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20220113 [새벽묵상] 하나님의 아들 | Son of God (눅/Lk 3:21~38)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1 Now when all the people were baptized, and when Jesus also had been baptized and was praying, the heavens were opened,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2 and the Holy Spirit descended on him in bodily form, like a dove;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You are my beloved Son; with you I am well pleased.”

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심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3 Jesus, when he began his ministry, was about thirty years of age, being the son (as was supposed) of Joseph, the son of Heli,

3:24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24 the son of Matthat, the son of Levi, the son of Melchi, the son of Jannai, the son of Joseph,

3:25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25 the son of Mattathias, the son of Amos, the son of Nahum, the son of Esli, the son of Naggai,

3:26 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

26 the son of Maath, the son of Mattathias, the son of Semein, the son of Josech, the son of Joda,

3:27 그 위는 요아난이요 그 위는 레사요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

27 the son of Joanan, the son of Rhesa, the son of Zerubbabel, the son of Shealtiel, the son of Neri,

3:28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앗디요 그 위는 고삼이요 그 위는 엘마담이요 그 위는 에르요

28 the son of Melchi, the son of Addi, the son of Cosam, the son of Elmadam, the son of Er,

3:29 그 위는 예수요 그 위는 엘리에서요 그 위는 요림이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29 the son of Joshua, the son of Eliezer, the son of Jorim, the son of Matthat, the son of Levi,

3:30 그 위는 시므온이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요남이요 그 위는 엘리아김이요

30 the son of Simeon, the son of Judah, the son of Joseph, the son of Jonam, the son of Eliakim,

3:31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31 the son of Melea, the son of Menna, the son of Mattatha, the son of Nathan, the son of David,

3:32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32 the son of Jesse, the son of Obed, the son of Boaz, the son of Sala, the son of Nahshon,

3:33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33 the son of Amminadab, the son of Admin, the son of Arni, the son of Hezron, the son of Perez, the son of Judah,

3:34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34 the son of Jacob, the son of Isaac, the son of Abraham, the son of Terah, the son of Nahor,

3:35 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벨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35 the son of Serug, the son of Reu, the son of Peleg, the son of Eber, the son of Shelah,

3:36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36 the son of Cainan, the son of Arphaxad, the son of Shem, the son of Noah, the son of Lamech,

3:37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37 the son of Methuselah, the son of Enoch, the son of Jared, the son of Mahalaleel, the son of Cainan,

3: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38 the son of Enos, the son of Seth, the son of Adam, the son of God.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예수님과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기록합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두 사건이지만, 이것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하여 누가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요?



왕의 대관식 (21~22절)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등장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세례는 지금도 행해지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오늘날 세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른 자가 그 믿음을 확증하는 예식으로 공동체 앞에서 행합니다.

하지만 당시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죄사함을 원하고, 믿는 자들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필수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례는 결코 구원의 조건일 수 없습니다. 이점에서 요한의 세례와 오늘날 세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요? 죄가 없다는 것은 회개할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례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 세례의 의미는 영적인 대관식입니다. 소위 구약이 성부 하나님의 시대였다면, 이제 예수님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왕이 왕권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날이 바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날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공식적인 사역이 시작됨(23)을 알리는 행사였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22) 이 소리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하여 모인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예수께서 듣고 본 것이며, 세례 요한 역시 이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 1:32, 34)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이런 놀라운 사건을 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왕관을 물려주심을 알 수 있었고, 시종인 세례 요한 역시 증인으로서 이 놀라운 대관식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며(21)

이것은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입니다. 무엇보다도 누가는 이 모든 일이 예수께서 기도할 때 벌어진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성도의 기도가 하늘 문을 열고, 응답을 불러온다 라는 믿음의 근거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곧 하나님이시자, 그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기독론적 증거의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 기독론, 곧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성도의 기도는 하늘이 열리는 응답을 보장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성도가 기도할 때 예수님은 하늘을 열고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22)

본문은 삼위가 한 자리에 나타난 흔치 않은 구절입니다. 본문에서 성부는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또한 성령은 비둘기의 형상으로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성자는 인간으로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늘 삼위가 함께 사역하십니다. 성부는 성자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22b) 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은 헬라어 아가페토스 인데 뒤에 아들이나 딸이 오면 외아들, 외동딸을 의미합니다. 유일한 독생자이신 예수를 성부께서 직접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비둘기의 형상으로 내려 그의 사역 내내 함께 하십니다. 성부는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는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시고, 성자는 그 이루신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구속사역입니다.



족보 이야기 (23~38절)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와 누가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족보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먼저 마태의 족보는 마태복음 자체의 독자가 유대인이기에 족보의 대상 역시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시작이 아브라함 입니다. 그리고 유대식으로 14대씩 끊어서, 그리고 조상 전부를 다 기록한 것도 아닌 중요인물들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의 독자는 일차적으로 이방인 성도인 데오빌로입니다. 그러므로 강조점은 예수가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이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요셉에서 시작하여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기록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아버지가 헬리(23)라는 것입니다. 헬리는 예수님의 외할아버지, 즉 마리아의 아버지입니다. 그에게는 두 딸만 있어서 사위인 요셉이 법적인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마리아의 족보를 따라 올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태의 족보와 가장 큰 차이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기에, 다윗 그 위로는 같은 조상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는 왜,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했을까요? 창 3:15,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복음이라는 별명답게, 누가는 예수님이 죄 없으신 여자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23)라는 표현은 예수님은 인간이지만 남자 요셉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내포합니다. 이것은 족보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 앞에 헬라어 정관사 τοῦ (the)가 있지만 요셉에게만 없는 사실을 볼 때 확실해 집니다. 누가는 독자들에게 조용히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 다윗의 혈통을 가진 완전한 인간이시며, 동시에 그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또한 예수님은 왕족인 동시에 우리와 같은 평민의 모습으로 섬기러 오신 종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이 사자복음이라면, 누가복음을 황소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세례와 족보를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사역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돕고, 성자는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에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 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다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