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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4 [새벽묵상] 꺼지지 않는 등불 | The Unquenchable Lamp (삼하/2Sam 21:15~22)



21: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15 Once again there was a battle between the Philistines and Israel. David went down with his men to fight against the Philistines, and he became exhausted.

21: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6 And Ishbi-Benob, one of the descendants of Rapha, whose bronze spearhead weighed three hundred shekels and who was armed with a new sword, said he would kill David.

21: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17 But Abishai son of Zeruiah came to David’s rescue; he struck the Philistine down and killed him. Then David’s men swore to him, saying, “Never again will you go out with us to battle, so that the lamp of Israel will not be extinguished.”

21: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18 In the course of time, there was another battle with the Philistines, at Gob. At that time Sibbekai the Hushathite killed Saph, one of the descendants of Rapha.

21: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19 In another battle with the Philistines at Gob, Elhanan son of Jair the Bethlehemite killed the brother of Goliath the Gittite, who had a spear with a shaft like a weaver’s rod.

21: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0 In still another battle, which took place at Gath, there was a huge man with six fingers on each hand and six toes on each foot—twenty-four in all. He also was descended from Rapha.

21: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21 When he taunted Israel, Jonathan son of Shimeah, David’s brother, killed him.

21: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22 These four were descendants of Rapha in Gath, and they fell at the hands of David and his men.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는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것은 성숙이 아니라 미성숙의 표지다 …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당신은 내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고, 나는 당신에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인생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누군가에게 짐으로 이 세상에 들어왔다가, 성장하여 누군가의 짐을 대신 지어주다가 다시 마지막에는 누군가에게 짐이 되어 삶을 마무리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짐이 된 다윗 (15~17절)

오늘 본문은 다윗의 용사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무엘하23장8~39절과 대칭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 이야기인데, 이것 역시 시간에 흐름과 관계없이 편집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시점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 왕으로 등극하고 블레셋을 물리쳤던 사무엘하 5장 이후의 이야기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피곤하매(15) 라고 시작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전체 왕이 된 시점이라면 다윗이 40살 초반의 나이입니다. 아직 나이 때문에 피곤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본문의 사건을 다윗이 좀 더 나이가 든 어느 시점으로 보기도 합니다.

다윗이 나이가 많아서 이제는 전쟁이 힘에 부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이에 상관없이 전쟁을 하는 중에 너무 힘을 써서 지치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큰 위기가 닥칩니다.

고지대의 거주자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블레셋의 거인족 이스비브놉이 3.4kg(7.5lb)의 놋 창을 들고 지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다윗의 조카인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그 거인을 죽입니다.



아비새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에 비유하며, 다시는 다윗 왕이 전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말립니다(17). 혹시라도 전장에서 전사할 것을 염려하여 그러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후에 다윗이 전장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고, 사탄의 올무에 걸려 간음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예전 십대 시절에 다윗은 물매 돌 하나로 골리앗을 죽였지만, 이제는 부하들에게 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피곤한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시시때때로 위기가 닥쳐옵니다.

중년의 위기, 노년의 위기, 건강의 위기, 비즈니스의 위기, 관계의 위기, 가정의 위기 등등

그때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비새와 같은 존재입니다. 아비새는 다윗의 누나 스루야의 아들로 요압과 형제입니다. 그는 외삼촌인 다윗의 충성스러운 부하입니다. 친족 중에서 오히려 대적자가 되어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비새처럼 충성을 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피곤한 인생에는 아비새와 같은 존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그렇게 설계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나에게 이미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는 성공한 인생입니다.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손과 부하들의 손에 (18~22절)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의 또다른 3명의 용사를 소개합니다.

먼저는 후사 사람 십브개입니다(18).

그는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사람으로 후사 사람 므분내(23:27)와 동일인으로 보입니다.

그는 블레셋 거인 (십배, 대상 20:4)을 죽인 용사입니다.

다음은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입니다(19).

본문의 원문은 그가 골리앗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골리앗을 죽인 것은 분명 다윗입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하는 역대상 20:5은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야레오르김의 다른 이름이 야일이고, 엘하난은 야일의 아들로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죽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나단입니다(21).

그는 다윗이 형인 삼마(시므아)의 아들로 다윗의 충성된 부하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장남인 암논이 다말을 강간하도록 부추겼던 요나답이 요나단의 형제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합니다. 다른 한 조카는 다윗을 살리고, 다른 한녀석은 다윗의 가문을 망하게 하니 말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오늘 본문을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 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22)고 기록합니다. 다윗이 한 것이 부하들이 한 것이고, 부하들이 한 것이 곧 다윗이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운명 공동체입니다.

어떤 위대한 인물도 자기 혼자의 힘으로 우뚝 서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은 다윗처럼 옆에 아비새와 같은, 십브개와 엘하난과 요나단과 같은 사람들이 빌려준 어깨를 밟고 일어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주신 법칙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짐이 되고, 서로가 그것들을 감당해주는 아름다운 공동체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말합니다.


아비새는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등불(17)이라고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생각은 다릅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22:29)라고 노래합니다.

다윗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그를 위해 목숨 걸고 돕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윗이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등불로 여긴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등불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가문에 꺼지지 않는 등불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서로가 서로의 짐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다윗이 예표한 우리의 영원한 등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은 비록 위기가 닥칠지라도 결국에는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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