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12 “Is it nothing to you, all you who pass by?
Look around and see.
Is any suffering like my suffering
that was inflicted on me,
that the Lord brought on me
in the day of his fierce anger?
1:13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13 “From on high he sent fire,
sent it down into my bones.
He spread a net for my feet
and turned me back.
He made me desolate,
faint all the day long.
1:14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14 “My sins have been bound into a yoke;
by his hands they were woven together.
They have been hung on my neck,
and the Lord has sapped my strength.
He has given me into the hands
of those I cannot withstand.
1:15 주께서 내 영토 안 나의 모든 용사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청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딸 유다를 내 주께서 술틀에 밟으셨도다
15 “The Lord has rejected
all the warriors in my midst;
he has summoned an army against me
to crush my young men.
In his winepress the Lord has trampled
Virgin Daughter Judah.
1:16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 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16 “This is why I weep
and my eyes overflow with tears.
No one is near to comfort me,
no one to restore my spirit.
My children are destitute
because the enemy has prevailed.”
1:17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방에 있는 자들에게 명령하여 야곱의 대적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불결한 자가 되었도다
17 Zion stretches out her hands,
but there is no one to comfort her.
The Lord has decreed for Jacob
that his neighbors become his foes;
Jerusalem has become
an unclean thing among them.
전쟁은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담고 있는 종합선물 세트와 같습니다.
예레미야애가의 역사적 배경이 바로 전쟁의 한복판입니다. B.C.586년 바베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었고, 많은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B.C.516년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하기까지 70년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애가는 바로 이 시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애가는 다섯편의 애가를 모아 놓은 작품인데, 그 구조가 답관체 踏冠體, Acrostic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답관체 형식이란 각 행이 알파벳 순서로 구성된 시를 말합니다.
히브리어는 22개의 알파벳이 있습니다.
그래서 1, 2, 4, 5 장은 22절로 구성되어 있고 3장은 22의 3배수인 66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욥처럼 죄와 상관없는 고통이 있지만, 애가는 철저히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고통과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그런 점에서 애가의 중요성에 대해서 클라우스 베스터만이라는 구약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회가 예레미야애가를 읽지 않는다면 슬퍼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이며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기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위로자가 없는 시대의 고통
이스라엘은 Zionism, 곧 하나님의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는 선민사상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12~15절은 그들이 당한 고통을 시적으로 표현하며 극대화합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물리적인 고통도 큰 문제이자 충격이지만, 유일한 위로자이자 회복자인 하나님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16, 17).
자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진심을 나눌 단 한 명의 위로자(상담자)가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 버림받은 느낌은 매우 슬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현대인들은 물론 시편기자도 자주 어느 때까지 입니까 외쳤습니다. 눈물이 물같이 흐르고 아무도 없는 듯 막막한 어두움 가운데 혼자 있는 듯한 외로움… 이러한 고통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땐 울어야 합니다. 애통하며, 애가를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울게 할 때는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9:11-14a)
고통을 통한 돌이킴과 회복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통, 회개, 그리고 소망이 애가의 주제입니다.
상처 입은 위로자
이런 고통의 시대에 우리 크리스천은 자신과 타인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먼저 타인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국가(타인)의 고통을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내 삶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과 더불어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의 문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기도하며 고민해야 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타인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을 간구해야 합니다.
세계는 매우 가깝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바로 ‘그 치유자’를 만나야 합니다.
헨리 나우엔의 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또 감정적이든 영적이든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상처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상처를 이용하여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처가 그저 부끄러운 과거나 흉터로만 남지 않고 치유의 원천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수많은 상처속에서도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상담가의 대부분이 자신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내 안에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나서, 그 후에 타인에게 접근하여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떻게 내 안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그 치유자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겪는 이 고통은 누군가를 위해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회복하여 타인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도록 말입니다.
고통의 시대 가운데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내 삶의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할 것인가?
아니면 이겨내고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모두가 외롭고 힘들고 지친, 눈물이 마르지 않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그러한 위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없이는, 곧 내가 먼저 눈물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통이 온다면 그 고통 가운데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 인하여 주님을 깊이 만나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위로 받아야 합니다.
그 후에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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