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3 “You have spoken arrogantly against me,” says the Lord.
“Yet you ask, ‘What have we said against you?’
3: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4 “You have said, ‘It is futile to serve God. What do we gain by carrying out his requirements and going about like mourners before the Lord Almighty?
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15 But now we call the arrogant blessed. Certainly evildoers prosper, and even when they put God to the test, they get away with it.’”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6 Then those who feared the Lord talked with each other, and the Lord listened and heard. A scroll of remembrance was written in his presence concerning those who feared the Lord and honored his name.
3: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7 “On the day when I act,” says the Lord Almighty, “they will be my treasured possession. I will spare them, just as a father has compassion and spares his son who serves him.
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18 And you will again see the distinction between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between those who serve God and those who do not.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왜 악이 성행하는 것일까? 이것은 인류가 존재한 시간만큼이나 오랜 된 인류의 질문일 것입니다. 많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이에 대한 공격과 방어를 하며 학문이 발전했습니다.
신 존재에 대해서 가장 유명한 논쟁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인 쾌락주의의 대가 에피쿠로스의 역설Epicurean paradox입니다.
신은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똑똑한 무신론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신의 존재에 대해서 판단하는 근거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이 세계가 전부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다 알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 어찌 감히 신의 존재에 대해서 논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입니다.
현실을 보고 망언(妄言)함 (13~15절)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여호와를 대적하는 세대가 되어 갑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미 전세대를 걸쳐 나타나는 죄성을 가진 인간과 사탄의 도움이 합쳐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말라기 시대에 여호와 유일신앙을 가진 유대 공동체에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완악한 말로 여호와를 대적했는데, 그들은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습니다(13).
아마도 습관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불평하는 말을 세가지 정도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14a).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유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반영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는 것이 맞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오랜 포로생활과 귀향했지만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다음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14b).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금식하며 기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불평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신앙의 목적을 발견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인가 유익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서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제자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무리 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노략해도 창고에 쌓이는 재물이 없다는 이유를 하나님 자체를 부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의는 존재하는가?’ 입니다(15).
앞서 말했지만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성행하는 이유에 대한 불만입니다.
그들은 교만한 자가 복을 받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고 불만 가득한 험담을 하나님 앞에 쏟아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즉결심판입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방 제국과 적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자신들의 품에 안겨줄 때 비로소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의로운 자신들이 인정할 만한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모든 판단을 자기 중심으로 합니다. 하나님이 인생이 죄를 지을 때마다 즉결심판을 하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만일 악인들이 거짓말 한 번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치아를 하나씩 빼 버리면? 남의 아내나 물건을 탐낼 때마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손을 잘라 버리신다면?
그렇다면 자신들의 치아와 손이 남아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요?
그들의 생각이 가장 큰 잘못은 자신들은 악인들과 상관이 없다는 이원화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악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공의대로,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즉결심판을 하면, 그들 역시 무사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서 자유로운 인생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똑똑한 에피쿠로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보고 소망함 (16~18절)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이 세상뿐입니다. 하지만 진짜 삶은 죽음이후에 벌어집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사후생on Life after Death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의 육체적 죽음은 나비가 고치를 벗어날 때의 현상과 똑같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상징적으로 비유하자면, 죽음은 그저 ‘한 집에서 더 아름다운 집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고치(몸)가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면 나비(영혼)가 태어난다.
그녀는 죽음 이후의 삶은 더 이상 믿고 안 믿는 신념의 문제가 아닌, 그저 앎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2만건이 넘는 죽음을 체험한 자들 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녀가 내린 결론입니다.
본문도 동일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이름은 기념책(출 32:32; 계 20:12)에 기록될 것입니다. 구원의 약속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정하신 날, 카이로스에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삼으시고, 그들을 아끼실 것입니다(17).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왕노릇하며 심판자의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18). 하나님이 정하신 날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말합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이 땅에서 짧은 80년이 영생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을 갖는 종말론적인 신앙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영원토록 주와 함께 왕노릇하는 것이고, 현실만 보고 망언하는 자는 영벌을 받을 것입니다.
현실을 볼 때 아무리 부조리하고 악이 성행하는 것 같아도,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봅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