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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6 [새벽묵상] 서로 기다리라 | Wait For Each other (고전/1Cor 11:27~34)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7 So then, whoever eats the bread or drinks the cup of the Lord in an unworthy manner will be guilty of sinning against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8 Everyone ought to examine themselves before they eat of the bread and drink from the cup.

11: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29 For those who eat and drink without discerning the body of Christ eat and drink judgment on themselves.

11: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0 That is why many among you are weak and sick, and a number of you have fallen asleep.

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1 But if we were more discerning with regard to ourselves, we would not come under such judgment.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2 Nevertheless, when we are judged in this way by the Lord, we are being disciplined so that we will not be finally condemned with the world.

11: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3 So then, my brothers and sisters, when you gather to eat, you should all eat together.

11: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34 Anyone who is hungry should eat something at home, so that when you meet together it may not result in judgment.

And when I come I will give further directions.


 


오늘은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어제(5/24, 화) 텍사스주 유밸디Uvalde의 롭 초등학교Robb Elementary에서 총기사건이 일어나 한 교실에 있던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살해되는 너무도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지난 5월 18일, 18세 생일이 지나 갓 성년이 된 샐버도르 라모스Salvador Ramos입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친할머니를 권총으로 살해하고 인근 초등학교로 옮겨 범행을 저질렀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사살되었습니다.

이에 전 미국이 충격에 빠졌고, 바이든 대통령은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강력한 총기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안전하고 적절한 총기 규제는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총을 자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에만 벌어지는 일일까요?

이러한 사건을 접근하는 방법에 조금 놀랍니다. 바로 총기규제와 정치적인 문제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린아이가 19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라모스의 속내입니다. 부모와 친구들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꽃다운 나이의 청소년이 왜 이런 끔찍한 짓을 벌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그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역시 제가 예상한대로 그는 말을 더듬는 문제로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의 가정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것이 없지만, 분명히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가 마약 중독자라는 뉴스가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아픔과 상처, 따돌림이 다시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자식 하나만 잘 키우면 된다는 좁고 이기적인 생각은 빨리 버려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총기 규제도 하고, 또한 더 근본적인 해결책인 가정의 순기능 회복, 그리고 공교육에서는 돈 벌고 성공하는 기술이 아닌 인성 교육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른 성찬 (27~29절)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우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유기적인 관계는 성찬이라는 예식을 통해서 더욱 드러나고, 강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유익해야 할 성찬의 모임이 오히려 잘못된 모임, 해로운 모임으로 전락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는 모이지 않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올바른 성찬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올바르지 못한 성찬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그러면 제대로 된 성찬은 어떤 것일까요?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27)과 사람이 자기를 살피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28), 그리고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것(29)은 모두 올바르지 못한 성찬의 자세를 말합니다.

합당하지 않고, 살피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것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할까요?

회개하지 않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것, 믿음이 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 자기 성찰이 없는 것,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감사가 없는 것 등등 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합니다.



개인적으로 앞서 열거한 모든 것이 합당하지 않고, 살피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경우에는 연약한 형제들에게 대한 배려가 없이 끼리끼리 먹고 마시는 경우입니다.

그들은 이 신성한 주의 만찬을 이방인들이 먹고 마시는 유치한 축제의 수준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바른 성찬은 자신의 죄를 살피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고 감사하며,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기뻐하는 금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 58:6)

금식의 행위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형제와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묶고 있는 것이 있으면 풀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성찬은 연약한 형제를 배려하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서로 기다리라 (30~34절)

바울은 잘못된 성찬을 행한 결과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들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 곧 죽은 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30)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성찬의 죄를 지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만일 스스로 살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은혜로운 단어는 우리(31) 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연약한 모습 속에 자신을 포함합니다. 일방적인 비난이 아닙니다.

사랑의 충고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살폈다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판단, 곧 징계는 결코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한 은혜가 징계입니다. 징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만 한다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곧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결론적 권면을 합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33)

그것이 성찬이든, 애찬이든 서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만일 배고파서 못 참을 것 같으면 집에서 먼저 요기를 하고 오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교회에서 너무 음식이나 선물에 욕심을 내는 모습은 결코 은혜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기다리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주의 만찬의 정신이고, 천국 식탁의 원리입니다.

서로 더 사랑합시다. 내가 친한 사람, 끼리 끼리만이 아닌 모두를 사랑하며,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도 언제라도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합시다. 우리 가족, 우리 친구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모두가 함께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은혜를 구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19명의 아이들과 2명의 선생님,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라모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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