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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3 [새벽묵상] 희망은 어디에… | Where is Hope... (욥/Job 17:6~16)



17: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17:7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17: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17: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17: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17:11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17:12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17: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7:14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17:15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7: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사람이 육체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주사를 맞아도 하나도 아프지 않고, 썩은 치아를 고통 없이 쉽게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사는 이준서(13), 이사랑(10) 남매는 선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병(CIPA)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 병은 땀을 배출하지 못해서 어린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열사병으로 죽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준서와 사랑이는 땀을 배출하지 못해서, 아이들이 10분만 뛰어 놀아도 체온이 화씨100도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준서는 축구를 좋아하는데, 발목이 부러지기를 수없이 경험했지만,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이 같은 경우에는 2살 때 손톱이 빠지기까지 물어 뜯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뜨거운 물에 3도 화상을 입어도 사랑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치명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센병 환자들의 문제도 이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작은 가시 하나에도 온 몸이 오그라들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혜자는 어디에… (6~10절)

고통을 느낀다는 역설적이게도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욥은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16)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고통도 희망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 고통을 느끼는 욥은 살아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죽음이 자신을 덮치기 전에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구설수에 오르게 하셨습니다(6).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욥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난 중에 있는 욥을 질책했습니다.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은 좋은 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제일 좋고, 그 다음은 좋지 않은 일로라도 사람들에 관심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런 일인지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의 눈이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온 지체가 그림자처럼 존재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합니다(7). 사람이 너무 울다 보면 눈이 진 무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욥은 눈물과 피부병으로 눈까지도 쇠약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속담을 인용하여 자신의 결백을 다시 한 번 주장합니다.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8)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9)



욥은 여전히 자신이 결백하므로, 반드시 다시 회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권선징악의 사상이요, 정의는 승리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지혜문학에서도 지지를 얻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 4:18~19)

그런 점에서 욥은 친구들에게 진정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또한 욥을 향한 친구들의 주장은 밤을 낮이라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12).

왜냐하면 친구들의 사상은 너무도 단순하여 인생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실제 자신이 구체적으로 범한 죄가 없음에도 억울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그의 친구들은 고난의 원인을 무조건 욥의 범죄 때문이라고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의 경우에는 정직하고 무죄한데 온 우주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고난을 받고 있는 상황임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의 말대로 진정한 지혜자가 아닙니다.



희망은 어디에… (11~16절)

욥은 다시 자신의 현재 상황에 초점을 맞춰 노래합니다. 이제 욥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 입니다.

자신의 모든 계획도 소원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1). 밤을 낮이라고 빛이 어둠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억지 주장은 더 이상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12).

욥은 자신의 상황을 죽음과 관련된 것들로 비유하여 묘사합니다.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 놓으매(13)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14)


죽음이 코 앞에 와있는 고통을 시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기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수사학적으로 노래합니다.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15)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16)



절망 가운데 우리의 희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삶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줄 지혜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의 희망과 인생의 해답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진정한 위로자는 오직 하나님뿐 입니다.

진정한 지혜자도 오직 하나님뿐 입니다.

오늘도 진정한 위로자 되시며 지혜가 되시는 예수님께 위로를 구하고, 지혜를 구하는 지혜로운 성도 되기를 기도합니다.


 

6 “God has made me a byword to everyone,

a man in whose face people spit.

7 My eyes have grown dim with grief;

my whole frame is but a shadow.

8 The upright are appalled at this;

the innocent are aroused against the ungodly.

9 Nevertheless, the righteous will hold to their ways,

and those with clean hands will grow stronger.


10 “But come on, all of you, try again!

I will not find a wise man among you.

11 My days have passed, my plans are shattered.

Yet the desires of my heart

12 turn night into day;

in the face of the darkness light is near.

13 If the only home I hope for is the grave,

if I spread out my bed in the realm of darkness,

14 if I say to corruption, ‘You are my father,’

and to the worm, ‘My mother’ or ‘My sister,’

15 where then is my hope—

who can see any hope for me?

16 Will it go down to the gates of death?

Will we descend together into the 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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