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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 [새벽묵상] 형통한 사람 요셉2 | Prosperous Man, Joseph2 (창/Gen 39:7~23)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7 and after a while his master’s wife took notice of Joseph and said, “Come to bed with me!”

39: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8 But he refused. “With me in charge,” he told her, “my master does not concern himself with anything in the house; everything he owns he has entrusted to my care.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9 No one is greater in this house than I am. My master has withheld nothing from me except you, because you are his wife. How then could I do such a wicked thing and sin against God?”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0 And though she spoke to Joseph day after day, he refused to go to bed with her or even be with her.

39: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1 One day he went into the house to attend to his duties, and none of the household servants was inside.

39: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 두고 밖으로 나가매

12 She caught him by his cloak and said, “Come to bed with me!” But he left his cloak in her hand and ran out of the house.

39: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3 When she saw that he had left his cloak in her hand and had run out of the house,

39:14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4 she called her household servants. “Look,” she said to them, “this Hebrew has been brought to us to make sport of us! He came in here to sleep with me, but I screamed.

39: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5 When he heard me scream for help, he left his cloak beside me and ran out of the house.”

39: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6 She kept his cloak beside her until his master came home.

39: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7 Then she told him this story: “That Hebrew slave you brought us came to me to make sport of me.

39: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8 But as soon as I screamed for help, he left his cloak beside me and ran out of the house.”

39: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19 When his master heard the story his wife told him, saying, “This is how your slave treated me,” he burned with anger.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0 Joseph’s master took him and put him in prison, the place where the king’s prisoners were confined.

But while Joseph was there in the prison,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1 the Lord was with him; he showed him kindness and granted him favor in the eyes of the prison warden.

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2 So the warden put Joseph in charge of all those held in the prison, and he was made responsible for all that was done there.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23 The warden paid no attention to anything under Joseph’s care, because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gave him success in whatever he did.


 


2019년 6월4일, 오전 7시경(한국시간), 충청남도 당진-대전간 고속도로에서 조현병을 앓던 40대 박씨가 1차선 중앙분리대에 바짝 붙어서 12mile(20km)가량을 역주행 하다가 결국에는 마주 오던 차량과 정면충돌 하였고, 박씨는 물론 박씨와 같이 타고 있던 3살짜리 아들도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조현병 약을 끊은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사라졌다는 아내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마주오던 중형승용차 운전자인 여성 최모(29살)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차에는 남겨진 청첩장만이 흐트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그런데 이런 억울한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요셉의 억울함은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연거푸 일어납니다. 그의 답답함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늘도 여전히 그 사람 요셉을 형통한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지하는 사람

모세는 요셉의 외모에 대해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6b)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외모는 하나님의 축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문제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람이 자신이 자랑할 만한 것 때문에 교만할 필요가 없고, 연약한 것 때문에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용모가 뛰어났고, 그 중에서도 머리카락이 자랑 중 자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역에 실패하고 도망가다가 그 무성한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고, 매달린 채로 다윗의 부하 요압의 창에 찔려 죽습니다(삼하 18: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높아질 수 있도록 우리의 연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별로 자랑할 것 없는 사람이나 공동체는 축복받은 것입니다. 오롯이 하나님만 높임을 받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Mrs 보디발입니다.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7) 너무 노골적입니다.

그녀의 이름이 궁금한데,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Waltke는 이에 대해서 그녀에게 조그마한 명예라도 주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말했습니다.

그녀는 귀부인이면서도 전혀 귀부인답지 않은 욕망의 노예였던 것입니다.



스스로 질문해 봅니다. 과연 내가 요셉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외롭고 힘든 이민, 유학, 거기다가 요셉은 더 이상 소망, 희망도 없는 노예의 삶입니다.

한 번만 살짝 눈 감으면 평생 편안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유혹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가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사람에 대한 충정, 의리 때문입니다(9a).

그는 보디발의 신뢰에 대한 의리를 지킵니다. 자신을 믿고 세워준 주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요셉은 명예로운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의리를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도 그렇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 때문입니다(9b).

형통한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인데, 그는 바로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요셉은 매 순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 다 아심, 보고 계심에 대한 망각에서 비롯됩니다. 이찬수 목사님의 말씀대로 성적인 타락은 영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젊은 세대 뿐 아니라 전 세대, 남녀 노소 가리지 않고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유혹이 한 번만이 아닌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10).

하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같이 있지도 않고 그녀를 피했습니다. 죄는 종류에 따라 싸워야 할 것이 있고, 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은 지혜롭게 이것이 피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딤후 2:22)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아무도 없는 그날, 그녀는 더 적극적으로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겉 옷을 벗어 두고 도망합니다. 본문에 (베게드)이라는 단어가 6회나 등장, 형들이 요셉의 옷을 가지고 야곱을 속인 것처럼 이제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가지고 남편과 집안 모든 사람을 속입니다.

이제 요셉은 꼼짝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결백을 외쳐도 공허할 뿐입니다.

요셉은 더 이상 빠져나올 구멍이 없습니다. 요셉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결과가 차디찬 감옥이라면…



“어디에” 보다는 “누구와, 어떻게”의 문제

성경은 우리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때론 안타까운 결과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평소의 요셉을 알고 있는 보디발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보디발이 아내의 말을 듣고 심히 화를 내는 모습(19)이 나오지만, 화를 내는 대상이 불명확합니다.

그리고 요셉을 감옥에 보낸 것은 우리의 추측을 확증해줍니다.

당시에 노예가 주인의 아내를 범하려고 했다면, 죽음 밖에는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너무나 억울한 요셉이지만 그는 다시 일어섭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를 덮습니다. 차디찬 감옥 바닥이지만…

그렇습니다. 사람은 “어디에”, 곧 궁궐, 대궐, 맛집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2 를 보면, 감옥에 갇힌 요셉이 하나님 앞에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배경음악 You know better than I 가사가 다음과 같습니다.

이유를 알고자 하는 욕심도 놓겠습니다, 주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니까요.

설명되지 않는 역경 앞에서 우리가 품어야 하는 질문은 왜? 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할지 물어야 합니다.

때론 이유를 모르는 고난과 역경, 억울함, 눈물, 차디찬 감옥을 주시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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