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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새벽묵상] 울면서도 가야 하는 길 | The Path to Follow While Lowing (삼상/1Sam 6:1~12)



6: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1 When the ark of the Lord had been in Philistine territory seven months,

6: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2 the Philistines called for the priests and the diviners and said, “What shall we do with the ark of the Lord? Tell us how we should send it back to its place.”

6: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3 They answered, “If you return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do not send it back to him without a gift; by all means send a guilt offering to him. Then you will be healed, and you will know why his hand has not been lifted from you.”

6:4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4 The Philistines asked, “What guilt offering should we send to him?”

They replied, “Five gold tumors and five gold rat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Philistine rulers, because the same plague has struck both you and your rulers.

6:5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5 Make models of the tumors and of the rats that are destroying the country, and give glory to Israel’s god. Perhaps he will lift his hand from you and your gods and your land.

6: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6 Why do you harden your hearts as the Egyptians and Pharaoh did? When Israel’s god dealt harshly with them, did they not send the Israelites out so they could go on their way?

6: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7 “Now then, get a new cart ready, with two cows that have calved and have never been yoked. Hitch the cows to the cart, but take their calves away and pen them up.

6: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하고

8 Take the ark of the Lord and put it on the cart, and in a chest beside it put the gold objects you are sending back to him as a guilt offering. Send it on its way,

6: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9 but keep watching it. If it goes up to its own territory, toward Beth Shemesh, then the Lord has brought this great disaster on us. But if it does not, then we will know that it was not his hand that struck us but that it happened to us by chance.”

6: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0 So they did this. They took two such cows and hitched them to the cart and penned up their calves.

6: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1 They placed the ark of the Lord on the cart and along with it the chest containing the gold rats and the models of the tumors.

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12 Then the cows went straight up toward Beth Shemesh, keeping on the road and lowing all the way; they did not turn to the right or to the left. The rulers of the Philistines followed them as far as the border of Beth Shemesh.


 

어떤 문제든지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문제 파악과 진단이 필수입니다.

만일 이 단계에서 제대로 된 문제 파악을 하지 못하면 분명히 잘못된 해결책이 제시 될 것이고, 그 결과는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또 다른 그의 책인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자만방만한 경영 다음으로 위험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를 지적합니다.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직면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 것이나, 잘못된 진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기업은 제때 대처를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유명무실하거나 소멸하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모든 공동체, 국가에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나 공동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그 문제의 원인을 진지하게 짚어보는 것이야 말로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1~6절)

여호와의 언약궤가 블레셋 지역에 머문 것도 벌써 일곱 달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블레셋 사람들의 고민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입니다(2). 그런데 이미 언약궤를 돌려 보내기로 한 것은 기정 사실이고, 문제는 이제 어떤 방법으로 돌려 보낼 것인가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들과 복술자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말합니다.

속건제는 이스라엘의 5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중 하나로 그 목적에 의하여 구분한 제사입니다(레 5:14~19; 6:1~7).

속건제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물에 무지 중에 범죄하였을 경우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수양 한 마리를 속건제물로 드리거나, 또는 성소의 세겔로 모세가 정하는 가치만큼 배상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의 20%를 제사장에게 주어 죄사함의 예식을 행하고 사함을 받습니다.

두번째는 사람이 사람에게 도둑질을 하거나 착복을 하거나 경제적인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도 수양을 제물로 드리는 속건제를 드립니다. 이 경우에도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20%의 손해를 배상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뿐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이웃사랑입니다.

결국 모세 율법의 속건제는 강력한 배상이나 위자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과연 블레셋 사람들이 이 제사의 방식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럴 리가 만무합니다.

한글 성경 속건제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아솸 אשם은 배상이라는 의미로도 번역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말 공동번역 성경은 면제제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신을 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선물공세를 하는 것입니다.

당시 다섯개의 주요 도시로 구성된 블레셋은 한 도시당 한 마리의 금으로 만든 쥐와 금독종 한 마리,

곧 금쥐 다섯 마리, 금독종 다섯 마리를 언약궤와 함께 보내기로 합니다.

제사장과 복술사는 블레셋 방백들에게 애굽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주저하지 말고 빨리 언약궤를 돌려 보낼 것을 주문합니다. 아마도 블레셋 정치인들은 언약궤를 계속 가지고 싶은 마음과 돌려 보내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6).



울면서도 가야 하는 길 (7~12절)

그들이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를 몰랐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언약궤를 취급하는 방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언약궤는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만이 어깨에 메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언약궤를 돌려보냅니다.

제사장과 복술사는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젖 나는 어미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메어 보냈을 때, 소들이 곧장 이스라엘의 벧세메스 지역으로 간다면 이 모든 일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히 일어난 일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로서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새 수레와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소는 경험이 없는 존재들이고, 거룩하게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젖 나는 소는 새끼를 돌보려는 모성애적 본능을 의미하는데 그 본능을 뒤로하고 앞으로 전진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그들의 결론입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처음 해보는 일이고 본능을 역행하는 일을 어미 소 두 마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지체하지 않고 복술가가 말한대로 실행합니다. 뒤에서는 송아지들이 어미 소를 찾는 울음 소리를 내고, 새 수레에는 언약궤와 금쥐, 금독종이 담긴 상자가 실렸고, 어미 소 두 마리는 수레의 멍에를 메고 출발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12)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를 본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분명히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등에 얹혀진 사명의 멍에를 메고 송아지를 뒤로 한 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곧장 목적, 목표를 향하여 눈물을 흘리며 나갑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텍스트의 단순한 문자적 의미를 극소화하면서 오히려 숨겨져 있는 영적인 의미를 극대화하는 해석법을 풍유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성경을 해석할 때 알레고리 해석은 지양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한번쯤 알레고리 해석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사명자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을 알고도, 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본능에 반하는 길이지만 눈물 흘리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사명자입니다.

예수님 처럼 울면서도 가야 하는 길… 그것이 사명자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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