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1 One day, as Jesus was teaching the people in the temple and preaching the gospel,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with the elders came up
20: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2 and said to him, “Tell us by what authority you do these things, or who it is that gave you this authority.”
20: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3 He answered them, “I also will ask you a question. Now tell me,
20: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4 was the baptism of John from heaven or from man?”
20: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5 And they discussed it with one another, saying, “If we say, ‘From heaven,’ he will say, ‘Why did you not believe him?’
20: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6 But if we say, ‘From man,’ all the people will stone us to death, for they are convinced that John was a prophet.”
20: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7 So they answered that they did not know where it came from.
20: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And Jesus said to them, “Neither will I tell you by what authority I do these things.”
예수님은 종려주일에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어 성전을 둘러보시고는 감람산으로 퇴근(?)하셨습니다. 월요일 아침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시면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저주 하십니다. 그리고는 성전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권위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쫓으십니다. 그래서 이 월요일을 소위 권위의 날 이라고 부릅니다.
화요일 아침 다시 출근하면서 제자들이 보니 어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성전에 오셔서 백성들을 가르칩니다. 그러자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이 나아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합니다. 이후에 수많은 변론과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화요일을 변론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죄인들의 질문
누가는 하루는(1a) 이라고 시간적 배경을 언급합니다. 주석가 헨드릭슨은 이날이 화요일 아침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성전에서 돈을 바꿔주고, 제사에 쓰일 제물을 매매하면서 희생제사의 비인격화를 시도했던 죄인들을 쫓아내시고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 다음날 아침입니다.
전날 예수님이 하신 일이 성전을 관리하는 권한을 가진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의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1b) 예수님께 나옵니다.
한 해에 한 명밖에 없는 대제사장을 대제사장들 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은 장인과 사위인 안나스와 가야바처럼 대제사장직을 지낸 사람 역시 대제사장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은 말씀을 기록하고 자들로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되며, 성경 말씀에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장로들은 비종교적인 직분의 백성 지도자들로 각 마을을 다스리는 정치적인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입법, 사법, 행정,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절대적인 최고의 통치기구였던 70인의 산헤드린 공의회의 구성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전해진 어제 성전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떼로 몰려와 예수님께 도전합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
그들의 질문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네가 뭔데 이런 짓거리를 하느냐? 누가 시킨 거냐?입니다.
여기서 이런 일 이라는 것은 예수께서 하신 두 가지 일을 말합니다.
먼저는 전날에 돈 바꾸는 자와 짐승 파는 자들을 내쫓으신 것이고, 다음은 성전에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위는 그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셨고, 로마 황제조차 인정해 준 성전관할권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전 관리를 맡기셨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불충과 타락으로 성전에 대한 권한은 이제 파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그들이 몰랐던 것은 예수님이 성전의 참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들이 몰랐다기 보다 애써 억지로 부인했던 것입니다.
성전의 참 주인에게 오히려 종들이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묻는 모습은 코미디와 같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매우 어이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4)라는 질문으로 답합니다.
일반적으로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상대방에게 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함으로 빠져나가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답변하기 곤란해서 답변대신 질문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예수님께 그들이 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같은 답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에 대한 완곡한 어법입니다.
엘로힘(하나님)의 이름은 야훼(여호와)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존엄한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했습니다. 그래도 대체어로 주(아도나이) 또는 하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미 순교한 세례 요한을 다시 소환 했을까요?
그것은 세례 요한의 세례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백성들도 알고 인정하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7,29)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면, 그의 사역과 그의 예언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의 가장 최고의 사역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사역의 권위가 하늘, 곧 하나님으로부터라고 인정하는 순간 자동으로 예수님의 사역 역시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이것이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했던 질문의 답변인 셈입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이 그들 스스로 깨닫도록 답변을 유도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런 속 좁은 속내를 밝혔다가는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을 선지자와 메시아로 확신하는 백성들에게 돌 맞을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존심은 상하지만 살고자 모르겠다고 답변합니다.
가장 비겁한 답변입니다. 예수님 역시 너희가 알면서도 답변 하기 싫다면 나도 너희의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 말해봤자 너희들은 믿지 않을 것이 뻔하지 않느냐 라는 말씀은 생략하십니다.
참 다행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온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로 답변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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