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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새벽묵상] 거기서는… | There... (욥/Job 3:11~26)



3: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3: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3: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3: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3: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3: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3: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3: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3: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3: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3: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3: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3: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3: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3: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요즘 한국에서는 오은영 박사라는 분이 아주 유명합니다. 예전 모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문제적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치료하고 돕는 정신의학박사, 상담가로서 전문적인 능력을 보인 바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본인 이름으로 하는 전문 상담치유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얼마 전에 Z.flat 이라는 이름으로 힙합음악을 하는 최환희 라는 20살 청년이 오은영 박사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상담을 받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이 청년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알고 있는 1990년대 최고의 스타 최진실씨와 당대 최고의 야구 스타였던 조성민씨 사이에 태어난 장남입니다.

아시다시피 두 부부는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고 최진실씨의 자살에 이어 남편이었던 조성민씨, 그리고 동생인 최진영씨까지 자살을 하면서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로 전국민에게 충격과 슬픔을 남겼습니다.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던 국민 연인의 아들이 엄마 없이도 건강하게 자란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뭉클거림이 올라왔습니다.

그날 최환희군이 오은영 박사에게 상담한 것은 국민들과 엄마, 그리고 자신 사이에 뭔지 모를 것이 끼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은영 박사는 사람들이 환희군에게 이구동성으로 힘내라! 라고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냐고 질문했습니다. 환희군은 그걸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오박사는 너는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마! 라는 의미라고 너무도 정확하게 말해주었고, 환희군은 그제서야 엄마와 국민들, 그리고 자신 사이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거기서는…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우리 교회 어른이신 모 장로님이 위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생이 참 묘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고난이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그분들이 겪는 고통이 힘들다는 의미겠지요. 결코 옳은 선택은 아니지만,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자신이 잉태된 날과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역창조의 노래를 불렀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죽음, 곧 음부의 세계에 대한 갈망을 노래합니다.


호서대학교신학대학원 구약학 안근조 교수는 사무엘 테리엔의 말을 인용하여 욥의 심리에 한 가지 변화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살아 있는 삶의 대한 증오로부터 죽음에 대한 갈망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도대체 왜 나를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에서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로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현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이 죽었더라면 하는 가정을 하게 됩니다.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13b) 고대 히브리인들의 인식은 출생은 축복이고, 낙태, 사산은 저주로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욥의 고통은 차라리 죽는 것이 편히 쉬는 것이라고 느낄 정도입니다.

욥의 죽음에 대한 예찬에서 그의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고, 부자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라고 노래(14, 15)합니다.

맞습니다. 죽음 뒤에는 신분이나 빈부의 격차가 의미가 없습니다.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17)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18)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19)



욥은 거기서는 을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스올입니다. 죽음의 저편입니다. 어두움입니다. 그곳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빈부격차가 없으며, 감독자도 노예도 더 이상 없어서 쉼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이 세상의 복잡한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의 복잡하고 고단한 삶은 끝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거기는, 곧 진짜 죽기만 한다면 욥이 원하는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안식이 없는 인생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죽음조차도 허락하지 않음을 한탄합니다(20~23).

욥은 첫 번째 자신의 변론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25)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26)

이 구절에 대해서 학자들은 이미 욥은 초기부터 자아 속에 또 다른 욥과의 심리적 갈등이 있었으며, 그 다른 욥에 의해 벌을 받게 되리라는 피해 의식이 실제로 연출 된 것으로 해석합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한마디로 욥은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자신 안에 존재하는 불경건한 다른 자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와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그의 삶에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학자들의 해석이 옳다면, 평소에 경건했던 욥의 마음 속은 얼마나 많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까요? 그가 했던 모든 경건의 저 밑바닥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또한 고난을 당하는 현재도 욥의 마음에는 평안과 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욥이 원하는 대로 죽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끝나고, 영원한 쉼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욥이 원하는 거기서 말입니다. 해답은 아닙니다. 죽는다고 무조건 안식과 쉼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 가 어디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지차이가 될 것입니다. 안식을 주는 거기는 음부, 스올, 곧 죽음의 어둠이 아닙니다. 모든 인생은 어떤 경우에도 오직 예수 안에 거할 때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냥 잠깐의 위로와 안식이 아닌 어떠한 경우에도 빼앗길 수 없는 영원한 평안과 안식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안식은 진정한 사랑으로 하나님과 관계하며, 예수 안에 머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두려움으로 인한 복종이라면 어찌 거기에 평안과 안식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평안이 넘치는 거기는 바로 예수 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고난도, 차별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 안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또한 영원토록 예수님이 있는 천국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11 “Why did I not perish at birth,

and die as I came from the womb?

12 Why were there knees to receive me

and breasts that I might be nursed?

13 For now I would be lying down in peace;

I would be asleep and at rest

14 with kings and rulers of the earth,

who built for themselves places now lying in ruins,

15 with princes who had gold,

who filled their houses with silver.

16 Or why was I not hidden away in the ground like a stillborn child,

like an infant who never saw the light of day?

17 There the wicked cease from turmoil,

and there the weary are at rest.

18 Captives also enjoy their ease;

they no longer hear the slave driver’s shout.

19 The small and the great are there,

and the slaves are freed from their owners.


20 “Why is light given to those in misery,

and life to the bitter of soul,

21 to those who long for death that does not come,

who search for it more than for hidden treasure,

22 who are filled with gladness

and rejoice when they reach the grave?

23 Why is life given to a man

whose way is hidden,

whom God has hedged in?

24 For sighing has become my daily food;

my groans pour out like water.

25 What I feared has come upon me;

what I dreaded has happened to me.

26 I have no peace, no quietness;

I have no rest, but only turmo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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