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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6 [새벽묵상]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 As we Pant for Water (욥/Job 35:1~16)



35: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Then Elihu said:

35:2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Do you think this is just?

You say, ‘I am in the right, not God.’

35:3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Yet you ask him, ‘What profit is it to me,

and what do I gain by not sinning?’

35:4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I would like to reply to you

and to your friends with you.

35:5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 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Look up at the heavens and see;

gaze at the clouds so high above you.

35:6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If you sin, how does that affect him?

If your sins are many, what does that do to him?

35:7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If you are righteous, what do you give to him,

or what does he receive from your hand?

35: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Your wickedness only affects humans like yourself,

and your righteousness only other people.

35: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People cry out under a load of oppression;

they plead for relief from the arm of the powerful.

35: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But no one says, ‘Where is God my Maker,

who gives songs in the night,

35: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who teaches us more than he teaches the beasts of the earth

and makes us wiser than the birds in the sky?’

35: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He does not answer when people cry out

because of the arrogance of the wicked.

35: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Indeed, God does not listen to their empty plea;

the Almighty pays no attention to it.

35: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How much less, then, will he listen

when you say that you do not see him,

that your case is before him

and you must wait for him,

35:15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and further, that his anger never punishes

and he does not take the least notice of wickedness.

35:16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So Job opens his mouth with empty talk;

without knowledge he multiplies words.”


 

욥기 35장은 엘리후의 세 번째 연설로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경건이나 죄악이 결코 하나님께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하나님의 응답이나 변명을 요구할 어떤 권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의 원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진정한 뉘우침 없이 자신의 원하는 것만 구하는 기도는 결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엘리후에 의하면 욥은 자신의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차별성 (1~8절)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 하나님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창조 후 세상에 대한 입장입니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세상을 만들어 놓을 뿐 더 이상은 인간의 세계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소위 말하는 이신론Deism 입니다. 다른 말로는 자연신론이라고도 하는데, 신은 천지를 창조하기는 했지만 세상에 자연법칙을 부여하고는 스스로 돌아가도록 만든 후에 절대로 피조 세계의 사건이나 역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상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과 구별되는 초월성을 가진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의 세계의 오셔서 아주 세밀하게 관여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역사 속에 하나님이십니다. 그 정점은 성육신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각 사람의 심령 가운데 거하시는 놀라운 신학이 우리 기독교의 차별점이자, 가장 큰 은혜인 것입니다.

1~8절에 엘리후는 이러한 하나님의 초월성, 차별성을 노래하지만 그렇다고 이신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논지를 펴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은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하나님은 자신을 다루고 계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이 하나님보다 의롭다는 것이 됩니다(2).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기뻐했음에도 현재의 상황에 이른 것을 괴로워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무익하다고 말했습니다(34:9). 또한 인간이 아무리 선을 행하고 옳은 일은 한들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원칙 없이 행하시기에 선을 행하는 것도 악을 행하는 것도 무의하게 느껴질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엘리후는 인간과 하나님의 차별성을 들어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변호합니다.

그 예로 엘리후는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과 높이 뜬 구름을 예로 듭니다.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행위에도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악과 선은 인간들 스스로에게 영향을 끼칠 뿐입니다.

한마디로 욥 스스로 잘못해서 벌을 받으면서 왜, 원망을 하나님께 하느냐는 반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인간 세계 벌어지는 자연재해 가운데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인간에 닥치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인간이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세계 기후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불과 몇 십 년 후에는 세계 지도의 해안선이 변할 것이라고 기상학자들은 경고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벌어진 일들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엘리후에게 이미 나쁜 놈입니다.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 (9~16절)

엘리후는 이어서 말합니다. 사람들은 학대로 인하여 부르짖고, 소리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는 없습니다(9~10).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그저 자신들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고, 얄팍한 말로 위로해 줄 사람만 찾고 있기에 결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말은 사실 현대인들의 특징을 잘 설명해줍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기도를 통하여 자신이 변하고 성장하기 보다는, 자신의 바램이나 자신의 괴로움과 고난을 위로 받기만을 원할 뿐입니다. 엘리후는 이러한 태도의 기도를 교만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기도(12a) 라고 정의합니다. 저는 자기애에 빠진 기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연민에 빠져 나는 불쌍하고, 외롭고, 참으로 가련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동물의 세계를 통해서라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할 것을 주문합니다(11). 시편 저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에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1)


시편저자는 얼마나 하나님을 찾고 바라는 마음이 강했는지, 동물의 세계에서 깨닫게 된 진리에 비유하여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갈급한 마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델리치 Delitzsch라는 주석가는 본문 11절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하나님께서 동물을 통하여 사람을 가르치신다 로 이해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교만하고 자기애에 빠져 하나님을 찾는 잘못된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욥을 비난합니다(14).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가 다 쏟아지지 않았기에 그는 좀 더 혼나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쏘아 부칩니다(15~16). 욥의 세 친구들보다 더 강력한 비난입니다.



엘리후의 옳은 말은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는 구별된 차별된 존재입니다. 결코 우리의 죄악이나 선행이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거나 더 잘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함께 편승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공동체를 사용하시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앙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말만 듣고, 내가 아뢰고 싶은 것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듣기 싫은 그 얘기가 사실은 나에게 더 필요한 것입니다. 진짜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짜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러한 판단의 기준을 남이 아닌 나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나에 대한 판단도 때로는 유보하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갈급하게 하나님을 구하게 됩니다. 말씀 하시옵소서! 주님! 속히 오시옵소서 주님!


1 Comment


Yeong Chai
Yeong Chai
Dec 16, 2021

자신의 바램을 기도하는 것이 자기애에 빠진 기도인 것을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귀를 열어 회개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되고, 자신이 변하고 성장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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