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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0 [새벽묵상] 아비의 마음 | Father's Heart (고전/1Cor 4:9~21)



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9 For it seems to me that God has put us apostles on display at the end of the procession, like those condemned to die in the arena. We have been made a spectacle to the whole universe, to angels as well as to human beings.

4:10 우리는 그리스도의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0 We are fools for Christ, but you are so wise in Christ! We are weak, but you are strong! You are honored, we are dishonored!

4: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1 To this very hour we go hungry and thirsty, we are in rags, we are brutally treated, we are homeless.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2 We work hard with our own hands. When we are cursed, we bless; when we are persecuted, we endure it;

4: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3 when we are slandered, we answer kindly. We have become the scum of the earth, the garbage of the world—right up to this moment.

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4 I am writing this not to shame you but to warn you as my dear children.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15 Even if you had ten thousand guardians in Christ, you do not have many fathers, for in Christ Jesus I became your father through the gospel.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6 Therefore I urge you to imitate me.

4: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7 For this reason I have sent to you Timothy, my son whom I love, who is faithful in the Lord. He will remind you of my way of life in Christ Jesus, which agrees with what I teach everywhere in every church.

4: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8 Some of you have become arrogant, as if I were not coming to you.

4: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으니

19 But I will come to you very soon, if the Lord is willing, and then I will find out not only how these arrogant people are talking, but what power they have.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0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talk but of power.

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21 What do you prefer? Shall I come to you with a rod of discipline, or shall I come in love and with a gentle spirit?


 

주일에 교회에 온 성도들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렇게도 부모를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처음보는 분들도 짝 맞추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이 부모님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타인이 보는 우리 가정도 그렇겠지요? 외모 뿐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도 부모님을 닮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법칙인가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도 있고, 또 상당 부분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소위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지만, 육신의 부모 자녀의 관계에서만큼 아버지를 닮지는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날마다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이 성화의 과정이고,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우리와 너희의 대조 (9~13절)

바울은 사도들의 형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가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9)

마지막 시대에 사도들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표현은 바로 앞선 3장에서 언급한 고린도교인들과 대조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사도들을 우리라고 표현하고, 고린도 교인들을 너희라고 지칭하여 3가지를 대조합니다(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다.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다.

우리는 비천하나, 너희는 존귀하다.


바울은 이어서 계속하여 사도들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친히 손으로 일하고, 모욕을 당해도 축복하고, 박해를 받아도 참고, 비방을 받지만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사도들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여겼습니다(11~1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좁은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또한 무저항주의로 어떤 박해가 있어도 참는 자들입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도들과는 대조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은 그러한 사도들을 우습게 여기며 판단하고, 자신들이 가장 똑똑하고 지혜로운 왕처럼 행동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대조적으로 비교하여, 그들 스스로 깨닫기를 원한 것입니다.



아비의 마음 (14~21절)

하지만 바울이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주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바울이 이런 글을 쓰는 동기는 바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낳은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에 그들을 흔드는 소수의 거짓 교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스승인 척하지만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영적인 아비입니다. 일만 스승이 있어도, 한 아버지만 못합니다. 그래서 아비인 사도 바울은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16)고 강력하게 권면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바울은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에 있어서는 당당하게 자신을 본 받을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머무는 한 그를 본받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자훈련이나 목회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목사가 목회나 제자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제자들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제자라는 것은 자신의 철학을 따르는 제자가 아니라, 성경 말씀에 기초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철학을 따르는 제자를 양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은 담임목사나 사역자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부끄러움 없이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는 신앙과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디모데를 파송합니다. 그리고 설마 바울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경고합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이르러 그들의 말이 아닌 능력을 시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어떤 기적이나 이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John Calvin은 이 능력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으로 변화된 품성, 새 사람으로서의 옛 사람을 벗어버린 의와 거룩함과 화평을 이루는 실제적인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은 거룩한 삶의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역자,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마치 인 것처럼 보여집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녀에게 갑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와싱턴사귐의 교회 김영봉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목회직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목회자는 늘 을의 입장에 서게 되어 있다. 권위주의적 경향이 강한 한국 교회에서는 목사가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교회 문화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증명한다. 교회에서 목사는 을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교인들의 영혼을 진실하게 위하는 목회자라면 기꺼이 을의 위치에 선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Vulnerability(취약성)를 꼽는다. 이 단어에 해당하는 우리말 번역어가 마땅치 않다. 나는 '을의 위치에 서는 것'이라고 번역한다. 자신을 낮추어 교인들의 필요를 위해 섬기는 자세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언제나 을의 위치에 서있는 것, 이것이 크리스천에게 필요한 아비의 마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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