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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5 [새벽묵상] 울지 말라, 일어나라! | Do not weep, Arise! (눅/Lk 7:11~17)



7: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1 Soon afterward he went to a town called Nain, and his disciples and a great crowd went with him.

7: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2 As he drew near to the gate of the town, behold, a man who had died was being carried out, the only son of his mother, and she was a widow, and a considerable crowd from the town was with her.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3 And when the Lord saw her, he had compassion on her and said to her, “Do not weep.”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4 Then he came up and touched the bier, and the bearers stood still. And he said, “Young man, I say to you, arise.”

7: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5 And the dead man sat up and began to speak, and Jesus gave him to his mother.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16 Fear seized them all, and they glorified God, saying, “A great prophet has arisen among us!” and “God has visited his people!”

7: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7 And this report about him spread through the whole of Judea and all the surrounding country.


 

여필종부 女必從夫


그 의미는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좀더 확장되면 여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르고, 출가한 후에는 남편을 따르며,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 고 말합니다. 유교적 사상이 근간을 이루는 동양문화권에서는 수세기 동안 당연하게 여겨지는 덕목이었습니다. 특히 농경사회나 수렵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물리적 힘이 센 남자가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대화된 오늘날에는 이런 사상을 주장하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물론 신약성경도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2) 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남자가 더 존귀하고, 여성은 그 가치가 덜 하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가정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필종부가 이러한 성경의 창조적, 영적 가정의 질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양문화권의 남존여비 男尊女卑 사상에 근거한 남녀 가치를 갈라치기 하는 것이라면 절대로 거부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께서 동등하지만, 다르게, 그러나 모두 귀하게 지으신 존재입니다. 각자의 고유의 역할이 있으며, 고유의 그 일들을 할 때 남성은 남성으로서, 여성은 여성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울지 말라

하지만 오늘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은 약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

그곳은 현재도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약하지 않은 남존여비의 사상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니 2000년 전에는 오죽했겠습니까? 직접 육체적인 노동을 통해서 경제 활동을 해야 했던 당시에는 여성과 아이들은 공식적인 집계에 들지도 않을 정도로 남존여비 사상이 뚜렷했습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남편이 없는 여성의 운명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나인성 과부는 듬직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남편 없이 혼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그래도 장성한 청년으로 키웠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사망합니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마저 남편의 뒤를 따른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이 사건은 열왕기상 17장에 등장하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4장에서 이미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눅 4:26)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르밧 또는 사렙다 과부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죽자 엘리야에게 울며불며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왕상 17:18)라고 기도했고, 엘리야는 그녀의 요청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아들을 살려낸 후 그녀에게 돌려줍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데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기적은 과부의 어떤 요청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보통 환자 당사자, 또는 그 주변 사람들의 요청이나 강력한 믿음을 보시고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저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13) 이적을 베푸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나인 성문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과부의 하나 밖에 없는 독자를 메고 나오는(12) 모습을 보면서 과부이자, 얼마 후에 장남인 예수님 자신을 잃고 장사 지내야 할 어머니 마리아가 오버랩 되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울컥했는지 예수님은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며, 울지 말라(13)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따뜻한 주님의 마음이 전달됩니다. 인간 아들로서 모친 마리아는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위로자십니다.



일어나라

울지 말라고 위로 하시지만, 남편을 잃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마저 남편이 묻힌 무덤에 묻으러 가야 하는 어미가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경우 우리의 위로의 말들은 공허합니다.

울지 말라고 말은 하고, 위로도 하지만 사실은 그 과부의 눈물을 절대 멈추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능력도 위로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먼저 관에 손을 대십니다(14). 관에 손을 대셨다는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율법적으로 부정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죽음조차도 예수님을 오염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능력이 부정한 절망의 상황을 바꾸십니다.

울지 말라고 아들을 잃은 과부에게 처음 말씀 하신 후 두 번째 말씀은 죽은 아들 청년에게 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러자 아들이 곧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십니다(15).



우리는 예수님의 단 두 마디 말씀에서 그 분이 어떤 분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해 울지 말라고 위로해도, 능력이 없으면 그저 허무한 위로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울지 말라는 위로는 과부의 현실적인 절망의 문제를 일어나라 라는 명령으로 바꾸심으로 완전한 위로를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진정한 위로자 되십니다.

우리 인생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분은 생명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놀라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고백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16)라고 찬송합니다.

모세를 통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는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을 도우시려고, 곧 구원하시려고 인간이 되셔서 백성들 가운데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자, 온 인류의 위로자로 오신 예수님!

그 주님이 오늘 우리를 보시며 울지 말라! 그리고 일어나라! 고 말씀 하십니다.

그분의 위로는 진정한 위로요, 우리의 모든 고통과 절망을 가져가는 위로입니다.

삶에 어떤 눈물과 아픔이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나아옵시다!

얄팍하고 능력 없는 인간의 위로가 아닌 진정한 위로자 되시는 주님의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나 걷고, 달리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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