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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새벽묵상] 화목하게 하시는 주님 | The Lord of Reconciliation (눅/Lk 23:1~12)



23: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1 Then the whole company of them arose and brought him before Pilate.

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2 And they began to accuse him, saying, “We found this man misleading our nation and forbidding us to give tribute to Caesar, and saying that he himself is Christ, a king.”

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3 And Pilate asked him, “Are you the King of the Jews?” And he answered him, “You have said so.”

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4 Then Pilate said to the chief priests and the crowds, “I find no guilt in this man.”

23:5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5 But they were urgent, saying, “He stirs up the people, teaching throughout all Judea, from Galilee even to this place.”

23:6 빌라도가 듣고 묻되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6 When Pilate heard this, he asked whether the man was a Galilean.

23: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7 And when he learned that he belonged to Herod's jurisdiction, he sent him over to Herod, who was himself in Jerusalem at that time.

23: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8 When Herod saw Jesus, he was very glad, for he had long desired to see him, because he had heard about him, and he was hoping to see some sign done by him.

23: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9 So he questioned him at some length, but he made no answer.

23: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10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stood by, vehemently accusing him.

23: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11 And Herod with his soldiers treated him with contempt and mocked him. Then, arraying him in splendid clothing, he sent him back to Pilate.

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12 And Herod and Pilate became friends with each other that very day, for before this they had been at enmity with each other.


 


청년의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결혼하여 6명의 자녀를 낳고, 늘어난 몸무게와 뱃살, 한국이 아닌 미국에 살고 있고, 일개 신학생에서 시애틀한사랑교회 담임목사가 되어있는 것 등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변화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좀 신기한 변화는 청년 시절에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채소를 잘 먹는다는 것과 정치에 관심이 가고 뉴스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뉴스를 보시면 왜 저렇게 재미없는 것을 계속 보시는지 답답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뉴스가 재미있고 정치가 재미있는 이유는 삶이 정치이고, 정치가 곧 삶이기 때문입니다.

디트로이트한인연합장로교회 유승원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한편으로 볼 때 정치는 삶이다. 그리고 삶은 넓은 의미의 정치다.

목사도 지혜로운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둘기같이 순결한 것만으로는 일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이 삶의 현장이다.

뱀같이 지혜로워야 할 때가 있다. 오히려 그래야만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나라 정치는 백성들의 삶을 화목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개인적, 사회적 관계의 정치 역시 상호간의 관계를 원활하고 부드럽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누구나 정치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인 빌라도(1~7절)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갑니다(1).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사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마 27:20; 막 15:11).

무리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를 고발하는 내용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에 대한 세금을 반대한 반역죄요, 종교적으로는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는 신성모독죄입니다(2).

이에 빌라도가 예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a)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3b)고 말합니다.

하지만 원어는 네가 말하였다 라는 의미입니다. 풀어 말하자면 유대인의 왕이 맞지만, 빌라도 네가 생각하는 정치적인 의미의 왕이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요한은 이 장면을 더 자세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요 18:36~38)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빌라도가 질문하는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세상의 왕이 아닌 온 우주의 왕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어쩌면 진짜 종교적인 유대인들의 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죄가 없었던 것입니다(4).

하지만 무리들은 더욱 요동하며 예수가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을 현혹했다고 말합니다. 곤란했던 빌라도는 갈릴리 출신이라는 말에서 지금의 난관을 헤쳐나갈 묘책을 생각해냅니다.

그것은 당시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인 헤롯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뉴스에서 얼마나 많이 이와 유사한 사건을 접하는지 모릅니다.

수사하기 곤란한 사건을 서로 다른 수사기관들이 서로 떠넘기는 모습 말입니다.



여우 헤롯(8~12절)

마침 예루살렘에 있었던 헤롯 안티파스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의 아들로 갈릴리 지역을 책임졌던 분봉왕입니다. 그는 세례 요한을 죽인 자로서 예수를 두려워하고 만나보고 싶어했으며, 또한 죽이려 했던 자입니다(눅 13:31). 그는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나 예수님은 그를 여우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기뻐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8b) 헤롯이 예수님을 매우 기뻐한 이유는 마술사와 같은 이적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경박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왕이라는 사람이 메시아를 앞에 두고 고작 바란다는 것이 광대놀음이라니… 그래서 예수님은 빌라도와는 달리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돼지에게 진주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저 아까울 뿐입니다. 우리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예수를 기뻐하는 이유가 그분의 이적을 바라는 유치한 마음 때문은 아닌지 말입니다.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던 헤롯은 예수님을 노리개 취급한 후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 보냅니다.

누가는 이에 대해서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12)고 기록합니다.



빌라도와 헤롯은 묘한 정치적인 긴장감이 있는 관계였습니다.

여기에 대제사장과 유대 장로들까지 가세하면 서로 없애지 못해 안달인 정치적 삼각관계가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는 일에는 일심동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한걸음 나아가자 예수를 믿지 않는 헤롯과 빌라도, 유대인이 화해를 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그런 아름다운 화해와 용서, 화목의 모습은 아닙니다.

톰 라이트tom Wright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사방에서 화해가 물밀듯이 터져 나오는 것 같다.

물론 하찮은 식민지 군주와 음흉한 총독이 맺은 얄팍한 거래와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누리는 복음의 풍성한 교제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 누가는 당대의 교회와 우리 시대의 교회에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해서 헤롯과 빌라도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십자가 그늘 아래 들어간 당신은 어느 누구와도 화해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로 하나님과 이웃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 십자가 그늘 아래만 거한다면 누구와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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