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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1 [새벽묵상] 르호봇의 은혜 | The Grace of Rehoboth (창/Gen 26:12~22)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2 Isaac planted crops in that land and the same year reaped a hundredfold, because the Lord blessed him.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3 The man became rich, and his wealth continued to grow until he became very wealthy.

26: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4 He had so many flocks and herds and servants that the Philistines envied him.

26: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5 So all the wells that his father’s servants had dug in the time of his father Abraham, the Philistines stopped up, filling them with earth.

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6 Then Abimelek said to Isaac, “Move away from us; you have become too powerful for us.”

26: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7 So Isaac moved away from there and encamped in the Valley of Gerar, where he settled.

26: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8 Isaac reopened the wells that had been dug in the time of his father Abraham, which the Philistines had stopped up after Abraham died, and he gave them the same names his father had given them.

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19 Isaac’s servants dug in the valley and discovered a well of fresh water there.

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0 But the herders of Gerar quarreled with those of Isaac and said, “The water is ours!” So he named the well Esek, because they disputed with him.

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1 Then they dug another well, but they quarreled over that one also; so he named it Sitnah.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2 He moved on from there and dug another well, and no one quarreled over it. He named it Rehoboth, saying, “Now the Lord has given us room and we will flourish in the land.”


 

흉년과 인간의 연약함, 그럼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반복되는 것이 돌고 도는 인생입니다.

크리스천의 특권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 비록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이삭처럼 축복하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날마다 누려야 합니다. 어떻게 이삭은 이 은혜를 누릴 수 있었나요?

그 은혜의 원인은 하나님과 인간,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간 언약의 허무함 (18절)

이삭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족장으로서는 가인(4;2), 노아(9:20)에 이어 3번째입니다.

유목민인 히브리인이 농사를 짓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흉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농사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본문은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12)라고 말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백 배의 분량입니다. 작년에 비해서인지, 블레셋 사람들에 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백 배의 수확을 한 것입니다. 백 배 라는 이 표현은 완전한 축복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저자 모세는 이러한 놀라운 풍년의 원인을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와이바라 케후 에호와)라고 말합니다. 엘로힘(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아닌 야훼를 쓴 이유는 바로 언약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은 종종 등장하지만, 복을 받았다는 기록은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 24:1) 뿐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25:11; 오늘 본문인 26:12에서 이미 두 번이나 복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나타났습니다.

백 배의 수확, 양과 소떼의 증가, 수많은 종들, 결국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로 작정하면 흉년이 든 땅에서도 얼마든지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하심이 그 분의 축복하심에 핵심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축복이 모든 어려움을 없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많은 물질과 재산은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를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삭의 우물을 막고 메운 후, 그를 그랄 땅에서 내쫓습니다.

이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우물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맺은 언약이고 약속(18)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창 21:29-31)


오히려 아비멜렉이 자신의 자손들을 걱정하여 우호 조약을 맺고, 우물을 아브라함의 것으로 인정한 언약의 우물이었습니다. 브엘세바의 뜻은 맹세의 우물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비멜렉(아마도 아들이거나 다른 왕조)이 그 언약을 깨고, 잊고, 이삭을 추방한 것입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판단을 하고, 남이 잘되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인간의 약속이 얼마나 허무한지요? 그래서 교회 내에서 동업이나 친한 사람끼리의 동업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언약의 신실함 (22절)

이삭은 참으로 연약해 보이는 족장이었고, 아버지의 죄악을 반복하는 답답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번이나 양보합니다.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분량도 가장 적습니다. 이삭만의 기사는 26장 밖에는 없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순히 죽임 당하는 모습(22장)이나, 오늘 본문에서 그냥 쫓겨나는 모습 등등

그래서 이삭을 지적 장애를 가진 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답답할 정도의 양보하는 연약한 이삭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랄 골짜기로 쫓겨난 이삭은 아버지의 옛 우물 브엘세바를 다시 파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샘의 근원 (마임 하임, 살아있는 물)을 얻습니다. 이것은 수고로이 길어야 하는 우물이 아닌 넘쳐나는 샘물입니다.



하지만 그랄 목자들이 시비를 걸어 다투게 되고, 그 우물을 다툼이라는 의미로 에섹(20)이라 부릅니다.

두 번째 얻은 우물로 다시 다투자 사탄(대적하는 자)과 어원이 같은 말인 싯나(21)라고 부릅니다.

지중해 연안에서 좀 더 내륙으로 들어간 위치인, 브엘세바에서 남서쪽으로 20마일 정도 와디 루헤베

에서도 우물을 파고 물을 얻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 땅이라 주장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

이삭은 넓은 곳이라는 의미로 르호봇(22)이라고 부릅니다.

사탄은 우리를 공격하여 축복의 땅에서 떠나도록 유도합니다. 하지만 이삭의 고백(믿음)처럼 하나님은 그가 가는 곳마다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가는 곳마다 우물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는 다른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입니다.

이삭의 본문의 사건(17-22절)은 이스라엘의 미래 이야기였습니다.

모세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의 시점에서는 이삭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입장과 닮았습니다.

물을 얻기가 힘든 광야에서 가는 곳마다 언약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물을 주십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 엘림, 므리바의 사건을 겪었습니다(출 15:22-27; 17:1-7).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붙잡아야 하는 것은 샘물이 아니라,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삭은 우리에게 그리 큰 임팩트를 주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과 땅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받아 누린 자입니다. 그 모든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더 인간적인 측면에서 비결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수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 임이요(마 5:5)라고 해석해 주셨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근원이 하나님임을 믿고 다투지 않으며 온유함을 갖는 자는 이삭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 곧 번성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고든 웬함은 오늘 본문의 주석을 시편 37편으로 대신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3절)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1절)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29절)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39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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