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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새벽묵상] 죄 심은 곳에서 은혜가 나고 | Where Sin is sown, reaps Grace (욥/Job 4:1~11)



4: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4: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4:3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4:4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4:5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4:6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4: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4:9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4:10 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4:11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오늘 본문은 욥의 독백에 대한 세 친구들의 반론의 시작입니다.

욥기에서 그들의 대화는 세 차례 이뤄지는데, 세 친구들이 돌아가며 순서대로 말하고 욥이 그들의 말에 대해서 각각 반론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로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말을 합니다.

아마도 그가 가장 연장자이고 연설과 설득에 탁월한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지혜자요 탁월한 웅변가답게 많은 수사학적 기교를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옳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의 시각에는 한계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 어떤 인간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엘리바스의 논증에서 우리는 욥의 연약함과 엘리바스 본인의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1~6절)

엘리바스는 욥에게 자신이 말을 좀 해도 되는지를(2) 정중하게 물어봅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은 메시지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내가 자네에게 한마디 해도 되겠나? 잠자코 있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그러네(2)

엘리바스는 이어서 예전에 욥의 훌륭한 행위에 대해서 말합니다.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3)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4)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5)

그의 모든 이야기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훌륭했던 욥의 행위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그런데 지금은 뭐하고 있는가?! 라는 도전입니다. 엘리바스가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예전에 욥도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훈계를 했기 때문입니다. 손이 늘어진 자, 넘어지는 자, 무릎이 약한 자는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한 자들에 대한 비유적인 그림 언어입니다.

욥은 연약한 자들에 대해서 위로자요, 격려자로서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운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이 욥,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는 힘들어 하고 놀라는 것을 엘리바스가 지적(5)합니다.

그리고는 욥에게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6)며 속히 마음을 다스리고 회복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 일이 네게 이르매… 얼마나 많은 믿음 좋다는 목사와 성도들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부분인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는 온갖 말로 격려하고, 낙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말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정죄합니다.

엘리바스가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내 일이 되면 본인 역시도 어찌할 바를 모르며 낙심하게 됩니다. 이것을 속담으로 잘 표현한 것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입니다.

예수님 역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하신 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눅 4:23b)

당시 유대 속담 중에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라는 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우리 인생입니다. 욥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고 있는 엘리바스 자신 역시 그런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7~11절)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7) 이것은 엘리바스의 중심 신학, 목회 철학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권선징악(勸善懲惡)입니다.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8) 는 우리 속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의 구약성경 버전입니다. 그의 말은 옳습니다.

성경 역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라고 말합니다.

소위 행위 화복관계의 일치성Deed and Consequence connection을 강조하는 인과응보의 교리입니다.

이것은 결과에 의해서만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결과주의의 오류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인과응보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이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실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봅니다. 요즘 한국의 뜨거운 뉴스인 대장동게이트는 수 천 억 원의 막대한 이익을 공공사업을 통하여 소수의 사람들이 차지한 사건입니다.



만일 엘리바스의 인과응보의 논리대로라면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고 복 받은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의인들이 고통을 당했으며, 악인들은 반대로 승승장구 했습니까? 권선징악, 인과 응보 말은 옳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엘리바스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욥의 경우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일반적, 보편적인 기준으로 그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엘리바스는 사자와 같은 악인들이 하나님의 입김에 속수무책으로 심판 받아 흩어질 것(9~10)을 노래합니다.


자신이 강하고 건강했을 때는 다른 연약한 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훈계하여 세워주는 일을 했던 욥은 막상 그 일이 자신에게 닥치니까 마치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것과 같은 나약함을 보여줍니다.



엘리바스 역시 자신의 좁은 소견이 마치 온 세상의 이치를 다 꿰뚫고 있는 듯 권선징악, 인과 응보 하나의 잣대로만 세상을 평가하려 합니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이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 5:20~21)

죄를 심었는데, 은혜의 열매가 열렸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더 크신 사랑에 덮여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저지른 악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상을 받게 하십니다.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논리입니다. 죄를 심었는데, 은혜가 열리다니…


 

Eliphaz


1 Then Eliphaz the Temanite replied:


2 “If someone ventures a word with you, will you be impatient?

But who can keep from speaking?

3 Think how you have instructed many,

how you have strengthened feeble hands.

4 Your words have supported those who stumbled;

you have strengthened faltering knees.

5 But now trouble comes to you, and you are discouraged;

it strikes you, and you are dismayed.

6 Should not your piety be your confidence

and your blameless ways your hope?


7 “Consider now: Who, being innocent, has ever perished?

Where were the upright ever destroyed?

8 As I have observed, those who plow evil

and those who sow trouble reap it.

9 At the breath of God they perish;

at the blast of his anger they are no more.

10 The lions may roar and growl,

yet the teeth of the great lions are broken.

11 The lion perishes for lack of prey,

and the cubs of the lioness are scat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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