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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6 [새벽묵상] 복음과 그 결과 | The Gospel and its Outcome (행/Acts 4:1~12)



4: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1 The priests and the captain of the temple guard and the Sadducees came up to Peter and John while they were speaking to the people.

4: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2 They were greatly disturbed because the apostles were teaching the people, proclaiming in Jesu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4: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3 They seized Peter and John and, because it was evening, they put them in jail until the next day.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4 But many who heard the message believed; so the number of men who believed grew to about five thousand.

4: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5 The next day the rulers, the elder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met in Jerusalem.

4: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6 Annas the high priest was there, and so were Caiaphas, John, Alexander and others of the high priest’s family.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7 They had Peter and John brought before them and began to question them: “By what power or what name did you do this?”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8 Then Peter, filled with the Holy Spirit, said to them: “Rulers and elders of the people!

4: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9 If we are being called to account today for an act of kindness shown to a man who was lame and are being asked how he was healed,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0 then know this, you and all the people of Israel: It is by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hom you crucified but whom God raised from the dead, that this man stands before you healed.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1 Jesus is

“‘the stone you builders rejected,

which has become the cornerstone.’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2 Salvation is found in no one else,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to mankind by which we must be saved.”


 

사람에게는 기대심리/보상심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에 부합하는 대가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만일 자신이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는 보상을 받거나, 보상 자체가 없으면 심한 허탈감이나 배신감에 빠질 수 있고, 심한 경우 보복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도 자칫하면 이러한 허탈감 내지는 배신감에 빠지기 쉬운 제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기도하러 성전에 가다가 앉은뱅이를 치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면, 그후에 나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기를 기대하게 될까요?


There is a concept called 'expectation psychology/reward psychology' in human beings. It refers to the desire to receive a fitting reward when a certain action is taken. If one receives a reward that does not meet their expectations or if there is no reward at all, they can experience intense disappointment or betrayal, and in severe cases, they may even seek revenge.

Today, you may encounter disciples who are prone to such disappointment or betrayal. If I were to go to the temple to pray and heal a lame beggar, and then preach the gospel to many people, what can I expect to happen to me afterwards?



복음에 대한 순종의 결과

베드로와 요한은 힘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은 예수 안에서 부활(2)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을 심하게 싫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싫어하여에 해당하는 디아포누메노이는 매우 불안하여 심하게 화가 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가르침에 이토록 화를 내는 그들은 누구이며, 왜 그러한 가르침을 싫어했을까요?

그들은 첫째로 사독 계열의 안나스와 그의 사위 가야바로 대표되는 제사장 그룹입니다.

다음은 성전 맡은 자스트라테고스장군, 총독으로 불리며 성전을 지키는 총책임자입니다.

그는 성전 서열2위에 해당하는 높은 사람입니다.


The Result of Obedience to the Gospel

Peter and John boldly preached the gospel. The essence of the gospel is the resurrection in Jesus (2).

However, there were people who strongly despised this teaching.

The term 'disturb' (Greek: diapónoumenoi) refers to a state of extreme anxiety and anger.

Who were these people who were so angry about Peter and John's teaching, and why did they dislike such teachings?


Firstly, they were represented by Annas of the Sadducees and his son-in-law Caiaphas, who belonged to the priestly group.

Next, the strategoi, who were the commanders and governors responsible for guarding the temple.

He held a high position, ranking second in the temple hierarchy.



마지막으로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들은 당시 정치적인 기득권층으로 부활이나 영적인 존재를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천사와 영적인 것,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과 늘 다투는 자들입니다.

결국 이들은 당시에 기득권층으로, 사회의 질서가 변화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로 예수를 잡아 죽인 자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들이 불편하여 죽인 그 예수가 부활하여 심판주로 올 것을 이야기하니 어찌 좋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도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하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싫어하는 것일까요? 궁금합니다. 다만 먼저 믿음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싫어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Lastly, the Sadducees, who were the political elite at the time and did not believe in resurrection or spiritual beings.

Therefore, they were constantly arguing with the Pharisees, who believed in angels, spiritual matters, and resurrection.

In the end, these individuals, who were part of the privileged class and did not want any change in the social order, were the ones who arrested and killed Jesus.

But how could they possibly be pleased when Peter and John spoke of the resurrected Jesus, whom they had uncomfortably killed?

Even today, there are people who dislike the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when it is mentioned.

What reasons might they have for their dislike? I wonder. However, I hope it's not because they have seen the flawed behavior of some Christians and become disappointed and disliking as a result."



사도들이 이렇게 복음을 전할 때 기대했던 결과는 무엇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전도되고, 칭찬을 받으며, 일이 잘 풀리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아직 베드로가 말할 때에(1), 그러니까 아직 설교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기득권자들에 의해 옥에 갇힌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며 무엇을 기대합니까?

만일 내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복음을 전한 두 번째 결과는 남자만 오천 명이 회심한 것입니다.

오늘날 집회 한 번에 남자만 5천명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일들이 벌어진다면, 아마도 모든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과 복음의 역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What were the expected results when the apostles preached the gospel? It would be great if numerous people were converted, praised them, and things went well. However, the result, even at the time Peter spoke (1), meaning the sermon was not yet finished, was being imprisoned by the authorities. What are we expecting as believers in Jesus? If things don't go as we hope and desire, how would we feel?


The second result of preaching the gospel was that five thousand men repented. If today, in one gathering, five thousand men confessed Jesus as their Savior, it would probably make headlines in all media. The work of the Holy Spirit and the gospel transcends imagination.



변화 받은 베드로와 요한

복음은 남자 오천 명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제자들 자신도 변화시켰습니다.

원래 그들은 어떤 자였습니까? 성격장애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괴팍하고 튀는, 불같이 급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거기에 주님을 배신한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들을 온전케 변화시켰습니다.

복음충만, 예수충만은 곧 성령충만과 동의어입니다. 그들의 변화는 성령충만(8)에서 기인합니다.


해가 지면 재판할 수 없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제사장과 관리, 장로들은 다음 날 아침에 심문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7) 질문합니다.

그러자 사도는 그 유명한 시편 118:22절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합니다.


Transformation of Peter and John

The gospel not only transformed five thousand men but also transformed the disciples themselves. What kind of people were they originally? They were people with unpredictable and impulsive personalities, to the point of being considered mentally unstable. They were also weak, having betrayed the Lord. However, the gospel completely transformed them. Being filled with the gospel and being filled with Jesus is synonymous with being filled with the Holy Spirit. Their transformation originated from being filled with the Holy Spirit (8).


As the sun sets, according to Jewish customs that cannot hold trials, the priests, rulers, and elders begin the questioning the next morning. They asked “By what power or by what name have you done this?” (7). Then the apostles respond by quoting the famous verse from Psalm 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 118:22)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Psalm 118:22).



이 시의 배경은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이 죽고, 자신이 왕위에 오를 때 지은 시입니다.

사울은 자신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퉁이 돌 삼으신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관리, 종교인들은 예수를 버렸지만, 하나님이 그를 교회의 모퉁이 돌 삼을 것을 예언한 시입니다.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사두개인들, 제사장, 관리들은 자신들이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된 것 마냥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자신들의 밥벌이로 활용했습니다.

자신들이 마치 성전의 주인인양 자신들이 성전의 주춧돌이 되려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버린 예수를 하나님 나라, 교회,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를 예언적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The background of this Psalm is when David, after Saul's death and his own ascent to the throne, composed this song. It is a song about how God made him the cornerstone even though Saul had rejected him. The religious leaders, who claimed to be experts, rejected Jesus, but this psalm prophesied that God would make him the cornerstone of the Church. Only Jesus can be the cornerstone of the temple. At that time, the Sadducees, priests, and rulers behaved as if they were the cornerstone of the temple. They used the temple for their own gain. They foolishly sought to become the cornerstone of the temple as if they were the owners of it. However, God made the rejected Jesus the cornerstone of the kingdom of God, the Church, and the temple. And David, filled with the Holy Spirit, prophesied about Jesus through this song.



우리는 죽으나 사나 예수를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어떤 결과가 있어도, 우리는 조용히 감수해야 합니다.

5천명이 회개를 해도, 영광은 오직 예수님만 받으시면 됩니다.

내가 옥에 갇히는 일이 있어도, 복음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의 조건일 뿐입니다.

이것이 그냥 마음과 생각과 입술의 고백이 아니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밝은 빛이 되시는 예수만 전하고, 어떤 결과가 있든 그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는 믿음 주시기를, 마음 다해 기도합니다.


We have a mission to proclaim Jesus whether in life or death. When preaching the gospel, no matter what the results may be, we must humbly endure. Even if five thousand people repent, glory belongs solely to Jesus. Even if I am imprisoned, as long as I can proclaim the gospel, it is merely a condition for gratitude. I earnestly pray that this is not just a confession of the heart, thoughts, and lips, but a life that is truly lived out. May Jesus, who becomes our shining light, be proclaimed, and may we have faith to be grateful and content regardless of the outcome. I pray wholeheartedly for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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