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20230614 [새벽묵상] 죄의 심각성 | The Seriousness of Sin (애/Lam 4:1~10)



4: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1 How the gold has lost its luster,

the fine gold become dull!

The sacred gems are scattered

at every street corner.

4:2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2 How the precious children of Zion,

once worth their weight in gold,

are now considered as pots of clay,

the work of a potter’s hands!

4: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3 Even jackals offer their breasts

to nurse their young,

but my people have become heartless

like ostriches in the desert.

4: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4 Because of thirst the infant’s tongue

sticks to the roof of its mouth;

the children beg for bread,

but no one gives it to them.

4:5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5 Those who once ate delicacies

are destitute in the streets.

Those brought up in royal purple

now lie on ash heaps.

4:6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6 The punishment of my people

is greater than that of Sodom,

which was overthrown in a moment

without a hand turned to help her.

4:7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 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7 Their princes were brighter than snow

and whiter than milk,

their bodies more ruddy than rubies,

their appearance like lapis lazuli.

4:8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8 But now they are blacker than soot;

they are not recognized in the streets.

Their skin has shriveled on their bones;

it has become as dry as a stick.

4:9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9 Those killed by the sword are better off

than those who die of famine;

racked with hunger, they waste away

for lack of food from the field.

4:10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10 With their own hands compassionate women

have cooked their own children,

who became their food

when my people were destroyed.


 

애가는 슬프다(1:1) 에카 איכה 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5:21)으로 마무리합니다.

애가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와 그 참혹상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진노에 담긴 하나님의 본심을 노래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애 3:22~23)


애가와 같은 본문을 시리즈로 설교하는 것은 참으로 고달픈 일입니다.

전하는 자도 피곤하고, 듣는 자도 피곤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면 앞뒤로 등장하는 어려움과 참혹함의 더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깊고 크게 느껴집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롬 5:20)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였다는 사실을 보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철저하게 느끼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혹함과 고난은 바로 그런 용도입니다.

이 고통의 과정, 곧 자신을 보게 되는 과정을 건너 뛰는 은혜는 절대로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 (1~2절)

금은 변하지 않는 물질로 매우 다양한 곳에서 매우 유용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금값이라는 말이 있듯이, 금은 매우 비쌉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금의 한정성 때문일 것입니다.

지구에서 발굴할 수 있는 금의 양은 한정적입니다. 왜냐하면 금은 별이 폭발하면서 생겨나는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구가 폭발하지 않는 한은 더 이상 지구에 금이 생길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진흙이 금이 될 수 없고, 금이 진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서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순금과 같이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변질하여 빛을 잃고, 질항아리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2).

또한 성전을 쌓아 올렸던 돌들이 모두 무너져 내려, 거리 어귀마다 쏟아져 내렸습니다(1).

이것은 예수님이 A.D.70년에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눅 21:6)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우리의 내면과 영적인 세계에서는 자주 일어납니다.

황금 같이 거룩하고 순결한 존재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진흙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 타락입니다.



소돔보다 더한 죄 (3~10절)

보통의 이스라엘 포로기 작품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백성들의 입장에서 노래를 했다면, 애가의 특징 중 하나는 파괴된 현장인 예루살렘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보도하는 현장의 처참함은 매우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들개도 젖을 주어 새끼를 먹이지만, 예루살렘 백성들은 잔인하여 마치 타조와 같다고 노래합니다(3).

여기서 들개는 히브리어 탄닌 תנין으로, 유대인들은 보통은 바다 괴물Sea Monsters, KJV 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뱀, 고래, 들개jackals라고 번역됩니다. NIV는 들개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천한 미물인 들개도 모성애가 있어서 자신의 새끼를 먹이는데,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시온의 딸, 예루살렘 백성은 마치 타조가 광야에 알을 낳고는 돌보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전쟁) 중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어린 자녀들입니다(4).

전쟁의 참혹상은 맛있는 음식을 먹던 사람들의 식탁에도 불어 닥쳤습니다.

붉은 옷을 입고 자란 자들(5b) 이란 부잣집, 또는 고위관직, 왕족, 귀족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참혹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온 것은 다름이 아닌 예루살렘의 죄악입니다.

시인은 그들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더 무겁다고 말합니다(6).



소돔의 죄와 종류는 다르지만, 오히려 예루살렘의 죄악이 더욱 무겁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를 압제하는 것을 다른 어떤 죄악보다 더 무겁게 보십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별된 존귀한 자(나자르), 곧 나실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깨끗하고, 희고, 붉고, 윤택했던 그들의 외모는 숯처럼 변했고, 그들의 가죽이 뼈와 붙을 정도로 말랐습니다(7, 8).

마치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욥 19:20)라고 고백했던 욥과 같은 형편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굶어 죽는 자보다 칼에 죽은 자들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칼에 죽는 것은 찰나의 고통이지만, 굶어 죽는 것은 긴 시간의 고통 가운데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이 굶주림으로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자신의 자녀를 삶아 먹는 지경까지 이르게 합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역시 앗수르에 A.D.722년에 침략을 받아 멸망할 때 이와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왕하 6:29)


이것이 죄악의 참혹함입니다. 죄는 우리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작은 구멍에 댐이 무너지듯, 작은 죄악을 방치할 때 자녀를 잡아먹게 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항상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살피는 나실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