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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0 [새벽묵상] 요나보다 더 큰 이 | The One Greater than Jonah (눅/Lk 11:29~36)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29 When the crowds were increasing, he began to say, “This generation is an evil generation. It seeks for a sign, but no sign will be given to it except the sign of Jonah.

11: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0 For as Jonah became a sign to the people of Nineveh, so will the Son of Man be to this generation.

11: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1 The queen of the South will rise up at the judgment with the men of this generation and condemn them, for she came from the ends of the earth to hear the wisdom of Solomon, and behold, something greater than Solomon is here.

11: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2 The men of Nineveh will rise up at the judgment with this generation and condemn it, for they repented at the preaching of Jonah, and behold, something greater than Jonah is here.

11: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3 “No one after lighting a lamp puts it in a cellar or under a basket, but on a stand, so that those who enter may see the light.

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4 Your eye is the lamp of your body. When your eye is healthy, your whole body is full of light, but when it is bad, your body is full of darkness.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5 Therefore be careful lest the light in you be darkness.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36 If then your whole body is full of light, having no part dark, it will be wholly bright, as when a lamp with its rays gives you light.”


 


표적 사건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된 사건(마 12:38-42; 막 8:12)이고, 등불 비유는 마태만 기록합니다(마 5:15; 6:22-23). 공관복음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공관복음과 관련된 얘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4복음서 가운에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마가-마태-누가-요한의 순서로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마가의 기록은 거의 대부분 마태와 누가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요한은 보충적으로 새로운 사건들 기록하여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내용이 92%에 달합니다.


좀 특이한 선지자 요나 (29~32절)

바알세블 논쟁 이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합니다.

누가는 이미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16)라고 그들의 상태를 알려주었습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보고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분명히 장님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바로 이어서 등불의 비유를 배치한 것입니다.

표적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29b)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요나는 상당히 특이한 선지자입니다.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도 그와 반대되는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라 탑니다. 덕분에 애꿎은 뱃사람들만 폭풍우로 고생했습니다.

결국 제비 뽑은 결과 요나가 원인임이 밝혀졌고, 그는 바다에 던져 큰물고기의 밥이 됩니다.

하지만 물고기도 이 못된 성질의 선지자를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는 3일 동안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물고기를 명령하여 요나를 바닷가에 토해내게 합니다. 죽다 살아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 후에 니느웨가 멸망할 것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건성건성으로 멸망을 선포했는지 걸어서 삼 일 길이 걸리는 큰 성 니느웨를 단 하룻 만에 다 돌아 다니고 경고를 마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대충대충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습니까?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욘 3:5)


예수님이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특이한 선지자 요나는 적국인 니느웨 사람들을 미워하여 복음을 그저 대충 전했는데도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를 했는데, 지금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직접 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여줘도 계속해서 표적을 구하고 회개할 생각이 없으니 너무도 안타까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 일 동안 무덤 속에 머무시다가 부활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의 삼 일은 무덤에서의 삼 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좀 특이한 선지자인 요나의 말을 듣고도 니느웨가 회개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당연히 회개하는 것이 옳은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 다른 표적만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세대의 특성을 예수님은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 16:31)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는 아무리 표적을 보여줘도 계속해서 다른 핑계를 대며 믿지 않고, 또 다른 표적을 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날에 니느웨 백성들이 우리는 엉터리 선지자 요나의 말을 듣고도 회개했는데, 당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설교를 해도 꿈적도 않는군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라고 유대인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솔론몬 이야기도 동일한 구성입니다. 남방의 스바여왕(왕상 10:1~13)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지혜를 직접 보고 들으려고 그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보다 더 크신 이, 곧 솔로몬의 지혜 정도가 아니라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눈 뜬 장님이요, 귀 뚫린 귀머거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스바여왕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표적만 구한 자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요나와 같은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고 대하는 나의 마음과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봅시다.


세상의 등불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닮은 꼴인 우리 역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 8:12a)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a)


예수님은 근원적인 빛이고, 우리는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의 빛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눈입니다.

그러므로 눈이야말로 우리 몸의 등불입니다. 이 의미는 노안이 오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내 몸은 물론이고, 온 세상이 어둡습니다.

손에 박힌 가시 하나 뽑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아무리 근원적인 빛이 밝아도 스스로 눈을 감고 가리고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온 몸이 어둠에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아야 합니다(35).

누가는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들이 바로 등불이 없는 눈 먼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공동체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의 등불을 밝힙시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불을 밝힙시다.

날마다 눈을 들어 주를 볼 때 우리의 온 몸이 밝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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