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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7 [새벽묵상] 한 성령과 다양한 은사 | One Spirit, Many Gifts (고전/1Cor 12:1~11)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1 Now about the gifts of the Spirit, brothers and sisters, I do not want you to be uninformed.

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2 You know that when you were pagans, somehow or other you were influenced and led astray to mute idols.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3 Therefore I want you to know that no one who is speaking by the Spirit of God says, “Jesus be cursed,”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4 There are different kinds of gifts, but the same Spirit distributes them.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5 There are different kinds of service, but the same Lord.

12: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6 There are different kinds of working, but in all of them and in everyone it is the same God at work.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7 Now to each one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is given for the common good.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8 To one there is given through the Spirit a message of wisdom, to another a message of knowledge by means of the same Spirit,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9 to another faith by the same Spirit, to another gifts of healing by that one Spirit,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0 to another miraculous powers, to another prophecy, to another distinguishing between spirits, to another speaking in different kinds of tongues, and to still another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1 All these are the work of one and the same Spirit, and he distributes them to each one, just as he determines.


 


한 때 한국기독교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기독교를 휩쓸었던 빈 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 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빈야드 교회의 창시자인 존 윔버 John. Wimber가 이끄는 제3의 물결 또는 토론토 축복 등으로 불리는 성령 운동으로 오순절 계통의 은사주의 운동입니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신사도운동으로 영어로는 New Apostolic Reformation(새로운 사도적 개혁) 혹은 New Apostolic Movement(새로운 사도적 운동)라고 합니다. 미국 언론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 Charismatic Christianity, Charismatic Movement 도 결국 같은 의미입니다.



이 은사주의자들은 성경적 계시가 완성된 오늘날에도 소위 직통 계시를 주장하고, 여전히 사도 직분이 존재한다는 비성경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또한 이상한 방언들, 예를 들자면 마구 웃는 것이나 짐승의 소리를 내는 것을 방언 기도라고 합니다.

한 때 한국기독교도 이것에 현혹되어 많이 흔들렸던 적이 있습니다.

은사의 문제는 영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다뤄야 합니다.

이제까지 고린도 교회에서 벌어진 여성들의 두건문제와 성찬의 문제에 대해 교훈 한 바울은 12장부터 14장까지는 또 다른 문제인 은사의 문제를 다룹니다.



영적인 세계를 분별하라 (1~3절)

바울은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1) 라고 운을 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령한 것πνευματικῶν(프뉴마티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신령한 자 라고 해석하지만, 존 칼빈이나 마틴 루터, 렌스키는 은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결국 신령한 것이란 영적인 세계, 영적인 것, 은사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믿기 전 형편은 말 못하는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 다녔습니다(2).

이것은 마치 현대인들이 점쟁이를 찾아가 그가 말하는 거짓이나, 귀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최첨단공장을 지으면서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형편은 바뀌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그들 가운데 내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내주하는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예수를 저주할 자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가 나의 구주이십니다! 라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3).



바울은 성령이 내주하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두 가지 개념을 대조하며, 그 차이점을 극대화합니다.

먼저 저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Αναθεμα 아나테마입니다.

그 본래 의미는 신에게 드려진 자 라는 의미인데, 나중에는 저주받은 자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내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아나타메 예수스 Αναθεμα ΙΗΣΟΥΣ, 곧 저주받은 예수입니다. 하지만 성령이 내주하는 자에게 예수는 퀴리우스 예수스 Κυριος ΙΗΣΟΥΣ, 곧 주 예수입니다.

결국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는 예수를 볼 때 하나님께 저주받아 나무에 달려 죽은 자가 아닌,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나의 구주로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내주하는 자의 특징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만이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은 모두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 없이, 곧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지 않고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성령의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지 않는 자는 거짓입니다.

바울은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은사의 다양함 (4~11절)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거짓의 영들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자칭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흥분과 망상에 빠져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은사가 더 우위에 있다고 자랑하는 코미디를 했습니다. 마치 현대의 은사주의자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12장에서 은사에 대하여 교육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은사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은사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사를 말하는 12장에서 14장 사이에, 소위 사랑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은사는 먼저 한 아버지, 한 주님, 한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각 개인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4~7).

그러므로 은사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유치하고, 의미 없는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지식의 말씀을, 믿음을, 병 고치는 은사를, 능력 행함을, 예언함을, 영들 분별함을, 각종 방언 말함을, 방언들 통역함을 주십니다(8~10).

하지만 이 모든 은사는 한 성령이 행하시는 역사이며,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교할 필요도 없고, 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그것으로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식사 대접을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면서 마음이 바쁩니다. 그런데 자신을 돕지 않고 예수님 발치에 남자들과 앉아 말씀 공부만 하는 마리아가 너무 얄미워서 예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누가복음 10:41~42절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은사를 비교하여 자랑하지도, 기죽지도 맙시다. 한 성령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내게 주신 것이 가장 내게 귀한 것이고, 우리 공동체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절대로 빼앗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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