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5 But someone will ask, “How are the dead raised? With what kind of body will they come?”
15: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6 How foolish! What you sow does not come to life unless it dies.
15: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7 When you sow, you do not plant the body that will be, but just a seed, perhaps of wheat or of something else.
15: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8 But God gives it a body as he has determined, and to each kind of seed he gives its own body.
15: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39 Not all flesh is the same: People have one kind of flesh, animals have another, birds another and fish another.
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0 There are also heavenly bodies and there are earthly bodies; but the splendor of the heavenly bodies is one kind, and the splendor of the earthly bodies is another.
15: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1 The sun has one kind of splendor, the moon another and the stars another; and star differs from star in splendor.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2 So will it be with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he body that is sown is perishable, it is raised imperishable;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it is sown in dishonor, it is raised in glory; it is sown in weakness, it is raised in power;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4 it is sown a natural body, it is raised a spiritual body.
If there is a natural body, there is also a spiritual body.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5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f];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6 The spiritual did not come first, but the natural, and after that the spiritual.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7 The first man was of the dust of the earth; the second man is of heaven.
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8 As was the earthly man, so are those who are of the earth; and as is the heavenly man, so also are those who are of heaven.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49 And just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earthly man, so shall we[g]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man.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속한 각 문화의 방법으로 장례를 합니다.
티벳 사람들 역시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하는데, 그들의 장례 방식을 천장(天葬)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말로는 조장(鳥葬)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티벳에서 가장 보편적인 장례라고 합니다.
티벳인들은 윤회사상을 깊이 믿기 때문에, 사람이 죽은 후 시신을 신성한 독수리가 먹어 치우면, 바로 승천하거나 아니면 부귀한 집안에 잉태되어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티벳 각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천장의 문화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것은 일반적인 문화에서 장의사에 해당하는 천장사(天葬師)인 돔덴Domden이 돌아가신 분의 몸을 먼저 분해하고, 그것을 독수리 밥으로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장사 본인은 하층인의 속하기 때문에, 죽어서 천장을 못하고 수장(水葬)을 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문화 속에서 다양한 장례의 방법이 있지만, 어떠한 방법의 장례이든지 육체는 썩어 흙이 되는 결과는 동일합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사라져버리는 육신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도 부활과 천국에 대한 오해를 하는 것이 육체의 부활입니다.
천국은 영적인 곳이기에 육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가? (35-41절)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부활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 답합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35)
이것은 두가지 질문입니다.
먼저는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는가? 살아난다면 어떤 몸을 갖는가?
바울은 순서대로 답변을 합니다. 먼저 어떻게 사라져 버린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 뜻대로(38) 입니다.
사실 부활에 관한 과학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바울은 천지의 창조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부활 역시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부활에 관한 지식은 어찌 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육체에는 하나님의 심어 놓으신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그의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38)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천지창조를 통해서 이미 드러난 바입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육체를 가진 동물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각 인간과 동물들은 각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양한 육체, 곧 사람, 짐승, 새, 물고기 등의 다양한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 짐승, 새, 물고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육체를 가진 모든 생명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뿐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만드신 바 우주의 해, 달, 별 역시도 하늘에 속한 형체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고유의 영광을 누린다고 말합니다(41).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형체와 다양한 종류의 영광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속한 영광과 땅에 속한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40).
이에 대해서 어떤 학자들은 41절과 연관하여 우주의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하늘에 속한 영광이라고 해석합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하늘에 속한 영광은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차원의 속한 존재의 영광으로 해석하는 후자의 의견에 좀더 마음이 쏠립니다.
한마디로 다양한 종류의 육체와 영광이 있지만, 그 가운데 다른 차원의 영광이 있는데 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이 죽음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부활로 가는 필수적인 코스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씨에 비유합니다. 마치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새로운 차원의 식물로 자라나듯, 우리의 육체 역시 죽어야 새로운 차원의 육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몸으로 살아나는가? (42-49절)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도 씨앗의 원리와 같다고 말합니다(42).
이 부분에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설명한 죽음은 매우 잘 맞아 떨어집니다.
누에고치가 죽고, 탈피해야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누에가 나비가 되는 유일한 길은 죽음 밖에는 없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육체를 입는 비결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은 이후 부활을 하면서 입을 육체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보여주신 육체인 소위 부활체입니다.
이 부활체는 시공간에 존재하고, 물질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볼 수도 만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신비한 차원의 것입니다. 마치 누에고치의 상태에 있을 때는 전혀 누릴 수 없는 것을 나비가 되어 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몸이 현재 우리의 육체를 말하는 동일한 의미의 다양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썩지 않을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신령한 몸이 부활후에 우리가 가지게 될 새로운 육체에 대한 설명입니다(43~44).
육의 몸이 있듯이 나중에 부활하는 자들은 새로운 차원의 몸, 곧 영의 몸인 영체 또는 부활체를 입을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첫 사람 아담(생령, 육의 사람, 흙에 속한 자)에게 속한 자로서 육신을 지니게 된 것처럼,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살려주는 영이 되었습니다(45).
바울은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46)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고린도교인들의 생각을 바로잡아주는 것으로, 플라톤의 영적인 것이 먼저이고, 육적인 현재의 것은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이원론적인 사고에 대한 교정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 기독교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구분하지만, 결코 어느 하나를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신앙 생활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에 대해서 구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뜻대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주신 것은 모든 것이 선하고 귀한 것입니다. 심지어 죄로 인하여 타락한 육체와 세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새롭게 하시고, 심지어 우리의 육체는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하여 부활합니다.
늙는 다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책상위에 먹는 약통이 늘어나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자고 나면 아픈 곳이 늘어나는 것이 늙는 것이고, 결국 그 끝은 죽음입니다.
비록 현재는 질병이 가득하고, 온전하지 못한 현재의 육체를 입고 날마다 전쟁하듯 살아가지만,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은 비로소 온전한 육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생각만해도 신나는 일입니다.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는 그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아이고 허리야 를 외치며 힘을 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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