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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6 [새벽묵상]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가 힘써야 할 것 | What Those Who Already entered into rest... (히/Heb 4:1~11)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1 Therefore, since the promise of entering his rest still stands, let us be careful that none of you be found to have fallen short of it.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2 For we also have had the good news proclaimed to us, just as they did; but the message they heard was of no value to them, because they did not share the faith of those who obeyed.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3 Now we who have believed enter that rest, just as God has said,

“So I declared on oath in my anger,

‘They shall never enter my rest.’”

And yet his works have been finished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4: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4 For somewhere he has spoken about the seventh day in these words: “On the seventh day God rested from all his works.”

4: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5 And again in the passage above he says, “They shall never enter my rest.”

4: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6 Therefore since it still remains for some to enter that rest, and since those who formerly had the good news proclaimed to them did not go in because of their disobedience,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7 God again set a certain day, calling it “Today.” This he did when a long time later he spoke through David, as in the passage already quoted:

“Today, if you hear his voice,

do not harden your hearts.”

4: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8 For if Joshua had given them rest, God would not have spoken later about another day.

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9 There remains, then, a Sabbath-rest for the people of God;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0 for anyone who enters God’s rest also rests from their works, just as God did from his.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Let us, therefore, make every effort to enter that rest, so that no one will perish by following their example of disobedience.


 


지난 주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 안에서 쉼과 교제를 나눴습니다.

치열하게 일하던 현장을 떠나 하나님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안식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귀한 것인지를 체험했습니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 저자가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에게 사랑으로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문 3, 10, 11절은 모순처럼 연결됩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3a)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10a)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11a)


그러니까 히브리서 저자가 표현하는 우리는 히브리서의 저자인 바울(또는 바나바)과 그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인 기독교 유대인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저자를 포함한 그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힘써야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저 안식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Last weekend, we experienced rest and fellowship in the natural surroundings that God has given us. It was such a joyous and precious experience to leave the hectic work environment and find rest and communion in God. We praise the God who grants us rest. Today's passage is about the author of Hebrews exhorting those who have already entered into rest through love. However, verses 3, 10, and 11 seem to be interconnected in a contradictory manner.


" Now we who have believed enter that rest" (3a).

" for anyone who enters God’s rest also rests..." (10a).

" make every effort to enter that rest" (11a).


So, the "we" being referred to here are the Christian Jewish community, including the author of Hebrews, and they have already entered into God's rest. However, what they need to strive for is to enter that same rest. How does this happen?



두려움으로 안식을 쟁취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 한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안식에 비유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안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유대인들을 진정한 안식으로 이끌었다면, 그후에 다윗을 통해서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라(7)는 경고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이르지 않은 다른 날을 말하지 않았을 것(8)이라는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을 할 날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9).

가나안은 다만 예고편이요, 모형일 뿐입니다. 영원한 안식, 약속의 땅에 대한 맛보기일 뿐입니다.

유대인 조상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실패했지만,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간절함이 묻어나옵니다.

이미 교회에 다니고 믿음 안에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그 믿음은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살아있어야 합니다.

약속(1), 복음(2), 말씀(2)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이것들을 받는 자들은 그것을 믿음과 결부시켜야 합니다(2b). 행함이 없는 믿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Fearfully strive to enter that rest!"

The author of Hebrews likens the Israelites entering Canaan to entering rest.

But true rest did not come. If Joshua had truly led the Jews into true rest, then there wouldn't have been a warning in verse 7 saying, "Today, if you hear his voice, do not harden your hearts."

The author claims that another day will come that has not been spoken of (8).

Therefore, a day of true rest remains for God's people (9).

Canaan was just a prelude, a model. It's a taste of the eternal rest, the promised land.

The ancestors of the Jews failed to enter the eternal rest by not entering the land of Canaan but at least the readers of Hebrews should not make the same mistakes.

For those are already attending church and seems to have faith should not be complacent. Salvation is certainly received through faith, but that faith must be alive, as James mentioned. Promise (1), the Good News (2), and Message (2) all have the same meaning. Those who receive these must connect them with faith (2b). Faith without deeds is dead.



바울은 이미 믿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여기서 바울이나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두려움은 다른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믿음 없음입니다. 칼빈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는 신앙심을 동요케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영적 무관심을 각성케 하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 공포가 아닌 각성의 두려움이어야 하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바(3)와 같이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가운데 이미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다 (잠 1:7)


여기서 경외감(두려워함)은 하나님 앞에서 긴장감을 의미합니다.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분을 두려워하는 것은 굴욕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세상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Paul also warned the Philippians, who were already believers:


" Therefore, my dear friends, as you have always obeyed—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Philippians 2:12).


Here, the fear that Paul and the author of Hebrews are talking about is different.

The only thing believers should fear is the absence of faith. Calvin said the following about this:


"It is not a fear that shakes faith but a fear that awakens spiritual indifference."


This fear should be a fear of awakening, not terror, because, as the author explains in verse 3, believers who already have faith are already entering into God's rest within the context of His great experiences and providence.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Proverbs 1:7).


Here, fear means tension before God.

Properly fearing the one you should fear is not shameful; it is a blessing.

Fearing worldly things that should not be feared is the shameful thing.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저자는 이어서 아직도 우리에게 들어가야 할 안식이 남아 있음을 시편 95편을 인용하여 보여줍니다.

어딘 가에 하나님이 안식하셨음을 기록했다고 전합니다(4). 그 어딘가는 창세기 2:2절입니다.

하지만 시 95:11절에서는 광야세대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6)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히브리서 독자들은 어떤 상태일까요?

성경이 반복적으로 안식에 대한 도전과 실패를 기록합니다.

여호수아가 안식을 완성했다면 더 이상 안식에 힘쓰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8, 9).

신학적으로 이것은 안식, 곧 구원의 즉각성점진성을 의미합니다.

이미Already 와 아직 Not yet의 긴장 입니다. q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지만, 동시에 아직 그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명확하게 결론적인 교훈을 도출합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10a) …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11a)


"Strive to enter that rest!"

The author then goes on to show from Psalm 95 that there is still a rest that we must enter.

It is mentioned that God rested somewhere (4), which refers to Genesis 2:2.

However, in Psalm 95:11, it is said that the generation of the wilderness will not enter God's rest.

So, what is the condition of the readers of Hebrews now?

The Bible repeatedly records challenges and failures regarding rest.

If Joshua had completed the rest, there would have been no need to strive for it anymore (8, 9). Theologically, this represents both the immediacy and the progressiveness of rest, salvation.

We have already entered (Already), but it is not yet completed (Not yet).

We have already received salvation, but it has not yet been completed.

The author clearly draws a conclusive lesson.

"We who have believed enter that rest" (10a), "...so that no one may fall by the same sort of disobedience" (11a).



대한예수교 장로회, 모든 장로교의 장점은 믿음, 이신칭의 교리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는 성경적이고, 핵심적인 교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우리의 약점으로 작동했습니다.

신앙은 이신칭의 로마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행득의 야고보서도 읽어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의심과 불안함의 두려움이 아니라,

영적 무관심을 각성케 하는 두려움으로 진정한 안식을 쟁취하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The strength of the Korean Presybeterian Church is the doctrine of salvation by faith alone.

This doctrine is biblical and fundamental.

However, it has also functioned as a weakness.

Faith is not only about the Reformation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alone. You must also read the doctrine of sanctification, which is about the obedience of faith, as found in the Book of James.

The fear and uncertainty about salvation should not be our fear, but rather the fear of spiritual indifference.

Strive for true rest, and may you become believers who achieve it through the fear that awak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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