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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1 [새벽묵상] 살든지 죽든지 | Whether By Life Or By Death (빌/Ph 1:12~21)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2 Now I want you to know, brothers and sisters, that what has happened to me has actually served to advance the gospel.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3 As a result, it has become clear throughout the whole palace guard and to everyone else that I am in chains for Christ.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4 And because of my chains, most of the brothers and sisters have become confident in the Lord and dare all the more to proclaim the gospel without fear.

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5 It is true that some preach Christ out of envy and rivalry, but others out of goodwill.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6 The latter do so out of love, knowing that I am put here for the defense of the gospel.

1: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7 The former preach Christ out of selfish ambition, not sincerely, supposing that they can stir up trouble for me while I am in chains.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8 But what does it matter? The important thing is that in every way, whether from false motives or true, Christ is preached. And because of this I rejoice.

Yes, and I will continue to rejoice,

1: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19 for I know that through your prayers and God’s provision of the Spirit of Jesus Christ what has happened to me will turn out for my deliverance.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0 I eagerly expect and hope that I will in no way be ashamed, but will have sufficient courage so that now as always Christ will be exalted in my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어느 나라든 역사를 보면 외세로부터 자신들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의 이름이 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조국과 후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하나도 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자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강력한 적군도 무섭지만,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무엇인가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예지만 2001.9.11 오 사마 빈 라덴의 자폭테러단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제일 무서운 사람은 죽자고 덤비는 사람입니다. 이슬람은 순교자는 내세에서 부자로 산다는 가르침으로 현혹한다고 합니다. 잘못된 동기 부여이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만큼 두려운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초대기독교의 수많은 제자들이 이와 같은 삶, 곧 죽는 것도 유익(21)이라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5)


사도의 기쁨(12-18절)

사도는 자신이 옥에 갇힌 중에도 감사의 조건들을 발견하며, 자신을 염려할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합니다.

내가 당한 일(12a)은 로마 감옥에 갇힌 신세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복음 전파의 진전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크게 2가지 유익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13).

바울은 로마시민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왕래할 수 있는 가택연금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로마병사 한 명과 사슬로 묶여 생활하면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 만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의 이러한 형편은 시위대 안과 밖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습니다.

여기서 시위대프라이토리오 πραιτωρίῳ라는 헬라어로 총독의 관저나 병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은 후 로마 병사들에게 끌려간 뜰 안이 브라이도리온(막 15:16)인데, 이것과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로마 사람 누구에게든, 심지어 시저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유익은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믿음의 형제들이 겁 없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14).

바울이 부끄러운 죄인이 아닌 오직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는 이미지(16)는 오히려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극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동기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복음 전파의 2가지 동기를 발견합니다.

먼저는 착한 뜻(15), 사랑(16), 그리고 참으로(18)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은 사도임을 알고 인정하고 동역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전파합니다.

하지만 어떤 자는 투기와 분쟁(15),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17), 겉치레(18)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아마도 로마에서 자생하게 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바울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가로챈다고 생각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호재를 부르며 자신들이 백성들에게 인기와 명예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토록 귀한 복음을 다루는 자들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일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그는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18b) 고백합니다.

그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을 위한 사역을 하는 삯꾼이 아닙니다. 그의 최고의 기쁨은 예수님의 복음이 더 많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나와 그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가, 아닌 가를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와 성도가 목사와 목사가 서로를 견제하고, 자신을 더 높이기 위해 경쟁을 합니까?

하지만 바울은 그런 유치한 경쟁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의 기쁨은 오직 복음만 전파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과연 무엇입니까?



살든지 죽든지 (19~21절)

19절에는 원인 접속사 가르 γὰρ, 왜냐하면 이 생략되었습니다. 기뻐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자신이 당한 모든 일이 너희 간구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바울을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원은 무엇일까요? 영적인 구원인가? 석방인가? 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모두 가능하다고 보여집니다.

석방되면 그것도 구원이고, 만일 사형당해도 그 역시 진정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이미 결심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부터 결심한 것입니다(행 23:11).

사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단 한가지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20)입니다.

자신이 살고 죽는 것은 관심 없습니다. 예수님만 영화롭게 되는 것이 사도의 최고의 기대와 소망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21a)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삶의 구원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바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을 통하여, 그분의 통치를 받으며 자신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말합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보이신 삶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우리 삶 속에는 너무나 기타 등등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조금만 나보다 앞서면 질투가 나고, 밉습니다.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나의 감정이 최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옛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불쑥 불쑥 튀어나와 나의 삶을 지배하려 합니다.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관심 없고, 내 자아만 살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만 살기를 구합니다.

내 안에 예수만 빛나면, 나의 죽음조차도 유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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