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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8 [새벽묵상] 자유와 권리의 노예가 될 것인가? | Will You be Slaves to Freedom and Rights? (고전/1Cor 9:1~12)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1 Am I not free? Am I not an apostle? Have I not seen Jesus our Lord? Are you not the result of my work in the Lord?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2 Even though I may not be an apostle to others, surely I am to you! For you are the seal of my apostleship in the Lord.

9: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3 This is my defense to those who sit in judgment on me.

9: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4 Don’t we have the right to food and drink?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5 Don’t we have the right to take a believing wife along with us, as do the other apostles and the Lord’s brothers and Cephas?

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6 Or is it only I and Barnabas who lack the right to not work for a living?

9: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7 Who serves as a soldier at his own expense? Who plants a vineyard and does not eat its grapes? Who tends a flock and does not drink the milk?

9: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8 Do I say this merely on human authority? Doesn’t the Law say the same thing?

9: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9 For it i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Do not muzzle an ox while it is treading out the grain.” Is it about oxen that God is concerned?

9: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0 Surely he says this for us, doesn’t he? Yes, this was written for us, because whoever plows and threshes should be able to do so in the hope of sharing in the harvest.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1 If we have sown spiritual seed among you, is it too much if we reap a material harvest from you?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2 If others have this right of support from you, shouldn’t we have it all the more?

But we did not use this right. On the contrary, we put up with anything rather than hinder the gospel of Christ.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 5:13~14)


이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은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도전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처럼 지극히 작은 지식을 가지고 자신이 누려야할 자유와 권리의 노예가 되어서, 자신의 육체의 즐거움을 누리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그 자유로 스스로 종 노릇하는 사랑의 종이 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고민이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소위 권리포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도로서 권리 (1~10절)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며 동시에 사도임을 말합니다.

바울은 항상 서신서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많아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사도직에 대한 도전이 유난히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개척하여 1년반이나 수고하여 세운 고린도교회 만큼은 그런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1b)라고 강하게 질문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 친 것이 너희라(2)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도전한다 하더라도 고린도 교인들 만큼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사도됨을 증거하는 열매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사도 바울을 부정하면 그것은 자신들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자녀가 낳아 주신 부모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향하여 자신을 변호합니다(3). 구체적으로 대적자들이 공격한 것은 바울의 사도권과 연관하여 그가 다른 사도처럼 권리를 누리지 않는 것을 오히려 비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몇 가지 권리를 주장합니다.



먼저는 먹고 마실 권리입니다.

이것은 의식주와 관련된 전반적인 권리입니다.

생계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성도들로부터 당연히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권리입니다.

성경에는 베드로가 아내가 있었음에 대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의 장모의 병을 고친 사건입니다(마 8:14).

바울이 앞서 말한 것처럼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바울 역시 결혼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동하지 않고 전도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사역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경비를 얼마든지 교회로부터 선교비로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생업을 병행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자비량 선교사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군 복무하는 병사가 나라로부터 녹을 받는 것과 포도를 심고 농부가 그 열매를 누리는 것, 그리고 목자가 양 떼를 돌보며 그 젖을 얻는(7) 일상의 삶에서의 메타포를 사용하여 앞에서 열거한 권리들이 자신이 사도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임을 주장합니다.

또한 사도는 일상의 예뿐 아니라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신명기 25:4을 인용한 것입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신 25:4)



모세의 이 율법은 사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자들을 위한 율법입니다.

농부나 소는 곡식에 대한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밭을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사도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같은 소망을 가지고 일을 시키시고, 일을 하는 것이라는 완벽한 주장입니다.


권리포기 (11~12절)

영지주의자들은 항상 영적인 것이 육적인 것에 비해 우월하다고 말하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을 따르는 대적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령한 복음을 제공한 바울은 얼마든지 그들에게서 육적인 것, 곧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11).

바울의 주장대로 율법과 일반적인 삶의 원리도 바울의 이러한 권리를 지지합니다.

또한 아볼로와 같은 고린도교회 사역자는 이미 그러한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물며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바울이 마땅히 그것들을 누릴 권리가 없겠습니까?



당연히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런 오해와 무시를 받으면서도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자격이 없고, 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이 권리를 쓰지 않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12)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자세는 성도들에게 참으로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평신도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지만, 목회자들에게는 더 큰 깨우침을 줍니다. 사역자는 자신의 자유의 지식을 근거로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자유로 사랑의 종 노릇을 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나의 자유와 권리와 유익을 누리기 위한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깨닫는 자가 진짜 자유인입니다.

바울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주신 자유로 서로 사랑의 종 노릇 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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