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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0 [새벽묵상] 샤덴프로이데와 미트프로이데 | Schadenfreude & Mitfreude (삼하/2Sam 1:1~16)



1: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1 After the death of Saul, David returned from striking down the Amalekites and stayed in Ziklag two days.

1: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2 On the third day a man arrived from Saul’s camp with his clothes torn and dust on his head. When he came to David, he fell to the ground to pay him honor.

1: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3 “Where have you come from?” David asked him.

He answered, “I have escaped from the Israelite camp.”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4 “What happened?” David asked. “Tell me.”

“The men fled from the battle,” he replied. “Many of them fell and died. And Saul and his son Jonathan are dead.”

1: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5 Then David said to the young man who brought him the report, “How do you know that Saul and his son Jonathan are dead?”

1: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6 “I happened to be on Mount Gilboa,” the young man said, “and there was Saul, leaning on his spear, with the chariots and their drivers in hot pursuit.

1: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7 When he turned around and saw me, he called out to me, and I said, ‘What can I do?’

1: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8 “He asked me, ‘Who are you?’

“‘An Amalekite,’ I answered.

1: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9 “Then he said to me, ‘Stand here by me and kill me! I’m in the throes of death, but I’m still alive.’

1: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10 “So I stood beside him and killed him, because I knew that after he had fallen he could not survive. And I took the crown that was on his head and the band on his arm and have brought them here to my lord.”

1: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1 Then David and all the men with him took hold of their clothes and tore them.

1: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2 They mourned and wept and fasted till evening for Saul and his son Jonathan, and for the army of the Lord and for the nation of Israel, because they had fallen by the sword.

1: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3 David said to the young man who brought him the report, “Where are you from?”

“I am the son of a foreigner, an Amalekite,” he answered.

1: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4 David asked him, “Why weren’t you afraid to lift your hand to destroy the Lord’s anointed?”

1: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5 Then David called one of his men and said, “Go, strike him down!” So he struck him down, and he died.

1: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16 For David had said to him, “Your blood be on your own head. Your own mouth testified against you when you said, ‘I killed the Lord’s anointed.’”


 

수 년 전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시한 문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KBS 6자 회담, 2019).

그것은 내가 1억 받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100억을 받는 것과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받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것을 선택 하시겠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프로그램에 나온 이경규씨나 박명수씨 모두 차라리 받지 않겠다 를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가진 것들이 많다 보니 1억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 본능적으로 먼저 기쁨이라는 감정이 작동한다고 합니다. 믿기지 않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이러한 감정을 심리학에서는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합니다.

샤덴프로이데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합니다.

상반되는 뜻의 두 독일어 단어 Schaden(손실, 고통)과 Freude(환희, 기쁨)의 합성어입니다.

이와 같은 심리를 다룬 책이 티파니 와트 스미스Tiffany Watt Smith의 위로 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입니다. 제목만으로도 무척이나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다른 책은 리차드 H. 스미스Richard H. Smith의 쌤통의 심리학 The joy of Pain입니다. 그는 한국인 아내의 영향 때문인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한국 속담을 책에서 인용한다고 합니다.



샤덴프로이데 이기기 (1~10절)

다윗은 아말렉을 물리치고 시글락으로 모든 백성과 재산을 환수해 옵니다.

동일한 시간에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전장에서 전사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엄청난 모욕을 당합니다.

다행히도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의 희생과 보은의 행동으로 그들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온 사흘째 한 아말렉 사람이 나아와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알립니다(4).

믿을 수 없었던 다윗은 차근차근 질문합니다(5).

그러자 그 아말렉 청년은 자신이 우연히 길보아 산에서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사울을 보았는데, 사울이 자신에게 속히 죽여 주기를 간청하였고, 보아하니 부상이 너무 심하여 회복의 가망이 없음을 보고는 그를 죽이고는 그의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10).



하지만 다윗은 그 청년의 보고가 일부는 맞고, 일부는 거짓임을 알고 있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는 것을 혐오했던 사울이 다른 무할례자인 아말렉 사람에게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청년은 다윗의 원수인 사울을 자신이 죽였다는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면 무엇인가 포상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남의 불행을 악용하여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채우려는 아주 악한 태도입니다.

거기다 자신이 이스라엘에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죽였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이런 심리가 바로 샤덴프로이데입니다.


미트프로이데 (11~16절)

다윗 역시 샤덴프로이데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습니다.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충신인 헷사람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 죽게 하고서, 그 보고를 받았을 때입니다.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삼하 11:25)



우리아가 죽었다고 전령을 통하여 소식을 전하는 요압에게 긴말로 괜찮다고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다윗의 모습에서 요압을 위로하는데 자꾸 웃는 얼굴이 보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나, 이때의 다윗이라면 그 아말렉 청년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충만 했던 다윗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옷을 찢습니다(11). 그리고는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합니다(12).

이어서 다윗은 그 아말렉 청년을 불러 어디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이때까지 그 청년은 자신이 왕의 포상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냐며 그를 추궁합니다(14). 그리고는 그를 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15).

거짓을 말한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16).



우리 크리스천 안에도 다윗과 같은 두가지 모습이 모두 있습니다.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샤덴프로이데와 남의 불행을 나의 불행으로 생각하며 함께 옷을 찢고 우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것이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샤덴프로이데와 반대되는 개념인 미트프로이데 Mitfreude, 곧 함께 기뻐하기 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 12:15)


바로 이 말씀이 정확하게 미트프로이데의 삶인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인간이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악한 본성을 거스르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정체성이 바로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저 본능대로 흘러가는 샤덴프로이데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본능을 거스르는 성령 충만한 삶, 예수 그리스도의 삶인 미트프로이데의 삶을 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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