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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9 [새벽묵상] 두 종류의 길 | Two Types of Paths (창/Gen 4:16~26)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6 Then Cain went away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settled in the land of Nod, east of Eden.

4: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7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ore Enoch. When he built a city, he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4: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8 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fathered Mehujael, and Mehujael fathered Methushael, and Methushael fathered Lamech.

4: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19 And Lamech took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4: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0 Adah bo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ose who dwell in tents and have livestock.

4: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1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all those who play the lyre and pipe.

4: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2 Zillah also bore Tubal-cain; he was the forger of all instruments of bronze and iron.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3 Lamech said 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ou wives of Lamech, listen to what I say:

I have killed a man for wounding me,

a young man for striking me.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24 If Cain's revenge is sevenfold,

then Lamech's is seventy-sevenfold.”

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5 And Adam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ore a son and called his name Seth, for she said, “God has appointed for me another offspring instead of Abel, for Cain killed him.”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26 To Seth also a son was bor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At that time people began to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지난 주일 팬데믹 이후 2년만에 Family Movie Night을 했습니다.

주일 저녁 상영한 영화는 댄젤 워싱턴이라는 유명한 배우가 주연을 한 리멤버 타이탄 Remember The Titans이라는 고등학교 풋볼을 통한 백인과 흑인이 하나가 되는 감동적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교회에서 세상 영화를 보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요?

이 질문을 확대하면 크리스천은 세상 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예일대 교수이며 기독교윤리 학자 리차드 니버 Helmut Richard Niebuhr(1894~1962)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5가지 유형을 제시했습니다.[1]선택은 자유이지만 어떤 관계를 선택하든지 우리는 문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소위 문화명령을 주셨습니다.[2]



가인의 후손

오늘 본문은 적어도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류 문명의 출발에 대한 단초를 제공합니다.

가인의 후손에게서 최초의 도시, 목축업, 예술 문화, 대장장이가 시작되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학자들에 따라서는 사법제도까지 시작되었다는 주장하기도 합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타락한 자손인 가인의 후손에게서 문명, 문화가 출발하다니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 문화에 대해서 어떠한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에덴의 동쪽이라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소설에서 에덴의 동쪽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멀어진 상태의 공간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 가인은 에덴의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랑이라는 의미의 땅 에 자신의 삶의 터전을 펼칩니다.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유리하고 방황하는 인생의 저주와 동시에 안전의 표를 제공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을 쌓았습니다. 성은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수단으로,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무시하거나 신뢰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인은 성의 이름을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시작하다)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악인들의 특징에 대해서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시 49:11)


최초의 살인자였던 가인은 최초의 도시 문화를 시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인의 7대에 걸친 10명의 자손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존재가 라멕입니다. 그는 자녀가 4명이 있었는데, 야발은 축산업의 선구자, 유발은 음악을 하는 자들의 조상, 두발가인은 대장장이였습니다. 그리고 나아마는 구약 족보에 나오는 유일한 여자입니다.



라맥은 매우 특이한 인물입니다. 23~24절을 소위 라멕의 노래Song of sword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아들 두발가인의 노력으로 날카로운 칼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노래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내가 아다(아름다움, 장식품)와 씰라(그림자, 보호, 딸랑딸랑 울리다) 두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 제도를 망가뜨린 첫 번째 가정제도 파괴 사건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아내들에게 상처(상함)로 인하여 소년을 죽였다고 자랑합니다. 그는 매우 잔인한 사람이고 동시에 매우 교만한 사람(24)이었습니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삶은 화려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 문명은 화려하고 보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온통 마음과 생각이 먹고 놀고 사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고, 모든 삶의 중심이 자신을 높이는 것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셋의 후손

하지만 하나님은 가인과는 구별된 거룩한 자손을 이루어 가십니다. 히브리 원문(영어 성경도)은 의 이름을 하와가 지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벨 대신에 씨를 주심에 대해 감사(25)하며, 새로운 세상을 위한 바탕을 놓아주셨다는 의미로 셋(바탕)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어서 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부르는데, 창세기에서 지금까지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녀의 이름을 지은 경우입니다.

본문은 그 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26)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배와 관련된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예배가 있었지만 에노스의 시대에 이르러서 좀 더 문화적이고 형식적인 예배의 형태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에노스 이름의 뜻은 사람, 연약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참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크신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자여야 합니다. 미국 30대 대통령 존 캘빈 쿨리지 John Calvin Coolidge, Jr. 는 인간은 예배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성장한다 고 말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의식주, 자아실현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문해 봅시다. 나는 세상 문화를 즐기고 누리고 모든 생각이 자기중심적인 가인의 후손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마음을 다하는 거룩한 자손, 셋의 후손인가?!

오늘 세상을 바라보면 엄청난 문화의 파도에 우리는 압도되는 것을 느낍니다. 마치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문화의 파도는 순식간에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거룩한 셋의 후손인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구별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인의 후손의 문화가 화려하고 휘황찬란하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끌어 오셨음을 봅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상대의 피를 흘리고, 짓밟음으로 문명을 이루어 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서로의 피를 흘리면서 경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가 서로의 피를 흘린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피를 이 땅에 쏟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믿고 고백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모든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문명 가운데 살고 누리면서 문명을 다스리는 것은 오직 예배자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예배자의 길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리기를 소망합니다.

[1]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 : 양자 택일, 문화의 그리스도 : 일치 문화 위에 그리스도 : 차이는 인정, 통일성 안에서 일치 시키려는 시도, 토마스 아퀴나스 역설적인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문화 : 그리스도와 문화의 대립 가운데 양극에 순종, 루터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 개변주의자, 문화와 대립되는 부분, 문화 안에서 변화 시도, 어거스틴, 존 칼빈 [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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