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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5 [새벽묵상] 전지하신 하나님 | God is All-Knowing (욥/Job 34:21~37)



34:21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His eyes are on the ways of mortals;

he sees their every step.

34:22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

There is no deep shadow, no utter darkness,

where evildoers can hide.

34:23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God has no need to examine people further,

that they should come before him for judgment.

34:24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Without inquiry he shatters the mighty

and sets up others in their place.

34:25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

Because he takes note of their deeds,

he overthrows them in the night and they are crushed.

34:26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눈 앞에서 치심은

He punishes them for their wickedness

where everyone can see them,

34:27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because they turned from following him

and had no regard for any of his ways.

34:28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They caused the cry of the poor to come before him,

so that he heard the cry of the needy.

34:29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But if he remains silent, who can condemn him?

If he hides his face, who can see him?

Yet he is over individual and nation alike,

34:30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to keep the godless from ruling,

from laying snares for the people.

34:31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Suppose someone says to God,

‘I am guilty but will offend no more.

34:32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Teach me what I cannot see;

if I have done wrong, I will not do so again.’

34:33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Should God then reward you on your terms,

when you refuse to repent?

You must decide, not I;

so tell me what you know.

34:34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Men of understanding declare,

wise men who hear me say to me,

34: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Job speaks without knowledge;

his words lack insight.’

34: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Oh, that Job might be tested to the utmost

for answering like a wicked man!

34:37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To his sin he adds rebellion;

scornfully he claps his hands among us

and multiplies his words against God.”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인 전지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전지성을 설명하는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통함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렘 11:20a)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30~31)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살피시며(롬 8:27), 심장을 살피시고 폐부를 시험하시는 분(렘 17:10)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알게 될 때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마도 크게 2가지 정도의 생각이 들 것이라 보여집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너무도 감사하고, 안정감을 누리게 하는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같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이며, 또한 나의 심정을 살피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나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아시고 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나를 괴롭히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나를 향할 때는 결코 그것이 즐거운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를 살피시되 공의롭게 모든 인류와 인간의 죄를 살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과 나의 모든 삶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마치 벌거벗겨진 것과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할 때는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우리의 반응인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 (21~30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고,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21).

그러므로 행악자가 아무리 어둠이나 사망의 그늘의 숨으려 해도 불가능합니다(22).

하나님은 인생을 심판하시되 오래 생각하시거나 조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인생의 행위를 아시기에 순식간에 행악자들을 뒤집어 엎으시고, 다른 사람으로 그 자를 대신하게 하십니다(23~24).

행악자들이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공개적인 심판을 받는 원인은 첫째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27).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결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각기 제 갈 길로 갑니다.

둘째로 가난한 자와 빈궁한 사람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착취했기 때문입니다(28).

모세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출 22:26~27)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부한 자가 가난한 자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을 때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부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욥은 주께서 침묵하시고, 얼굴을 가리신다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인류와 민족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29~30).

이러한 엘리후의 주장은 일반적으로는 옳은 신학이지만, 이미 욥에 대해서 그가 하나님의 길을 떠났고, 악한 자가 되어 가난한 자를 압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에 결코 옳은 주장일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욥 (31~37절)

엘리후는 욥에게 회개할 것을 강하게 주장합니다(31~32). 욥이 고집을 피고 회개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욥의 뜻대로 행하시겠는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욥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말해보라고 종용합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일반적으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욥이 무식하게 말하고 지혜롭지 못하게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34~35).

엘리후는 기원합니다. 36절은 일종의 기원문으로 해석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원문은 아비אבי 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벌게이트역 Vulgate 은 엘리후가 욥을 그렇게 안타깝게 부르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나의 아버지로 번역하지만, 그 뒤에 바로 욥을 3인칭을 다시 부르기 때문에 옳은 번역은 아닙니다.

한편 엘리후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석하는 자들도 있지만, 구약적인 사고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적절한 번역은 NIV가 번역한 것처럼 일종의 기원문의 형식으로, 감탄사 Oh로 해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엘리후는 욥이 끝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욥이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악한 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신성모독죄입니다(36~37).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제 자신 역시도 늘 연구하고 고민하고 기도하며 더 조심해서 하나님에 대한 말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현대에는 꽤 많은 검증된 신학이 정리되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신학자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은 더욱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 6:3)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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