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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새벽묵상] 눈 뜬 장님과 믿음의 눈을 뜬 맹인 | The Blind who opened the Eyes of Faith (눅/Lk 18:31~43)



18: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1 And taking the twelve, he said to them, “See, we are going up to Jerusalem, and everything that is written about the Son of Man by the prophets will be accomplished.

18: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2 For he will be delivered over to the Gentiles and will be mocked and shamefully treated and spit upon.

18: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3 And after flogging him, they will kill him, and on the third day he will rise.”

18: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4 But they understood none of these things. This saying was hidden from them, and they did not grasp what was said.

18: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5 As he drew near to Jericho, a blind man was sitting by the roadside begging.

18: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6 And hearing a crowd going by, he inquired what this meant.

18: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7 They told him, “Jesus of Nazareth is passing by.”

18: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8 And he cried out,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18: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39 And those who were in front rebuked him, telling him to be silen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18: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0 And Jesus stopped and commanded him to be brought to him. And when he came near, he asked him,

18: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1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He said, “Lord, let me recover my sight.”

18: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2 And Jesus said to him, “Recover your sight;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43 And immediately he recovered his sight and followed him, glorifying God. And all the people, when they saw it, gave praise to God.


 


인지심리학자인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Christopher Chabris 의 공저인 보이지 않는 고릴라The Invisible Gorilla는 1997년 하버드대학에서 있었던 심리학 실험인 투명한 고릴라를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실험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과 검정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 각각 3명이 농구공 2개로 패스를 합니다. 그 중에서 흰색 티셔츠 팀이 농구공을 몇 번 주고 받았는지 패스 횟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실험 영상을 보면 그렇게 한참 패스를 하는 중간에 검정색 고릴라로 분장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버드생 50% 이상이 그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결과가 나옵니다. 전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그들은 눈 뜬 장님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너무 패스의 횟수를 세는데 집중한 나머지 큰 덩치의 춤추는 고릴라가 지나가는데도 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인간의 주의력, 자신감,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주의력 착각, 자신감 착각, 지식 착각 등등에서 벗어나 진실을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듣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눈 뜬 장님들

누가는 18장을 마무리 하면서 묘하게 제자들과 소경을 대조 시키며 사건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31b)라고 말씀하시며 노골적으로 자신이 받으실 수난에 대해서 예고(32)합니다. 또한 그 후에 삼일 만에 부활 하실 것도 말씀(33)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핵심은 그들은 죽일 것이나, 그는 살아나리라 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신 대로,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그 사명을 향하여 한 걸음 더 나갑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누가는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34)라고 기록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제자들이 예수님과 3년을 함께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는 그들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눈에 보이는 왕국의 회복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의 사역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누가 더 큰 지(눅 9:46; 22;24) 계속 자리 다툼을 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에서 사람들이 패스하는 횟수에 집중하다 보니, 눈 앞에 지나가는 고릴라를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제자들의 마음이 온통 명예와 성공에, 출세에 쏠려 있으니, 십자가의 고난, 죽음, 부활 따위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못 알아들은 또 다른 이유는 말씀이 감춰졌기 때문입니다(34).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는 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제자들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결코 그들이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예수님을 따랐다고 자랑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제자들 역시도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처럼 예수를 반대하는 자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합니다.

우리는 늘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눈 뜬 장님은 아닌가? 편견과 착각 속에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는가?


믿음의 눈을 뜬 맹인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소경인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 라고 외치자,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41)라고 물으십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41)라고 답하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42)라고 축복하시자 곧 그가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43).



한가지 해석의 문제는 사건이 벌어진 장소의 문제입니다. 누가는 여리고에 가까이 갈 때(눅 18:35) 있었던 사건으로, 마태와 마가는 여리고를 떠나올 때(마 20:29; 막 10:46) 사건으로 기록합니다.

역사 지리로 보는 성경의 저자인 이문범 목사는 예수님 당시에는 두 개의 여리고가 있었는데, 하나는 구약 시대 여리고인 구시가지이고, 다른 하나는 신약 시대에 지어진 신시가지라고 말합니다.

두 도시는 서로 약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여리고 구시가지를 떠날 때를 기준으로, 누가는 바디매오가 살던 신시가지에 도착했을 때를 기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는 제자들과는 상반적으로 육체의 눈이 먼 소경을 소개합니다. 마가는 그의 이름이 바디매오(막 10:46)라고 알려줍니다. 특별히 이 사건이 여기 있는 것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눅18:1)와 인클루지오의 구조(샌드위치/포괄구조)를 이루어 낙망하지 않고 기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간증합니다.



바디매오는 비록 현실적인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적인 믿음의 눈이 열린 자였습니다.

적어도 그에게는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을 구원할 메시야로 보여진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39a) 합니다. 이것은 당시에 소경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그에 대한 대우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편견과 무시와 억압과 절망을 넘어서는 믿음의 외침이요, 기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간절하게 끈질기게 해야 합니다. 불의한 재판장에게 간청했던 과부처럼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그를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41a)라고 묻습니다. 그는 지체치 않고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41b). 이것이 기도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정확한 기도의 제목은 나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는 행위 자체가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에게 예수님은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42)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목적은 눈을 뜨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진짜 기도의 목적은 43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고 하나님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믿음의 눈을 뜬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 봅시다.

낙망하지 말고 항상 기도합시다. 그리고 기도응답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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