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5 I called on your name, Lord,
from the depths of the pit.
3: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56 You heard my plea: “Do not close your ears
to my cry for relief.”
3: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57 You came near when I called you,
and you said, “Do not fear.”
3: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58 You, Lord, took up my case;
you redeemed my life.
3:59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 주옵소서
59 Lord, you have seen the wrong done to me.
Uphold my cause!
3:60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60 You have seen the depth of their vengeance,
all their plots against me.
3:61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61 Lord, you have heard their insults,
all their plots against me—
3: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62 what my enemies whisper and mutter
against me all day long.
3:63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63 Look at them! Sitting or standing,
they mock me in their songs.
3:64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64 Pay them back what they deserve, Lord,
for what their hands have done.
3:65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65 Put a veil over their hearts,
and may your curse be on them!
3:66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
66 Pursue them in anger and destroy them
from under the heavens of the Lord.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진 듯한 경험을 할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것은 매우 감사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생의 깊은 구덩이를 경험한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 자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의 깊은 절망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구덩이와 같은 고난은 하나님 없이 경험하면 생고생이고, 하나님과 함께 경험하면 그것이 곧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고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우리 대신 깊은 구덩이에 빠져 준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성경을 포함한 문학이 좋은 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얼마든지 깊은 구덩이를 맛볼 수 있고, 또 그 가운데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애가를 통해서 인생의 절망적인 깊은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ק 코프 (55~57절) ק
우리는 종종 도저히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심히 깊은 웅덩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해야 할 일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앞선 구절에서 시인은 이미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어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44).
하지만 시인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 눈물로 기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50).
그리고 드디어 시인은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었다며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않으실 것입니다(56).
우리는 기도할 때 이 정도로 기도 응답을 확신하며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요 16:23)
이외에도 얼마나 많이 시편기자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확신했는지 모릅니다. 시인의 확신대로 하나님은 시인이 주께 아뢴 날에, 시인에게 다가와 두려워하지 말라 고 응답하셨습니다(57).
이런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ר 레쉬 (58~60절) ר
시인은 확정적으로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다 에서 원통함은 법정 용어로 송사, 고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시인의 변호사가 되셔서 그의 고소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주께서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고백합니다.
여기서 속량하다는 것은 히브리어 가알 גאל로 기업을 무르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의 명사형이 기업을 무르는 자, 곧 고엘 גאל 입니다. 성경에서 유명한 고엘은 룻의 남편이 된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예표적 인물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고엘이 되셔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누리도록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다 보시고, 원통함을 풀어 주십니다(59).
또한 악한 자들의 보복과 모해함을 모두 보고 계십니다(60).
ש 쉰 (61~63절) ש
절망의 구덩이와 같은 상황에서 시인이 경험하는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61, 62).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 아니라, 대적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십니다(63). 이렇게 보고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역시 조심해야 합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시 94:9)
하나님은 우리의 대적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말도 들으시고, 행동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ת 타우 (64~66절) ת
시인은 이제 원수들이 행한대로 갚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계 까지만 권한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벨론이나 열방들은 그 선을 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슥 1:15b)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은 죄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바벨론은 시인의 기도대로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망 받게 됩니다(66).
심히 깊은 웅덩이에 빠져 있는 성도가 있다면, 그 순간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고엘(기업 무를 자)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 원수를 갚아 주시며,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을 확신하고, 끝까지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주님께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기자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될 것을 믿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 40: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