 해 줄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언의 보증 담보는 이 시대의 제자들이 타인에게 결코 들어줄 수 없는 복음 수호의 상징적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보증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상황과 마음 가짐을 정확히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에 있어서 정말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말로 상대방에 상황이 보증이나 담보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내가 인간적인 마음이 앞서더라도 다시 한번 주님께 묻고 정말 내가 도와 주는게 맞는지 인도하심을 구하는것이 바로 지혜인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주님과 친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한사랑 교회 모든 성도님들께서 주님과의 친밀함을 통해 삶속에서의 지혜가 넘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Outer garments can be given, but betraying Christ is something we can never do. In the context of Proverbs, guaranteeing and pledging for someone symbolize guarding the gospel, which we can never compromise. We must discern the circumstances and the attitude of those who seek our pledges.


In matters of material possessions, wisdom is crucial. If someone genuinely needs our help, we should seek guidance from the Lord, even if our humanly compassion wants us to help. This wisdom is directly related to how intimate our relationship with the Lord is. I pray that all the believers of Hansarang Church will overflow with wisdom in their lives through intimacy with the Lord and experience His guidance.



6~11절 게으름에 대한 경고

게으른 자는 히브리어로 “아첼”이며 오직 잠언에서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게으름에 대한 경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에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성경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잠언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자연스럽게 성경의 한 주제로 자리잡은 것에 불과한 것일까요?


우리가 항아리만 보고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 고추장인지 된장인지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게으름이란 제목만보고 또는 단어만 보고 그 내용을 다른 여러 교훈들과 같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7절을 보면 게으른자에게 가르치려는 것이 단순히 부지런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이기 때문입니다.


잠언의 다른 곳을 보면 게으른 자를 항상 훈계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본문과 24:30~34에서만 훈계를 할 뿐이지, 나머지 구절은 게으른 자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리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어떤자인가요? 침상에서 구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 결과 얻지 못하고, 가시울타리 길을 걷는 자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지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으른 자에게도 나름대로 합당한 핑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핑계가 아니라 게으른 자는 스스로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면서, 나름 타당한 핑계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Verses 6~11 Warning About Laziness

Sluggard in Hebrew is ‘azel’ and only appears in the book of Proverbs.

The theme of warning against laziness appears frequently throughout the Bible, transcending cultural and geographic boundaries. However, this raises questions about the intention behind addressing this topic in the Bible. Is it merely a subject that Proverbs has adopted and that has naturally become a recurring theme in the Bible, or is there a deeper purpose?


Just as we cannot determine whether the contents of a jar are soybean paste or red pepper paste just by looking at the exterior, we should not hastily assume that the title "laziness" or the word itself equates to the same teachings found in various other biblical instructions. This caution is important because, in Proverbs 6:7, the teaching to the lazy is not merely about urging them to be more diligent.


In other parts of Proverbs, it doesn’t really discipline us about laziness. In today's passage and Proverbs 24:30-34, the discipline about laziness is clear. However, the emphasis in the other passages focus on describing who the sluggards are. Who are the lazy according to these passages? They are depicted as those who roll in bed, refuse to work, and, as a result, fail to gain anything, often choosing to walk along thorny paths. This description goes beyond mere physical laziness. Lazy individuals often have justifications for their behavior. The problem is that their excuses are not mere excuses; the lazy think of themselves as wise and provide seemingly valid reasons for their inactivity.



7절에 보면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다는 말은 그들의 핑계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 역사에도 여러번 나타납니다. 노예로 살았을 때도 그랬고, 사사 시대에서도 유다 왕국이 멸망당한 이후에도 핑계를 대며 말하였습니다. 6:6~11에 암시된 게으른 자의 논리는 어쩌면 바벨론 포로 70년의 세월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던 무기력함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사기와 여호수아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당연하게 자신들의 환경의 핑계, 상황의 핑계, 무기력함의 핑계를 말하며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하나님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우리에 삶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나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주님께 핑계를 대며 원망의 화살을 돌리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지식이 많고 지혜가 넘친다는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세상의 지혜보다, 하늘의 지혜를 믿고 사모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Verse 7 indicates that the absence of a commander, overseer, or ruler is an excuse used by the lazy. Such a situation is found throughout Israel's history. Even when they were enslaved, the Israelites made excuses. During the period of the Judges, even after the downfall of the Kingdom of Judah, they continued to use excuses. The reasoning implied in Proverbs 6:6-11 may reflect the lethargy that the Israelite people had over the 70 years of Babylonian captivity.


Looking at the Book of Judges and the Book of Joshua, we can see that the Israelite people often did not recognize their problems. They would naturally attribute their issues to the environment, circumstances, or their own powerlessness, claiming that there was nothing wrong with them and that everything had happened because of God.


In our own lives, we may unknowingly fail to see our problems and, instead, present excuses to the Lord, harboring resentment. Therefore, we need to reflect on whether we have inadvertently shifted our focus from our issues to making excuses to the Lord. I hope that all the believers will become individuals who do not succumb to arrogance due to their knowledge and wisdom but who trust in the wisdom from above, valuing it above worldly wisdom.



12~19절 악한 자와 여호와의 미워하는 것

이 부분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량하고 악한자에 대한 묘사이고, 두번째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내용상은 나누어져 있지만 이 단락에서의 의미는 이 둘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의 행동이 결국 여호와가 미워하시는 것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13절에 다툼을 일으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죄라고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15절에서 이들에게 재앙이 임하고 당장 패망할 것을 말한 후에, 16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것이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그 마음과 싫어하시는 예닐곱 가지와 같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신앙을 문화에 접속시킨다는 명목으로 교회 안에서 불량함이 심지어는 악함도 용납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게됩니다. 도를 넘은 지나친 노출, 지나친 화려함, 지나친 과함, 지나친 방종은 불량함이 아니라 악함 입니다. 아울러 불량함은 외모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Verses 12~19 The Wicked And What The Lord Finds Detestable

This part can be broken down into two parts. First is a description of the wicked and evil people, and second is an explanation of what the Lord detests and finds abominable. Although the content is divided, the meaning in this paragraph connects the two because the actions of the wicked and evil ultimately fall into what the Lord detests. Utlimately, the


Verse 13 lists actions that, apart from causing disputes, may not actually be considered sins. However, in verse 15, it is stated that disaster will come upon them, and they will be destroyed, followed by an explanation starting from verse 16, stating that it is because their hearts are what the Lord detests and resembles the hands of an evildoer. Ultimately, it is because it is like the seven abominations in His heart that the Lord hates and finds detestable.


In many cases, we often see wickedness and even evil tolerated within the church under the pretext of connecting faith to culture. Excessive exposure, extravagance, excess, and extravagance are not just issues of appearance; they are manifestations of wickedness and even evil. Furthermore, wickedness is not just about outward appearance. Ephesians 4:29 says, "Let no corrupting talk come out of your mouths, but only such as is good for building up, as fits the occasion, that it may give grace to those who hear."



다시 말하면 불량한 자는 곧 악한 자로서 그 행동에 손짓 발짓 눈짓 그리고 말로 속이는 겉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15절에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불량함의 범죄 그 자체는 아닐지언정,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는 여호와가 미워하시는 것이고, 곧 그 마음에 싦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6절)


불량함은 거만함에서 비롯됩니다. 잠3:34 ‘거만한자는 여호와께서 비웃으시며, 불량함은 어리석음이다’

사무엘상 25:25절에 나발의 평가를 보면 ‘불량한 사람이요 미련한 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불량한 태도에서 기인하는 어리석음은 유치가 아니라 죄악이라 말합니다.


말씀을 정리 하겠습니다.

보증 게으름 악함 미워하시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 삶에서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내 안에서 언제라도 쏟아져 나오려고 하는 악함들 입니다. 본문 말씀의 표면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지혜를 통해 주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들을 늘 우리에 삶과 우리 안에서 비우고 싸워서 날마다 주님과 좀더 가까워지는 한사랑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In other words, the wicked are essentially evil people whose every action, gesture, glance, and word is deceptive. To such individuals, verse 15 is by no means an exaggeration. While their wickedness may not be a crime in itself, each of their actions is what the Lord detests and finds abominable, even what He loathes in His heart (verse 16).


Wickedness stems from arrogance. Proverbs 3:34 states, "Toward the scorners he is scornful, but to the humble he gives favor." When evaluating Nabal in 1 Samuel 25:25, it says, "He is a worthless man; he is such a son of Belial." The Bible teaches that foolishness arising from a wicked attitude is not childishness but wickedness itself.


Pledges, laziness, wickedness, and what the Lord detests are all evils that can continue to follow us in our lives, ready to pour out from within us at any time. While the surface of the passage is important, it is also important to continually empty and fight against what the Lord detests and finds abominable in our lives through the wisdom given by the Lord. I bless all the saints of Hansarang Church to become closer to the Lord and fight against these things in their lives every day through the wisdom provided by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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