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6 As the ark of the Lord was entering the City of David, Michal daughter of Saul watched from a window. And when she saw King David leaping and dancing before the Lord, she despised him in her heart.
6: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7 They brought the ark of the Lord and set it in its place inside the tent that David had pitched for it, and David sacrificed burnt offerings and fellowship offerings before the Lord.
6: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8 After he had finished sacrificing the burnt offerings and fellowship offerings, he blessed the people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6: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9 Then he gave a loaf of bread, a cake of dates and a cake of raisins to each person in the whole crowd of Israelites, both men and women. And all the people went to their homes.
6: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0 When David returned home to bless his household, Michal daughter of Saul came out to meet him and said, “How the king of Israel has distinguished himself today, going around half-naked in full view of the slave girls of his servants as any vulgar fellow would!”
6: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1 David said to Michal, “It was before the Lord, who chose me rather than your father or anyone from his house when he appointed me ruler over the Lord’s people Israel—I will celebrate before the Lord.
6: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2 I will become even more undignified than this, and I will be humiliated in my own eyes. But by these slave girls you spoke of, I will be held in honor.”
6: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23 And Michal daughter of Saul had no children to the day of her death.
저는 어제 본문(6:1~15)을 볼 때마다 웃사에 대한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사실 언약궤가 수레에서 떨어지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수레에서 떨어지는 언약궤를 붙잡은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
웃사의 죽음의 원인은 레위인으로서 하나님의 명령하신 언약궤 운반에 대한 말씀(막대기를 언약궤 고리에 끼워서 운반하는 방법)을 버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택한 선진(?) 문명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하는 신앙생활, 예배의 위험성입니다. 신앙생활과 예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그분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천국잔치와 사울의 딸 미갈 (16~19절)
천국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면,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그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마 12:2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의 특징 중 하나는 기쁨과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모습이 천국의 모형입니다.
언약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윗이 준비한 장막은 모세의 성막은 아닙니다.
당시 모세의 성막은 기브온에 있었습니다(대상 16:39; 21:29).
기쁨의 찬양과 춤, 번제와 화목제, 곧 예배가 있습니다(16, 17).
또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이 있습니다(18).
모든 예배를 마친 후에는 기쁨의 나눔이 있습니다(19).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쁨으로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화목제를 드린 후에 그 제물을 모두 함께 나눠 먹는 애찬식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저는 항상 부활주일에 건포도 박힌 백설기 떡을 왜 나눠 먹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19)를 보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유레카!
어쨌든 다윗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쁨의 천국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이 기쁨의 천국잔치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그 천국잔치의 유일한 불참자를 의도적으로 사울의 딸 미갈(16a)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녀는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그를 업신여겼습니다(16b).
왜냐하면 다윗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경거망동하여 춤을 추다가 바지가 벗겨져 속살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왕으로서 체통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20).
미갈은 예배하는 기쁨의 자리에서 그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욱 집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웃사는 예배하는 일을 수종 드는 자로서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저 귀찮은 일을 편리성으로만 판단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바꾸는 것입니다.
결국 웃사나 미갈은 예배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예배자로서 참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매우 흔한 일이면서, 동시에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진정한 기쁨의 예배를 하지 않는 자는 결국에는 웃사나 미갈처럼 그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 (20~23절)
모든 백성과 기쁨의 천국잔치, 예배를 마친 다윗은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가족들을 축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미갈은 다윗을 비꼬면서 경멸하듯 나무랍니다. 이미 그녀는 다윗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16).
아마도 미갈의 이런 자세는 언약궤, 하나님, 예배를 최우선시 하지 않았던 아버지 사울에게서 배운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녀는 태생부터 금수저로 사람들을 신분과 계급으로 구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한 목동 출신인 다윗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 역시 강하게 반발합니다. 먼저 자신이 춤을 춘 것은 사람이 아닌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역시 다윗은 예배의 가장 기본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나, 단독자로서 만나는 만남입니다. 옆에 사람을 배려하지만,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 아버지의 온 집을 버리고 다윗을 주권자 삼으셨기에 나는 여호와 앞에서 언제라도 뛰놀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 스스로 천하게 보여도 당신이 걱정하는 것처럼 계집종들이 나를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21, 22).
이는 다윗의 진실되고 겸손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벧전 5:5).
부부싸움이 가문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다윗의 말은 미갈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은 미갈의 잘못된 가치관, 예배관,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왕이 되기 전 다윗의 모습에서도 왕으로서의 위엄을 보고, 오히려 왕의 범죄를 막는 지혜로운 말을 했다면, 미갈은 왕이 된 남편 다윗을 업신여기는 말을 하는 지혜롭지 못한 여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부부싸움에서 다윗의 손을 들어줍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b)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과 그의 가문이 버림을 받고, 다윗이 택함을 받은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제 사울의 가문에서 남은 자는 임신하지 못하는 미갈과 절름발이 므비보셋 뿐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때부터 다윗이 미갈과 잠자리를 하지 않아서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석하지만, 미갈이 자녀가 없는 것은 이미 그 전부터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녀의 평소의 신앙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 오늘 본문의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늘 예배의 자리에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기쁨의 잔치에 함께 진정으로 동참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고 기쁨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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