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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3 [새벽묵상] 영광의 그리스도 vs 고난의 그리스도 | Christ of Glory vs Christ of Suffering (눅/Lk 9:37~50)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7 On the next day, when they had come down from the mountain, a great crowd met him.

9: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8 And behold, a man from the crowd cried out, “Teacher, I beg you to look at my son, for he is my only child.

9: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39 And behold, a spirit seizes him, and he suddenly cries out. It convulses him so that he foams at the mouth, and shatters him, and will hardly leave him.

9: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0 And I begged your disciples to cast it out, but they could not.”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1 Jesus answered, “O faithless and twisted generation, how long am I to be with you and bear with you? Bring your son here.”

9: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2 While he was coming, the demon threw him to the ground and convulsed him. But Jesus rebuked the unclean spirit and healed the boy, and gave him back to his father.

9: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3 And all were astonished at the majesty of God. But while they were all marveling at everything he was doing, Jesus said to his disciples,

9: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4 “Let these words sink into your ears: The Son of Man is about to be delivered into the hands of men.”

9: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45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and it was concealed from them, so that they might not perceive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this saying.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6 An argument arose among them as to which of them was the greatest.

9: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아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7 But Jesus, knowing the reasoning of their hearts, took a child and put him by his side

9: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8 and said to them, “Whoever receives this child in my name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him who sent me. For he who is least among you all is the one who is great.”

9: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49 John answered, “Master, we saw someone cast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stop him, because he does not follow with us.”

9: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0 But Jesus said to him, “Do not stop him, for the one who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오늘 본문인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사건은 마태(17:9~20)나 마가(9:9~29) 모두 변화산 사건과 바로 이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사건이 연결된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톰 라이트Tom Wright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한결같이 변모 이야기 다음에 제자들조차 고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중병에 걸린 한 소년의 이야기를 배치한다. 그들은 두 이야기, 즉 산 정상의 경험과

비명을 지르며 거세게 저항하는 귀신 이야기가 서로 엮여 있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과 같았던 그래서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고 살자던 산 정상과 귀신들림으로 지옥과 같은 인생이 기다리는 산 아래는 정확한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득했던 산 정상과 귀신에게 붙들린 지옥 같은 산 아래, 여러분은 어느 곳에 머물기를 원하십니까?



산을 내려가야 하는 이유 (37~45절)

밤새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경험을 한 세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 다음날 산에서 내려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기독교는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종교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격리되어 산 속에서 혼자 도를 닦는 그런 종교는 아닙니다. 생활 밀착형의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산 정상에서 밤새 영광의 신비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한 남자의 외아들이 귀신 들림으로 괴성을 지르고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흘리고 몸을 상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태는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마 17:15), 마가는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막 9:17)라고 아이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복음서 저자들의 보고를 종합해보면 그 남자의 외아들은 벙어리 귀신들려 말을 못하고, 간질과 같은 증세를 보여서 불이든 물이든 가리지 않고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너무도 비참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가진 아비는 주님께 나와 소리질러 자신의 아들을 돌보아 달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영적으로 벙어리귀신, 간질 귀신들린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 세대는 그들의 상태를 파악하지도 못합니다. 파악하지 못하니 당연히 간절하게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부르짖는 아비의 모습이 너무 귀합니다.

귀신 들린 세대, 제자들이 영광의 산 정상에 머무는 것이 아닌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님의 제자들, 곧 사도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여 이렇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을 고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에게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먹을 것, 곧 하늘 양식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고, 이는 서기관들에게 제자들과 예수님을 비난할 수 있는 비난거리를 제공하였습니다(막 9:14).

이에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41) 라고 책망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고대주석가들은 아이의 아버지, 칼빈은 서기관, 뺑엘은 제자들, 혹자는 무리들 이라고 해석합니다. 개인적으로 책망의 일차적 대상은 능력 없는 제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남의 불행을 자신들의 기회로 삼는 서기관과 그저 호기심으로 충만한 군중들까지 그 대상에 포함됩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미 능력과 권위를 부여 하셨습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 그들 역시 전도여행을 통하여 그 능력을 경험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능력이 나오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자들은 상황이 정리된 후에 조용히 예수님께 왜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여쭙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마 17:20a)


종합하자면 믿음이 없기 때문인데, 그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에게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기에 이미 주신 능력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늘 기도하신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쫓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워합니다.

영광의 그리스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영광의 순간에 다시 고난의 그리스도를 말씀하십니다(44).

제자는 영광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고난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제자들에게 필요한 미덕 (46~50절)

하지만 이어지는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전혀 고난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는 다툼을 합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엄마찬스까지 동원(마 20:20)하여 예수님께 로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자들의 다툼은 사역 초기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바로 전까지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패러다임을 바꾸시기를 원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보잘것없는 자를 섬기는(영접하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입니다(48).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

제자들에게 두 번째로 필요한 덕목은 관용입니다. 요한은 제자의 무리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귀신을 쫓아내는 어떤 사람의 사역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50) 하십니다.



제자들의 시각은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교권주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양성과 수용성을 말씀 하십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자신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제자들을 폄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는 자비와 관용의 종교입니다.

99%가 달라도 1%가 같다면, 곧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고 인정한다면, 그는 우리의 형제입니다.

제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닌 고난의 그리스도입니다.

하지만 고난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영광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겸손하게 산 아래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주님의 명령을 새기며, 날마다 기도함으로 능력을 얻을 때 비로서 귀신들린 세상을 치유하며 도울 수 있는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그리스도를 따릅시다, 날마다 고난의 그리스도처럼 기도의 자리로 나갑시다.

그럴 때 세상은 우릴 통해서 영광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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