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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0 [새벽묵상]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요나단 | Jonathan Resembles Heavenly Father (삼상/1Sam 20:35~42)




20:35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35 In the morning Jonathan went out to the field for his meeting with David. He had a small boy with him,

20:36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화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36 and he said to the boy, “Run and find the arrows I shoot.” As the boy ran, he shot an arrow beyond him.

20:37 아이가 요나단이 쏜 화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이르되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37 When the boy came to the place where Jonathan’s arrow had fallen, Jonathan called out after him, “Isn’t the arrow beyond you?”

20:38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38 Then he shouted, “Hurry! Go quickly! Don’t stop!” The boy picked up the arrow and returned to his master.

20:39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39 (The boy knew nothing about all this; only Jonathan and David knew.)

20:40 요나단이 그의 무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읍으로 가라 하니

40 Then Jonathan gave his weapons to the boy and said, “Go, carry them back to town.”

20:41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41 After the boy had gone, David got up from the south side of the stone and bowed down before Jonathan three times, with his face to the ground. Then they kissed each other and wept together—but David wept the most.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2 Jonathan said to David, “Go in peace, for we have sworn friendship with each other in the name of the Lord, saying, ‘The Lord is witness between you and me, and between your descendants and my descendants forever.’” Then David left, and Jonathan went back to the town.


 

유전자의 본체인 DNA의 힘은 대단합니다. 모든 생물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DNA 법칙에 지배를 받습니다. 본질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형질은 모두 부모의 DNA로부터 기인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생물학적으로 부모를 닮습니다. 선천적으로 부모를 닮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낳은 부모 밑에서 양육을 받으며, 후천적으로 부모의 언행과 습관, 음식까지 닮게 됩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자녀는 자신을 낳아 준 부모에게서 선천적, 후천적 영향을 받아 부모를 닮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데, 후천적인 부분에서는 가끔 오류(?)가 발생합니다.

유다의 왕가만 살펴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남유다의 12대 왕인 아하스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왕하 16:3) 악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바로 다윗 왕과 버금 가는 유다 13대 히스기야 왕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히스기야의 아들이 14대 므낫세 왕인데, 그에 대한 평가는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아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대하33:9; 왕하 21:9)입니다.

그리고 므낫세의 아들 아몬 역시 아버지의 악한 길을 따릅니다.

하지만 아몬의 아들로8살에 왕위에 오른 유다의 16대 왕 요시야는 다윗의 길을 따릅니다.



아빠와 다른 아들 (24~34절)

이와 동일한 경우를 사울과 요나단 부자 사이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의 생물학적인 부분이 성경에 묘사 되어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인격이나 언행에 있어서는 사울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언제나 옳은 선택을 했고,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순종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준 요나단에게 불같이 화를 내다가, 요나단이 말대꾸를 하자 아들인 요나단 마저 창을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사울이 요나단에게 폭언을 퍼 붓는 장면인데, 요나단에게 자신의 아내이자 요나단의 친모를 거론하면서 막말을 하는 부분입니다.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30)

사울은 자신의 아내를 패역무도한 계집이라고 지칭합니다. 최악의 아버지입니다. 자녀들에게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서 험담을 하는 부모는 최악입니다. 아마도 사울과 그의 아내의 사이가 그리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아들을 창으로 죽이려고 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상태라면, 분명히 아내와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패역무도한, 곧 사악하고 반역적인 계집이라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언어 폭행인 것입니다. 부부가 다툴 수 있지만, 다투더라도 분명히 선을 지켜야 합니다.

적어도 자녀가 보는 앞에서 다투거나, 자녀들에게 서로에 대한 흉을 보거나, 자녀에게 엄마 아빠의 싸움에 대한 판단이나 중재를 맡기는 일만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폭행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동들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사울은 자신이 아닌, 다윗을 선택한 요나단의 선택이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나단의 선택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많이 다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35~42절)

아버지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요나단은 하루 종일 금식을 하며 다윗을 위해 슬퍼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약속한 장소에서 다윗을 만나 언약을 지켜 그를 도망하게 하고는 마지막 눈물의 작별을 나눕니다.

요나단은 참으로 약속에도 신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요나단의 이런 아름다움이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먼저는 이름 모를 엄마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나단의 모친의 이름은 나의 형제는 유쾌하다 라는 의미의 아히노암(삼상 14:50)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제사장 가문의 출신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성경에 그녀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없습니다.

앞서 서론에서 밝힌 선한 왕들(히스기야, 요시야) 역시도 엄마의 선한 영향력 아래 자라난 경우입니다.

부모가 모두 믿음의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때로는 부모 중 한 사람만 제대로 하나님을 믿어도 그 자녀가 영적, 정서적으로 아주 건강하게 자라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아히노암은 사울에 비하면 무명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이름 모를 엄마의 영향력은 유명한 아버지 사울의 악한 영향력을 부수고도 남았습니다.



다음은 진짜 아버지의 영향력입니다.

요나단을 보면 볼수록 하나님 아버지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신실하심입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믿을 만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말로는 미쁘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딤후 2:13)


그리스도인은 신실하려고 노력하지만, 완벽하게 신실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쁘신 하나님은 결코 변함이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말입니다.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스스로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을 지키십니다. 요나단은 바로 이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 불우한 환경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성장하신 분들이 정말 신실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진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고, 그리고 그분의 자녀인 우리는 아버지를 닮아야 한다고… 오늘 하루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닮는 하루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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