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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새벽묵상]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히/Heb 7:11~22)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1 If perfection could have been attained through the Levitical priesthood—and indeed the law given to the people established that priesthood—why was there still need for another priest to come, one in the order of Melchizedek, not in the order of Aaron?

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2 For when the priesthood is changed, the law must be changed also.

7: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3 He of whom these things are said belonged to a different tribe, and no one from that tribe has ever served at the altar.

7: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4 For it is clear that our Lord descended from Judah, and in regard to that tribe Moses said nothing about priests.

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5 And what we have said is even more clear if another priest like Melchizedek appears,

7: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6 one who has become a priest not on the basis of a regulation as to his ancestry but on the basis of the power of an indestructible life.

7: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7 For it is declared:

“You are a priest forever,

in the order of Melchizedek.”

7: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8 The former regulation is set aside because it was weak and useless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19 (for the law made nothing perfect), and a better hope is introduced, by which we draw near to God.

7: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0 And it was not without an oath! Others became priests without any oath,

7: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1 but he became a priest with an oath when God said to him:

“The Lord has sworn

and will not change his mind:

‘You are a priest forever.’”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2 Because of this oath, Jesus has become the guarantor of a better covenant.


 


진보와 보수는 정치 뿐 아니라 종교에서도 늘 날카롭게 대치 중입니다.

피 끓던 청년시절 기득권층의 부조리를 보면서 개혁을 부르짖었던 진보세대는 어느새 기득권 세력이 되어 국가의 모든 요직을 차지했지만, 그들이 그렇게 혐오하던 기득권층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사실 진보와 보수는 같은 동전의 앞 뒷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인 칼빈주의 장로교를 소위 개혁주의라고 말합니다.

개혁이라는 말만 들으면 마치 새롭게 모든 걸 다 바꿔버리는 진보와 같은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이 개혁은 오로지 성경이 말씀하는 곳으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위한, 진리를 향한 개혁이지 인간의 관습이나 제도를 바꿔 기득권을 빼앗으려는 개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는 보수이자 동시에 진보입니다.


Progressives and conservatives are constantly in sharp conflict not only in politics but also in religion. The progressive generation, which cried out for reform while witnessing the injustice of the privileged class during their youth, has now become the ruling elite and occupies all the key positions in the country. However, they seem to mimic the very behavior of the privileged class they once despised, or even surpass it. In fact, progressives and conservatives can be likened to the two sides of the same coin.


Calvinistic Presbyterianism is often referred to as the core of the Protestant Reformation. When you hear the word "Reformation," it may conjure an image of completely changing everything anew. However, this Reformation means simply turning back to where the Bible speaks. It is a reform for the sake of truth, not a reform that seeks to change customs or institutions to seize power. Therefore, Reformed theology is both conservative and progressive.



말씀의 권위를 최우선에 놓고, 그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는 면에서는 보수이며, 과거의 말씀 해석이나 또는 교회의 관습이 말씀과 어긋나는 것을 발견하면 오늘이라도 가차없이 말씀으로 돌이키는 면에서는 진보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보수이자 진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면에서 개혁주의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구약에 맞는 율법을 주셨다면, 이제 새로운 천년에는 새로운 법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다고 구약과 새로운 시대인 신약의 연속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구약과 신약의 법이 맞아 떨어지는지 감탄할 뿐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이미 그려진 것입니다. 다만 찰나의 순간 밖에 살지 못하는 구약의 사람들은 그 크신 하나님의 큰 그림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수많은 선지자들과 사도들,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빅픽쳐를 엿 볼 수 있는 은혜를 누립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Placing the authority of the Word of God as the highest priority and preserving the purity of that Word is conservative, while turning immediately to the Word to correct any interpretations or traditions that deviate from it is progressive. Thus, Reformed theology is both conservative and progressive.

In this regard, God Himself is a Reformer. In the Old Testament era, He gave the Law that was appropriate for that time, but now in the new millennium, He is the One who gives a new law. This does not mean that the continuity between the Old and New Testaments disappears; rather, we marvel at how perfectly the law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align. All of this was already drawn within God's grand plan. However, those in the Old Testament who lived only for a fleeting moment had limitations in understanding this grand picture.

Thankfully, we have the grace to catch a glimpse of God's big picture through the numerous prophets, apostles, theologians, and scholars. What a blessing this is!



폐기된 구약의 제사장 제도와 율법

히브리서 저자는 거센 율법주의 이단의 도전에 대해서, 왜 율법과 제사제도, 그리고 제사장 직분이 의미가 없는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저자는 먼저 제사장 제도의 폐기에 대해서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군림하던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은 사람을 온전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도 여전히 레위지파 출신의 제사장들은 권세를 떨쳤습니다.

그 무리가 바로 대제사장 그룹인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들은 레위지파인 사독계열 출신으로 다윗 시대 이후에 줄곧 대제사장직을 차지하여 막강한 권력과 부를 축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병폐는 이미 복음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그들의 유효기간은 이제 다 한 것입니다. 새로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등장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에 대해서 만일 매번 반복되는 제사제도로 인간이 온전함을 이룰 수 있었다면 굳이 멜기세덱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 왜 필요하겠느냐는 질문을 합니다(11).


The Abolished Old Testament Priesthood System and Law

The author of Hebrews addresses the challenge from a fierce group of legalists and explains why the laws, the priestly system, and the priesthood are now meaningless.

First, he discusses the abolition of the priesthood.

The Levitical priesthood, which ruled over the Jews, could not make people perfect. Even in the early days of the Christian Church, priests from the Levitical lineage still clung to power. They were the Sadducees, who were Sadducee descendents and had held the office of high priest since the time of King David. These priests amassed great power and wealth. Their corrupt practices are well-documented in the Gospels. But with the coming of Jesus, their influence came to an end. A new priest after the order of Melchizedek arose. The author of Hebrews asks why there is a need for an eternal priestly order, following the pattern of Melchizedek, if the Levitical priests, who offered sacrifices repeatedly, could make people perfect.



만일 레위지파 출신의 대제사장이 우리의 모든 죄를 없이 할 수 있었다면,

굳이 다윗을 통해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을 예언할 필요도 없고,

실제로 멜기세덱 반차를 따르는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제사 제도이고, 그 중심은 제사장인데, 이제 제사장 직분이 아론, 곧 레위 계통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즉 레위 계통이 아닌 다른 지파 계통의 제사장, 곧 유다지파 계통의 제사장으로 옮겨졌기에, 율법도 새롭게 주어질 것입니다(12).

제사제도의 핵심인 제사장이 바뀌었기에 율법도 바뀌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합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하게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우리는 믿음(예수)이 이 땅에 온 후에는 더 이상 초등교사와 같은 율법아래가 아닌 믿음 아래 있습니다.


If a Levitical priest could truly cleanse us of all our sins, there would be no need to predict a priest after the order of Melchizedek through David, let alone establish such a priesthood. The core of the Law is the sacrificial system, and at its center is the priest. Since the priesthood has changed to one not of the Levitical line but of Judah, the Law will also change.


This reveals the limitations of the Old Testament and its laws.


“Clearly no one who relies on the law is justified before God, because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Galatians 3:11).


Because of the coming of Jesus to this earth, we are no longer under the law but under faith.



하지만 율법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인 율법은 완전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연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외적인 행위에만 집착하니, 율법이 그들에게 무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하는 것입니다(19).

그렇다면 도대체 구약의 의미, 율법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먼저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존재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초등교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음은 구원받은 백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곧 성화에 관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율법이 출애굽 전이 아닌 출애굽 후에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율법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닌,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가 그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모든 오실 더 좋은 언약에 대한 모형이요, 상징인 것입니다. 그래서 귀한 것입니다.


However, this does not mean that the law itself is a problem. God's Word, the law, is perfect, but fallen humanity is too weak to keep God's Word. Jews, in particular, did not realize this and clung only to external acts, making the law useless. In this sense, the law is incapable of making us perfect. The law primarily serves as a standard that makes us aware of our sinfulness. It is like an elementary school teacher (Galatians 3:24). Furthermore, it provides a standard for the lives of the people who have been saved, showing them how they should live. The law given by God after the exodus from Egypt, not before, is a blessing. Therefore, the Old Testament is a model of the better and more useful new covenant. That is why it is precious.



예수님의 차별성

새로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세우신 제사장이라는 차별성을 갖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주신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우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결국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인생의 죄를 사하시는 영원한 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맹세로 세워진 제사장이라는 차별성을 갖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시 한번 시편 110:4을 인용합니다(21).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은 초등교사와 같은 율법에 근거하여 세워진 존재라면,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맹세(시 110:4)로 세워진 멜기세덱과 같은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22)고 말합니다.

구약도 유익하고 좋은 것이지만, 신약은 구약을 완성하는 더 좋은 언약입니다.

새로운 율법은 사랑의 법이요, 은혜의 법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나에게 절망하게 하지만, 신약의 율법이신 예수는 나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가 소망입니다.


The Distinctiveness of Jesus

The new High Priest, Jesus, has the power of an indestructible life. He established the priesthood through His grace and power, not by human law. Ultimately, Jesus, by His death and resurrection, became the eternal High Priest who forgives human sin. Furthermore, Jesus was made a priest by the oath of God (Psalm 110:4). While Levitical priests were established based on the external law, Jesus, the eternal High Priest, was established by God's promise and oath.


The author of Hebrews thus declares that Jesus has become 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Hebrews 7:22). The Old Testament is also good and useful, but the New Testament is a better covenant. The new law is the law of love and grace. While the Old Testament law makes us despair, Jesus, who is the new law, gives us hope. Therefore, Jesus is our only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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