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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6 [새벽묵상] 나는 날마다 죽노라 | I Face Death Everyday (고전/1Cor 15:20~34)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0 But Christ has indeed been raised from the dead, the first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15: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1 For since death came through a man,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comes also through a man.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2 For as in Adam all die, so in Christ all will be made alive.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3 But each in turn: Christ, the firstfruits; then, when he comes, those who belong to him.

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4 Then the end will come, when he hands over the kingdom to God the Father after he has destroyed all dominion, authority and power.

15: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5 For he must reign until he has put all his enemies under his feet.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6 The last enemy to be destroyed is death.

15: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7 For he “has put everything under his feet.” Now when it says that “everything” has been put under him, it is clear that this does not include God himself, who put everything under Christ.

15: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8 When he has done this, then the Son himself will be made subject to him who put everything under him, so that God may be all in all.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29 Now if there is no resurrection, what will those do who are baptized for the dead? If the dead are not raised at all, why are people baptized for them?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0 And as for us, why do we endanger ourselves every hour?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1 I face death every day—yes, just as surely as I boast about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15: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2 If I fought wild beasts in Ephesus with no more than human hopes, what have I gained? If the dead are not raised,

“Let us eat and drink,

for tomorrow we die.”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3 Do not be misled: “Bad company corrupts good character.”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34 Come back to your senses as you ought, and stop sinning; for there are some who are ignorant of God—I say this to your shame.


 


미국 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로 죽음과 임종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veth Kubler-Ross는 그녀의 책 사후생on life after death에서 임사체험을 했던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이 죽음을 통해서 고치와 같은 육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 자신이 온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임사체험을 했던, 곧 죽었다 살아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이생에서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을 했거나, 사지가 절단되었거나, 말을 못하거나, 암으로 유방을 절제했던 것과 상관없이 죽음 이후에는 모두 자신의 모습이 온전해지는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고치와 같은 육체를 벗어나는 순간 육체의 상태와는 상관없는 온전한 모습을 갖는다는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고통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고, 오히려 이 땅에서 연약했던 육체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경험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단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마지막 최후 심판의 날에는 모든 사람이 육체의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수도 없이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첫 열매 (20~28절)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으로, 앞선 12~14장에서 은사에 대해서 말한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에 관해서 논합니다. 당시 고린도교인들 가운데에는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1~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부활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12~19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성도들의 부활의 당위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들의 부활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 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역사적으로 부활하신 것과 성도들의 궁극적인 소망인 부활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스라엘이 말하는 첫 열매는 추수 때에 첫 수확의 열매를 드리는 것으로 모든 수확에 대한 대표성 갖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모든 성도들의 궁극적인 소망인 육체의 부활의 증거요, 그 처음 시작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처럼 육체의 부활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태초에 아담 한사람으로 인하여 사망이 온 인류에 들어오고, 그 맹위를 떨쳤던 것처럼,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 한분으로 말미암아 부활, 곧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말입니다(21~22).

한편 부활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이미 과거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입니다(23).

여기서 강림은 헬라어로 파루시아 παρουσίᾳ 로, 당시 황제가 어느 도시에 방문할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다음으로 부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24)를 불신자들의 부활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확한 번역은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이니 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성도들이 부활하면 그 다음에는 이 세상의 완전한 종말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마지막 재림의 때, 사망의 권세가 완전히 파멸하기까지 왕 노릇 하시며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만물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하게 될 그 때에, 성자는 모든 나라와 권세를 아버지께 바치고 자신 역시 아버지께 스스로 종속될 것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 방식이며, 만물의 창조주로서 만유안에 함께 하시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부활의 당위성 (29~34절)

바울은 당시 실제 있었던 죽은 자들을 위한 세례를 언급하며 부활의 당위성을 말합니다(29).

사실 이 구절은 굉장한 난해구절 중 하나입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기록에 의하면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자가 있으면, 그를 침상에 누이고 그 아래 어떤 사람이 들어가 그를 대신하여 세례 문답을 하고 대신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오늘날 신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혀 신학이 정립되지 못한 상황이었고, 바울 역시 이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활이 없다면 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 없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29).

마치 사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것과 마차가지로 말입니다(30).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매일 먹고 마시면 됩니다(32).



사실 우상숭배와 이방인들의 관습이 무성한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나는 날마다 죽노라(31)고 고백합니다. 에베소에서처럼 날마다 죽을 각오로 복음을 전했고,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중심에는 부활에 대한 소망 밖에는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다그칩니다.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속지말라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는 자는 악한 자들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은 현재 나의 삶을 붙들어 줍니다.

오늘은 메시지 성경(32~33절)으로 결론을 맺기를 원합니다.


내가 행하고 말하는 것, 내가 사는 방식을 뒷받침하는 것은 부활, 부활, 언제나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부활을 반대하는 잡담에 물들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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