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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8 [새벽묵상] 계시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 | Jesus Christ, the Completion of Revelation (욥/Job 4:12~21)



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13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16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21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택한 방법이 특별계시와 일반계시 두 종류의 계시입니다. 특별계시는 특별은총이라고도 하는데,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것입니다. 꿈이나 환상, 신의 현현, 이적 그리고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말합니다. 이것은 구원에 이르는 구체적인 지식을 제공합니다.

반면에 자연계시는 자연은총 또는 일반은총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계시입니다. 자연 현상을 통해서 그 속에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숨결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 역사, 인간의 양심 등을 통한 계시입니다. 하지만 불완전하여 이것만으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자연계시는 특별계시로 나가는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연계시에 대해서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19~20)


적어도 모든 인생은 일반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그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제는 특별계시를 통해서 구원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간혹 요즘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신학적으로 아주 잘 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계시는 끝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 되었습니다. 이것을 계시(말씀)의 충족성, 완전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을 구약의 선지자로 착각하여 무엇을 보았다, 들었다 하면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변화와 인격성장을 위해서 말씀하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고 이래라 저래라, 교회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계시는 이제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당사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특별한 체험 (12~16절)

하지만 엘리바스가 받은 계시는 유효합니다. 아직 성경이 있기도 훨씬 전입니다.

혹자들은 그의 계시 체험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지만, 엘리바스의 체험은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특별계시를 체험한 성도들의 것과 비슷합니다.

아브라함 역시 그와 동일한 깊은 잠이 든 가운데 엘리바스처럼 두려움 중(13,14) 하나님의 계시를 봅니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창 15:12)

엘리야 선지자 역시 엘리바스처럼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16)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 19:12)

엘리바스는 자신 앞에 느껴지는 רוח 루아흐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다(16b)고 고백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그 영, 곧 하나님의 영을 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칼빈도 하나님의 본질적 형상은 인간에게 결코 보여지지 않는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눈앞에 있다고 고백한 것은 다만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에게 임한 계시의 의미 (17~21절)

엘리바스가 받은 계시의 핵심은 17절에 잘 드러납니다. 수사학적인 질문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정답은 아닙니다 입니다. 정말 귀한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성에 대한 계시입니다.

이어서 계속 계시된 것은 인간의 우매함(18), 인간의 연약함(19), 인간의 유한함(20~21)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흙 집에 산다(19)는 표현은 흙으로 지어진 인간의 연약한 본질을 꿰뚫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연약함은 하루살이의 연약함보다 더 하다고 과장하여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인간은 마치 텐트를 지탱하는 팽팽한 줄을 끊으면 텐트가 풀썩 주저 않는 것처럼 연약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화려한 모래성이 밀려온 파도에 순식간에 부서져 버려 가루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신학을 제대로 정립하기 전에 놀라운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계시가 임한 것입니다. 엘리바스가 경험하고 전하고 있는 계시는 그 자체로 옳습니다. 인간은 죄인이고, 우매하며,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계시는 욥 뿐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하는 모든 친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계시입니다.

지금 욥은 엘리바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무슨 특별한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옳은 계시, 신학이라도 그것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면 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욥도 그렇고 엘리바스도 그렇고 신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원죄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저 표면적인 권선징악의 개념으로만 상황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바스는 네가 무슨 죄가 있으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욥은 아니야 나는 지은 죄가 없어, 나는 의롭다니까! 라고 잘못 주장하는 것입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인생은 엘리바스가 받은 계시처럼 죄인이고, 우매하며, 연약하고, 유한합니다.

하지만 그 질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 질그릇의 가치가 바뀝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모든 계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보배 되시는 예수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요,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바스에게 최종적으로 알려 주시고 싶었던 것이 이것이 아닐까요? 비록 인생은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존재요, 죄인이지만, 계시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생을 아름답게 하실 것이라는…


 

12 “A word was secretly brought to me,

my ears caught a whisper of it.

13 Amid disquieting dreams in the night,

when deep sleep falls on people,

14 fear and trembling seized me

and made all my bones shake.

15 A spirit glided past my face,

and the hair on my body stood on end.

16 It stopped,

but I could not tell what it was.

A form stood before my eyes,

and I heard a hushed voice:

17 ‘Can a mortal be more righteous than God?

Can even a strong man be more pure than his Maker?

18 If God places no trust in his servants,

if he charges his angels with error,

19 how much more those who live in houses of clay,

whose foundations are in the dust,

who are crushed more readily than a moth!

20 Between dawn and dusk they are broken to pieces;

unnoticed, they perish forever.

21 Are not the cords of their tent pulled up,

so that they die without 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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