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4 What good is it, my brothers and sisters, if someone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them?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5 Suppose a brother or a sister is without clothes and daily food.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6 If one of you says to them, “Go in peace; keep warm and well fed,” but does nothing about their physical needs, what good is it?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7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2: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8 But someone will say, “You have faith; I have deeds.”
Show me your faith without deeds, and I will show you my faith by my deeds.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19 You believe that there is one God. Good! Even the demons believe that—and shudder.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0 You foolish person, do you want evidence that faith without deeds is useless?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1 Was not our father Abraham considered righteous for what he did when he offered his son Isaac on the altar?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2 You see that his faith and his actions were working together, and his faith was made complete by what he did.
2: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3 And the scripture was fulfilled that says, “Abraham believed God, and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and he was called God’s friend.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4 You see that a person is considered righteous by what they do and not by faith alone.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5 In the same way, was not even Rahab the prostitute considered righteous for what she did when she gave lodging to the spies and sent them off in a different direction?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6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야고보는 어제 교회론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구원론에 대해 말합니다.
구원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는 신학분야가 구원입니다.
주요 질문은 구원은 어떻게 얻는가? 인데, 이에 대한 답변은 바울로 대표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와 야고보로 대표되는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행득의로 나뉩니다.
믿음은 “말”이 아닙니다(14~18).
야고보의 지대한 관심은 참 믿음, 진짜 믿음, 살아서 꿈틀대며 역사하는 믿음이 무엇이냐 입니다.
야고보가 생각하는 진짜 믿음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14).
사실 말은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야고보도 모르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말만 잘해도 천 냥 빚을 갚고,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이 훈훈해지고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말만으로는 절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예가 15-16절입니다.
입을 것이 없고, 먹을 것이 없는 경우에는 천 마디 말보다 빵 하나, 옷 한 벌이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이처럼 말 만 하는 믿음, 곧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17).
말로만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보여져야 진짜인 것입니다.
믿음은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19~20).
야고보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만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앙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자신의 명저인 기독교강요에서 가장 첫 번째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룹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1권 1장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혜, 즉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모두가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으니,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인간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인간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야 말로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요, 시작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믿음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예로서 마귀를 예로 듭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 잘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순종은 내가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곧,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강력하게 도전합니다!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18b)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허탄한 것입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20).
행함과 믿음은 하나입니다(21-26절).
야고보는 이제 행함이 있는 살아있는 믿음의 예를 성경에서 보여줍니다.
먼저는 아브라함이고, 다음은 기생 라합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창 15:6)하십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벗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그가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였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b)
아브라함이 그냥 하나님 내 마음 아시죠? 사랑합니다~ 하고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 천년 후에 아브라함 자신은 물론 자신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삭을 위해서 예수를 당신의 손으로 직접 잡으실 것인데, 이 마음을 알아줄 진정한 벗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널 위해 내 아들 죽일 테니, 너도 날 위해 네 아들을 희생해봐! 이것이 하나님의 테스트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이려 했고, 하나님이 그를 멈춰 세우시고, 그제서야 그의 믿음을 인정합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몰라서 눈으로 꼭 확인을 하시려고 그러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행위로 구체화될 때 그것이 실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라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믿음의 조상이지만, 라합은 여성이며 이방인이고 거기에다 기생입니다.
도저히 유대인들이 인정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윗 왕의 몇 대손 위 할머니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가 이스라엘, 그것도 다윗과 예수님의 족보까지 오르게 되었을까요?
그녀의 실제적인 믿음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녀의 믿음과 신념에 따라 이스라엘 정탐꾼을 도와주었고, 그들과의 약속을 믿음으로 창문에 붉은 천을 내걸어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그냥 믿는다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목숨 걸고 조국을 배신하는 배신자가 되어가며 정탐꾼을 숨겨 주었습니다.
또한 창문에 붉은 깃발을 걸어두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직접 행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행하는 믿음인데, 그 행함은 바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22절이 바로 그 설명입니다. 그렇습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의 구원(이행득의)은 카톨릭의 행위구원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말씀을 믿기에 믿음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으로서 보이지 않는 믿음을 증거해주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수반합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 곧 구원을 받습니다(24).
사람=육체(만 있으면 시체)+영혼(만 있으면 귀신), 이처럼 참 믿음=믿음+행함(26)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영혼은 행함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26).
마치 영혼이 떠난 육체와 같은 것이 행함 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있는 자입니까? 우리의 매일의 삶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기를 원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