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4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24 While David was sitting between the inner and outer gates, the watchman went up to the roof of the gateway by the wall. As he looked out, he saw a man running alone.
18:25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25 The watchman called out to the king and reported it.
The king said, “If he is alone, he must have good news.” And the runner came closer and closer.
18:26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6 Then the watchman saw another runner, and he called down to the gatekeeper, “Look, another man running alone!”
The king said, “He must be bringing good news, too.”
18:27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27 The watchman said, “It seems to me that the first one runs like Ahimaaz son of Zadok.”
“He’s a good man,” the king said. “He comes with good news.”
18: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28 Then Ahimaaz called out to the king, “All is well!” He bowed down before the king with his face to the ground and said, “Praise be to the Lord your God! He has delivered up those who lifted their hands against my lord the king.”
18: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29 The king asked, “Is the young man Absalom safe?”
Ahimaaz answered, “I saw great confusion just as Joab was about to send the king’s servant and me, your servant, but I don’t know what it was.”
18:30 왕이 이르되 물러다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30 The king said, “Stand aside and wait here.” So he stepped aside and stood there.
18: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1 Then the Cushite arrived and said, “My lord the king, hear the good news! The Lord has vindicated you today by delivering you from the hand of all who rose up against you.”
18: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2 The king asked the Cushite, “Is the young man Absalom safe?”
The Cushite replied, “May the enemies of my lord the king and all who rise up to harm you be like that young man.”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충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 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33 The king was shaken. He went up to the room over the gateway and wept. As he went, he said: “O my son Absalom! My son, my son Absalom! If only I had died instead of you—O Absalom, my son, my son!”

죽음의 여의사라는 별명을 가진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스위스 출신의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 분야의 개척자입니다.
그녀는 죽음과 임종에 관하여On Death and Dying(1969)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였고, 분노의 5 단계five stages of grief 이론을 처음으로 정립한 학자입니다.
그녀는 2004년 임종하기 전 제자인 데이비드 케슬러David Kessler와 함께 쓴 유작 인생수업 Life Less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인생이 생각보다 길지 않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꼭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지금 하라는 교훈입니다.
수많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며 인생과 죽음을 연구한 최고의 학자가 내린 인생의 결론입니다.

좋은 사람이 전하는 좋은 소식 (24~30절)
아히마아스는 기필코 구스 사람을 앞질러 다윗이 머물러 있는 성에 도착합니다.
다윗은 바깥쪽 성문과 안쪽 성문 사이에 앉아서 초조하게 전쟁에 관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파수꾼은 두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왕에게 보고합니다.
그리고 앞선 자의 달리는 모습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리는 모습과 같다고 보고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말합니다(27).
이 부분만 봐도 아히마아스라는 사람이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뛰는 모습을 알아볼 정도로 평소에도 바삐 뛰어다녔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맡겨진 책무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혼자 오는 그를 보면서 분명히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는 것이라 확신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도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드러내는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성실함, 친절함, 상냥함, 인자함, 부지런함, 신속함, 정확함 등등
그는 도착하자마자 왕에게 샬롬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절하며, 여호와께서 손을 들어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주셨다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28).
예상대로 좋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최대 관심은 압살롬의 생사여부입니다.
다윗은 아히마아스에게 압살롬의 소식을 묻습니다. 그러자 아히마아스는 자신이 떠나올 때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지만, 무슨 일인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29).
여기서 우리는 다시 혼란스럽습니다. 왜 아히마아스는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혹시 그는 나쁜 소식은 피하고, 좋은 소식만 전하여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닐까?
하지만 평소 그의 행위로 볼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그는 좋은 사람일 뿐 아니라 매우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에게 먼저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나서, 하지만 내가 전장을 떠나올 때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고 언지 함으로 나중에 알게 될 나쁜 소식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시킨 것입니다. 아마도 아히마아스의 보고를 들은 다윗은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쁜 소식 (31~33절)
바로 이어서 도착한 구스 사람은 승전의 소식을 전합니다.
다윗은 듣지도 않고 압살롬의 소식에 대해 묻습니다. 그러자 구스 사람은 내 주 왕의 원수와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말합니다(32).
구스 사람은 다윗의 마음을 모르고 순진하게 보고한 것일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그저 기계적으로 목숨 걸고 사실만을 보고한 것일까요? 어쩌면 그는 이런 류의 소식을 전했다가는 다윗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심판과 정의를 전한 것입니다.
누가 전하든, 어떻게 전하든 다윗도 언젠가는 알아야 하는 소식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 이야기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에 하나를 맞이합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소식을 듣자마자 자리를 피하며,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33) 통곡합니다.

5번이나 내 아들아, 3번이나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는 다윗의 모습에서 진한 부성애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압살롬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있었다면, 왜 다윗은 진작에 이 마음을 압살롬에게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압살롬을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머리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요?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을 때라도 찾아가서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열어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요?
다윗은 가슴을 찢으며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부르짖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서 압살롬이 죽게 된 것을 압니다.
이 가슴 찢어지는 이야기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아들은 아버지 때문에 죽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죄 때문이 아닌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을 죽음으로 내어 모는 것입니다. 아버지 자신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을 다윗이 조금이나마 맛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유한합니다. 더 늦기 전에 미루지 말고 옆에 있는 아내를 남편을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봅시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꼭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봅시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