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5 And behold, a lawyer stood up to put him to the test, saying, “Teacher, what shall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6 He said to him, “What is written in the Law? How do you read it?”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7 And he answered,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8 And he said to him, “You have answered correctly; do this, and you will live.”
10: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29 But he, desiring to justify himself, said to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0 Jesus replied, “A man was going down from Jerusalem to Jericho, and he fell among robbers, who stripped him and beat him and departed, leaving him half dead.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1 Now by chance a priest was going down that road, and when he saw him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
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2 So likewise a Levite, when he came to the place and saw him, passed by on the other side.
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3 But a Samaritan, as he journeyed, came to where he was, and when he saw him, he had compassion.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4 He went to him and bound up his wounds, pouring on oil and wine. Then he set him on his own animal and brought him to an inn and took care of him.
10: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5 And the next day he took out two denarii and gave them to the innkeeper, saying, ‘Take care of him, and whatever more you spend, I will repay you when I come back.’
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6 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proved to be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among the robbers?”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7 He said, “The one who showed him mercy.” And Jesus said to him, “You go, and do likewise.”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 불이행Failure-to-Rescue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법규입니다.
정신이상자가 길거리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폭행을 하는데도 행인들이 그저 보기만 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뉴스를 접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적용됩니다.
반면에 이 법은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돕다가 의도치 않은 불의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정상참작이나 면책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런 조항이 있는 이유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도왔는데,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숨이 멎은 사람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다 보면 갈비뼈가 부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환자가 살아나서 갈비뼈 골절의 고통을 호소하면 보호자들이 CPR을 실행한 사람에게 갈비뼈를 부러뜨린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물에 빠진 자를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격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남의 일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문제 때문에 이 법은 사형제도, 양심적 병역거부와 더불어 법적논쟁의 중심에 있다고 합니다. 이 법의 이름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따 온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핵심적 의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양심껏 도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덕성의 회복?
한 율법사, 그러니까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5)라고 질문 합니다. 이것은 부자 청년 관원(마 19:16)과 빌립보 간수의 질문(행 16:30)과 동일합니다.
인생의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조금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단지 행위의 문제로 이해하는 수준에서 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눈 높이에 맞추어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라고 질문 하십니다. 그러자 그 율법사는 쉐마 이스라엘(신6:4-9)로 완벽하게 답변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28)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기에 그것을 지키면 구원을 얻습니다. 문제는 모든 인간은 율법을 100%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율법사는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29)라고 다시 묻습니다.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답변을 대신하시고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유대인들이 자부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강도 만나 맞아서 거의 죽게 된 어떤 사람을 내버려 두고 그냥 지나칩니다.
율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들의 행동을 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성막과 제사를 책임지는 자들로서 그들이 혹시라도 죽은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여져서 일정 기간 성막과 제사를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떤 사마리아인이 나타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행을 베풀어 줍니다.
주님은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시고, 서기관은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본문을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인가? 아니면 비정한 제사장이나 레위인인가? 라는 도덕적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분명히 그러한 부분도 있지만 본문은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의 질문을 겹쳐서 보면, 본문에 등장하는 강도 만난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사는 누가 나의 이웃인가? 라고 질문했고,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라는 질문으로 답변을 대신 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자가 율법사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 우리 자신을 대입해보면 우리가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원과 도덕성에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사탄으로 말미암아 인간 가운데 들어온 죄는 우리를 구원에 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철저한 무능의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사망의 몸(롬 7:23-25)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칼빈주의의 신학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전적인 타락과 전적인 무능력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비유에서 강도는 인생을 속여 죄와 사망이 들어오게 한 사탄입니다.
그리고 율법사를 포함하여 모든 인류는 그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상태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비유된 것은 바로 율법입니다. 하지만 율법은 거의 죽은 우리를 결코 살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사마리아인은 누구일까요?
그는 완전한 도덕성의 모델입니다. 자신의 기름과 포도주와 짐승까지 아낌없이 내줍니다.
그리고는 이틀 치 일당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는 만일 모자라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까지 말합니다. 누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이 사마리아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 사마리아인은 율법사가 배척하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사 자신의 형편이 어떤지 말씀해 주시고, 그가 그토록 배척하고 이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마리아인과 같은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소망이라는 사실을 말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싶다면, 그는 자신에게 그토록 철저한 사랑을 베풀어 줄 진정한 이웃인 선한 사마리아인, 자비를 베푼 자, 곧 예수님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나의 선한 이웃이신 예수님의 돌보심과 희생과 헌신으로 강도에게 맞아서 거의 죽어가던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고 말씀 하십니다. 너도 완전한 도덕성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흉내라도 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상한 도덕성은 완전하신 사랑을 베푸신 우리의 진정한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의미가 있습니다. 율법이 도덕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자비를 베푼 자, 우리의 참 이웃인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도 가서 예수처럼 행하면 됩니다.
Bertram Poole 삽화 너무 좋아요!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광야 언덕에 내려 쪼이는 강렬한 태양, 강도 만나 쓰러진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Good Samaritan.
그 사람이 예수님!!!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