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3 Jesus knew that the Father had put all things under his power, and that he had come from God and was returning to God;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4 so he got up from the meal, took off his outer clothing, and wrapped a towel around his waist.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5 After that, he poured water into a basin and began to wash his disciples’ feet, drying them with the towel that was wrapped around him.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6 He came to Simon Peter, who said to him, “Lord, are you going to wash my feet?”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7 Jesus replied, “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8 “No,” said Peter, “you shall never wash my feet.”
Jesus answered, “Unless I wash you, you have no part with me.”
13: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9 “Then, Lord,” Simon Peter replied, “not just my feet but my hands and my head as well!”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0 Jesus answered, “Those who have had a bath need only to wash their feet; their whole body is clean. And you are clean, though not every one of you.”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1 For he knew who was going to betray him, and that was why he said not every one was clean.
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2 When he had finished washing their feet, he put on his clothes and returned to his place. “Do you understand what I have done for you?” he asked them.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rightly so, for that is what I am.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4 Now that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should wash one another’s feet.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5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십자가는 영광일까요? 고난일까요?
어제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비하(낮아지심)와 승귀(높아지심)를 살펴본 결과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없이는 결코 높아지심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고난임과 동시에 영광입니다.
요한복음의 구조는 분명합니다.
서론(1:1~18)과 결론(21:1~25)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그 사이에 본론(1:19~20:31)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론은 다시 1:19~12:50절과 13:1~20:31절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소위 표적의 책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뒷부분은 어떤 학자는 영광의 책으로, 어떤 학자는 고난의 책으로 부릅니다. 왜 그렇게 의견이 나뉘는지 아실 것입니다. 둘 다 맞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른 차이입니다.
표적의 책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영광의 책, 또는 고난의 책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끝까지 사랑
요한은 사건의 시간적 배경을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1)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때와는 다릅니다. 공관복음 저자들은 십자가의 때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는 때라면, 요한의 때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곧 그리스도의 승귀, 영광의 때인 것입니다.
자신의 때가 된 것을 아시는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것은 배신할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13장의 주제이고, 14-17장 고별설교의 주제이며, 십자가와 부활에서 정점을 찍고, 마지막 베드로를 회복시키는 장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요한복음의 후반부를 사랑의 책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난데없이 식사를 하시다가 겉옷을 벗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왜, 예수님은 가장 낮고 천한 종이 하는 일을 하셨을까요?
아마도 그 누구도 물을 떠와서 발을 씻어 주는 자가 없었고, 그러므로 제자들 중 아무도 발을 씻고 식사를 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제자들은 현재 물 밑에서 누가 큰지에 대해서 엄청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떠나시기 전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크게 2가지 의미에서 세족식을 행하십니다. 먼저는 신학적 의미입니다.
이것은 세족을 거부하는 베드로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7). 세족식은 영적인 죄 씻음의 의미입니다.
세족식은 십자가의 사역을 예표하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제자들의 모든 죄를 씻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팔 유다의 죄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할 베드로의 죄도…
세족식은 이처럼 과거의 죄뿐 아니라 미래의 죄까지도 씻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예표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사랑의 관계적인 행위인 것이었습니다(8).
우리는 세족식이 예표 하는 바 십자가를 통해서 결국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족식을 행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시기를 요청(9)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목욕은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을 돌이키는 일생에 한 번 있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또한 발을 씻는 것은 매일의 삶에서 짓는 고범죄의 회개를 의미합니다.
어떤 이단들은 일생에 한 번만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잘못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미 목욕한 자이지만, 날마다 발을 씻는 속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사랑의 십자가가 없다면 죄사함은 불가능합니다.
본을 보이시는 주님
세족식의 두 번째 의미는 실천적 의미로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세족식의 영적인, 신학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구속행위와 직결되지만 직접 말씀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세족식의 두 번째 의미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본을 보였노라(15) 제자들 상호간에 이루어져야 할 겸손의 본이라는 것입니다.
세족식의 첫 번째 의미와 두 번째 의미는 서로를 함축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믿음이냐, 행위냐!
결국 죄 씻음을 받은 자들의 결과적인 삶이 서로 발 씻음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이 겸손하게 서로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행한 세족식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질문 하십니다(12).
그리고는 너희가 나를 선생(호 디다스칼로스)이라 또는 주(호 퀴리오스)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13)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안 되려면, 내가 주와 선생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가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14절에 옳으니라(휘메이스 오훼일레테)는 너희가 빚지고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빚을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처럼 제자들은 마땅히 서로 발을 씻겨 주는 겸손과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교회는 4세기 이후 고난주간 목요일에 교황이 아랫사람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 스페인 톨레도 694년 종교회의 때는 매년 고난주간 목요일에 세족식을 집행하기로 공식적으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족식이 그 섬김의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화 되었다는 이유로 종교개혁자들은 반대를 했고, 결국 폐지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팬데믹이 있기 바로 전 리더십수련회 때 세족식을 은혜롭게 진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은 일년에 한 번 보여주기식 행사로서의 세족식이 아닙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는 희생적인 섬김의 삶을 살기를 당부하시는 유언과도 같은 것이 세족식이라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인 우리들은 예수님의 본을 받아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예수님의 겸손함을 본받아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섬기고 씻겨야 할 발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내를 도와 설거지를 하는 것이 발을 씻기는 행위입니다. 남편의 식사를 한 끼 잘 차려 주는 것이 바로 발을 씻기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어린 자녀를 목욕시켜주는 것이 발을 씻기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겸손한 삶을 살 때 우리는 어느새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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