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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0 [새벽묵상] 구원의 반석과 심판의 돌 | The Rock of Salvation & the Stone of Judgment (눅/Lk 20:9~19)



20: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9 And he began to tell the people this parable: “A man planted a vineyard and let it out to tenants and went into another country for a long while.

20: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0 When the time came, he sent a servant to the tenants, so that they would give him some of the fruit of the vineyard. But the tenants beat him and sent him away empty-handed.

20: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And he sent another servant. But they also beat and treated him shamefully, and sent him away empty-handed.

20: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2 And he sent yet a third. This one also they wounded and cast out.

20: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3 Then the owner of the vineyard said, ‘What shall I do? I will send my beloved son; perhaps they will respect him.’

20: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4 But when the tenants saw him, they said to themselves, ‘This is the heir. Let us kill him, so that the inheritance may be ours.’

20: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5 And they threw him out of the vineyard and killed him. What then will the owner of the vineyard do to them?

20: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6 He will come and destroy those tenants and give the vineyard to others.” When they heard this, they said, “Surely not!”

20: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7 But he looked directly at them and said, “What then is this that is written: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20: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8 Everyone who falls on that stone will be broken to pieces, and when it falls on anyone, it will crush him.”

20: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19 The scribes and the chief priests sought to lay hands on him at that very hour, for they perceived that he had told this parable against them, but they feared the people.


 

어제 드디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선출 되었습니다. 마지막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0.73% 밖에 나지 않는 초박빙의 승부였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채 1%도 되지 않는 차이로 승리를 한 경우는 없습니다. 역대 최소 표 차이로 승리한 것입니다. 덕분에 승자도 패자도 모두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께서 겸손히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두 동강난 나라를 하나로 엮어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번 대선 막바지에 개인적으로 매우 놀라고 실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정치인들에게는 이미 실망할 것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다녔던 학교 한국어 학부의 총장이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세계적인 신약신학 부분의 석학이신 모교수님이 대선을 얼마 앞두고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하는 영상을 업로딩 했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충격적이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신학자이자 교수님이라도 분명히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자신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왜 지지하는지 밝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교수님이 어떤 특정 후보를 찍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 교수님뿐 아니라 몇몇 원로나 영향력 있는 신학교수님, 목사님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확정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매우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지지했던 후보와 다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이제 교수님들은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만일 교수님들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보를 지지하면서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해도 저는 매우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좋고 싫은 후보자가 있을 뿐이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반대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많이 성경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물론 상대 후보가 히틀러나 푸틴 같은 사람이라면 목숨 걸고 반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또 그런 진짜 독재자가 등장하면 그런 말은 대놓고 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생각으로 나가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항상 이중적이고 상대적인 입장이 있음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같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전면적으로 위배되는 것은 목숨 걸고 반대해야 합니다. 이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비유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포도원 농부 비유를 말씀 하십니다. 이 비유는 예루살렘과 선지자,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곧 있을 예루살렘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태는 한 집 주인(마 21:33)이라고 말합니다. 비유에서 이 집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집주인은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만들어 세로 주고 멀리 떠납니다. 포도원은 항상 예루살렘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리고 농부들은 그 예루살렘과 성전을 관리하라고 맡긴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유대 지도자들 입니다.

때가 되어 주인은 종들을 보내어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합니다. 몇 번에 걸쳐 종들을 보내지만 농부들은 종들을 때리고 상하게 하여 거저 돌려보냅니다. 여기서 주인이 보낸 종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을 의미합니다.

이제 주인은 최후 통첩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며, 농부들이 자신의 아들만큼은 존대하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종들은 서로 의논하여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아들의 유산을 자신들이 차지하기로 결탁하고 포도원 밖에서 그 아들을 죽입니다. 여기서 아들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며칠 뒤 예수님을 포도원 밖, 곧 예루살렘 밖에서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15b) 질문하십니다. 그리고 자답합니다.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16a)

농부들의 운명은 진멸입니다. A.D.70년 로마의 침략으로 완전히 망할 예루살렘의 운명입니다.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은 구원의 문이 이방인들에게 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 사방에서 몰려와 천국잔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됩니다!(16b) 백성들도 사안의 심각성을 알았던 것일까요?



모퉁이 돌이 되신 주님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시면서 다시 말씀 합니다.

시편 118:22 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건축자는 건축의 전문가, 즉 말씀의 전문가들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모퉁이 돌Corner Stone은 건축에서 건물의 하중을 받는 중요한 돌로 머릿돌이나 기초석으로 쓰입니다.

나름 전문가들이라는 사람이 버린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 되어 교회의 기초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모퉁이 돌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을 놓고 다르게 보는 것처럼 이중적입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모퉁이 돌 예수님은 구원의 반석(17)입니다.



모세가 반석을 쳐서 샘물이 흘러 이스라엘을 살렸던 것처럼 예수님은 구원의 샘물이 되십니다.

또한 모퉁이 돌이 되어 성전의 시대를 종식하고 세로운 가죽부대인 교회를 든든히 세우십니다.

모퉁이 돌 예수님의 또 다른 이면은 심판의 돌(18)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원의 반석인 예수님은 동시에 무서운 심판의 돌입니다. 돌 위에 떨어지든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든 그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바위이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번석 위에 서지 않으면, 오히려 그 돌은 우리를 심판하는 돌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이중성입니다.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이자, 구원과 심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우리 또한 세상에서 십자가와 같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로마 시대에는 개선 장군이 승리하여 포로들을 데리고 입성할 때 백성들은 향을 피워 그를 환영했다고 합니다. 그 때 피어나는 향기는 개선장군에게는 승리의 향기이지만, 포로들에게는 죽음의 향기였습니다.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삶은 어떤 자들에게는 구원 모습으로 어떤 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을 주는 삶의 모습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모퉁이 돌이신 예수를 알려주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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