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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새벽묵상] 건지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 God Draws and Rewards Us (삼하/2Sam 22:17~28)



22:17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7 “He reached down from on high and took hold of me;

he drew me out of deep waters.

22:18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

18 He rescued me from my powerful enemy,

from my foes, who were too strong for me.

22:19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19 They confronted me in the day of my disaster,

but the Lord was my support.

22:20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20 He brought me out into a spacious place;

he rescued me because he delighted in me.

22:21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21 “The Lord has dealt with me according to my righteousness;

according to the cleanness of my hands he has rewarded me.

22:22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 For I have kept the ways of the Lord;

I am not guilty of turning from my God.

22:23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3 All his laws are before me;

I have not turned away from his decrees.

22:24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24 I have been blameless before him

and have kept myself from sin.

22: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공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25 The Lord has rewarded me according to my righteousness,

according to my cleanness in his sight.

22: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 “To the faithful you show yourself faithful,

to the blameless you show yourself blameless,

22:27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27 to the pure you show yourself pure,

but to the devious you show yourself shrewd.

22: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28 You save the humble,

but your eyes are on the haughty to bring them low.


 

다윗이라는 인물은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사건만 없었다면 매우 완벽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는 뛰어난 용사이며, 동시에 아름다운 찬양 사역자입니다.

그는 시인이며 동시에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와 기도는 본래 동류이다. 시와 기도가, 시인이며 기도하는 사람 다윗이라는 인물 안에

융합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다윗이 활동하는 시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하고 의미 있다.


가장 많은 시편을 지은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기도한만큼 시를 지었고, 시를 쓴 것만큼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시가 되었고, 그의 시는 기도 자체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기도이자 시에는 그가 경험한 하나님이 담겨 있습니다.



건지시는 하나님 (17~20절)

본 시의 표제는 1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1)입니다. 이 시는 시편 18편과 거의 동일합니다.

시편에 수록된 것이 먼저인지, 이곳에 기록된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는 한나의 노래(삼상 2:1~10)와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무엘서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기능을 합니다. 구원을 감사하는 이 찬양의 시는 한나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구원이 인간 스스로 가지는 것이 아닌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선포합니다.

본시의 전반부를 보면 연상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의 장면입니다.

모든 묘사된 장면은 시내산에 임재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과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많은 물에서 건져 주시는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에 대해서 유진 피터슨 목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과거에 (애굽과 시내 광야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행동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가 되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행동에 참여한다. 모세와 다윗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믿음과 기도로 두 사람은 동시대 사람이 되었다.


참으로 멋있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시대를 초월하여 믿음 자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건지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에서 건지셨고, 다윗을 원수들의 손에서 건지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깊은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에게 손을 내미사 건져 주셨습니다(17). 이스라엘을, 다윗을, 베드로를 그리고 나를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수많은 원수의 손과 많은 물과 같은 위기 속에서 건져 주십니다.

나의 재앙에 날에 하나님은 나의 의지가 되어 주시고(19), 넓고 안전한 곳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과 기도(시)로 모세와 다윗과 베드로와 나는 동시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갚아 주시는 하나님 (21~28절)

두번째로 다윗이 만나는 하나님은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이것을 개입과 구출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24)라고 과감하게 선포합니다.

자신이 잘못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출하신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은 이러한 다윗의 고백으로 볼 때 적어도 이 시는 우리아의 사건 이전에 기록된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듭니다. 아마 밧세바 사건 이후라면 결코 이런 기도를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 스스로도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깨달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 이 시편에서 다윗이 자신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완전하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밈마음의 고결함, 순전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하고 완벽한 삶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비록 크리스천의 삶이 100%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그 마음에 중심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다윗의 이러한 주장은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원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권선징악 勸善懲惡입니다. 죄악에 대해서 갚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다윗은 댓구(26~28절)를 통하여 잘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최선을 다해서 도덕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윗이 본시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원수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합니다. 그러면 그가 사울 때문에 흘린 눈물은 소위 가식적인 악어의 눈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그것은 즐겁고도, 슬픈 소식일 수 있습니다.

건지시고, 갚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겁고, 감사한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래도 자신의 장인 어른이고, 이스라엘의 왕이며, 자신의 주군인 사울이 죽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인생은 한편의 시와 같습니다. 믿음과 기도로 우리 역시 모세와 다윗과 베드로의 시대로 들어 가봅시다.

그리고 우리를 건지시고, 원수를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봅시다.

그리고 다윗처럼 아름다운 기도의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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